어머니와 함께 다닌 곳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어머니와 나는 집에 콕! 하는 면에서 꼭 닮았다.

각자의 방에서 뒹굴뒹굴하거나 꼬물꼬물 뭔가를 하거나, 하다가.

밥때 또는 간식 시간이 되면 식탁이나 거실에서 만났다.

그렇게 그렇게 집에 있다가 함께 동네 뒷산을 산책하기도 하고,

가끔 쇼핑을 가거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둘이 함께.



왜?

늘 함께 다녔는가? 하면.

음, 그건 어머니가 딸에게 많이 의존하셔서 그렇다.

원래 독립적인 성향은 아니셨다.

또 그 시대 분들은 평생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온 터라 지금 세대와는 다르게 봐야 한다.


그래도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동안은 혼자 동창회도 나가시고 음악 활동도 하셨는데.

그때도 종종 내가 운전해서 모시고 다니긴 했지.

그러다 외환위기 때 심리적, 물질적 위기를 겪으면서 마음의 용기가 팍 꺾여버리셨다.

혼자 무얼 한다거나 어딜 가거나 하려 들지를 않으셨다.


딱 부러지게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딸 입에서 먼저

같이 가, 또는 함께 합시다.

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저기, 음, 주저주저, 머뭇머뭇 말을 돌리는...

답답한 화법으로.



딸이 처음부터 어머니의 의존성을 흔쾌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심약해진 어머니를 되돌릴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연로한 어머니를 혼자 알아서 하세요, 할 수도 없으니.

한동안 소심한 마음속 반항을 거친 끝에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라면서 부모님께 받은 사랑이 어찌나 크고 깊었는지.

온전한 기억력이 있는데 빠져나갈 도리는 없었지.)


이전에도 함께 여행을 다녔지만 나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는데,

어머니를 집에 두고 나 혼자 여행을 가면 점점 미안해졌다.

그러니 함께 가야지.

한 번은 후배들과 캠핑 가는데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도 했다.

모녀는 캠핑장 숙소를 쓰면서.

물론 우리 집에 여러 번 놀러 와서 이미 아는 아저씨들이기는 했지만.

우리 어머니를 받아준 후배님들, 새삼 고마워.



다행히 어머니와 여행 취향이 비슷했다.

굳이 사람 많은 관광지보다는 평범한 시골마을을 좋아하는 취향이다.

어머니는 강원도 정선을 좋아하셔서 한동안 즐겨 다녔다.


기차를 내려서 천천히 걷는다.

저편 산을 바라보며 청량한 공기를 호흡하고.

조양강 건너면서 참 조용한 곳이야, 감탄한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밥을 먹고.

시장 옆에 있는 성당에 가서 마당에 한참을 앉아 있는다.


정선 산골마을에 작은 펜션이 있었다.

오래된 시골집을 고쳐서 소수의 아는 손님을 받았는데.

몇 번 다녀 친해진 우리는,

집주인이 일 보러 나간 빈집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은 적도 있었다.

딸은 열린 창문으로 솔솔 불어오는 초여름 바람에 낮잠을 자고.

어머니는 낑낑 땀 흘리며 무성한 복숭아나무 가지를 치셨지.



노무현 대통령의 생신 즈음에는 봉하음악회가 열렸다.

봉하음악회는 어머니가 기다리는 행사였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음악회 전용 '봉하열차'로 몇 번 갔었다.

성악 전공자라 음악회는 무조건 좋아하셔서 평소에 딸과 함께 음악회도, 공연도 종종 다녔는데.


봉하음악회는 야외에서,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자유로운 자세로 연령, 지역이 다양한 청중들이 한마음이 되어.

연주자와 함께 노래 부르고 손뼉 치며 열렬하게 호응하는 흥겨운 음악회여서 우리 어머니가 참 좋아하셨다.

시골의 밤 날씨가 쌀쌀해 담요를 덮어쓰고는. 주최 측에서 주신 맛있는 떡 한 입,

보온병에서 덜어낸 따끈한 차 한 모금 홀짝홀짝 마시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에게 좋은 음악회까지 선사해주시는구나,

어머니가 말씀하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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