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어느 기차 역사는 전면이 높은 계단이었다.
그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야 플랫폼으로 가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출발 시간은 다가오는데 까마득한 계단을,
한 단 한 단 무거운 캐리어를 끌어올리면서 나는.
왜?
이렇게 미련하단 말인가!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잔뜩 끌고 온 자신이 한심했다.
계속 장소를 이동하면서 장기간 여행을 다니려면 필요한 물건을 다 들고 다닐 수밖에 없다.
도시인의 생활에 필요한 사소한 물건들은 참 많다.
여행은 이동이고, 그 이동에는 짐의 무게가 더해진다.
인간의 숙명 같은 짐의 무게가.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젊은 시절 한 때,
자신이 소유한 모든 물건을 지니고 장소를 옮겨 다니는 경험을 해보라, 권하고 싶다.
한자리에 눌러 살아온 우리 정착민들은 소유한 물건을 담아두는 고정된 거처가 있기 때문인지,
소유로 인한 무게에는 무심하다.
소유한 물건의 무게와 부피를 직접 몸으로 겪어보면,
아, 가볍게 살아야겠다,
소유로부터 자유를!
선언하고 싶어 진다.
그렇다고 빈 몸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허약한 인간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도구에 의지해야 한다.
내 육신의 생존을 위해,
더해서 문화적 인간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물건도 참 많더군.
여행을 통해 나는 내가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무거운 짐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정했다.
그래서 '우선순위'와 '포기'를 익혔다.
마음이 가는 많은 물건 중에서 나의 욕구와 필요에 따른 우선순위를 정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는 것들은 포기한다.
쿨하게 마음에서 떠나보낸다.
물건만이 소유나 포기의 대상이 아니다.
짊어지는 물리적인 무게만이 아니라,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힘들게 하는 무형의 무게도 내 마음의 평온함을 위해 덜어내야 한다.
재산도, 권력도, 명예도, 인기도.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칭칭 얽매여 질질 끌려가고 싶지는 않다.
거리낄 것 없이 떳떳하게.
자유자재, 홀가분하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여행은 내가 가는 것이다.
짐을 짊어지고 행선지를 찾아가는"나"라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 길을 찾는다.
그러니 나라는 존재를 키우고 단단히 하여야 한다.
너끈히 무게를 짊어지고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도록 힘과 의욕을 키워야 한다.
몸이 튼튼, 마음은 확실해야 하는 이유.
여행이 항상 좋을 수는 없다.
비가 쏟아져 진흙탕을 지나야 할 때도 있다.
밤 기차에 시달려 피곤하고 씻지도 못해 초췌해서는.
구겨진 옷차림으로 세련된 도시, 뽀얀 사람들 한복판에 서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단지 지금 나의 겉모습이 초라하고.
내가 진흙탕을 걸었을 뿐,
초췌한 겉모습 안의 나는 여전히 나인 걸.
반대로 내가 왕비의 비단옷을 빌려 입고 지난 세기의 궁전을 거닐고 있다 해서,
갑자기 내가 격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지.
나라는 존재와 내가 놓인 상황을 분리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단단해지면,
나는 더는 굴곡진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핵심이 되는 '나',
본질의 '나'를 잘 지킬 수 있다.
내가 여행에서 배운 것들이다.
좁은 자아에 갇혀서 쉽게 건방져지고,
내면은 허약했던 나.
젊었을 때 여행을 통해 중요한 가치를 익힐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