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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Dec 05. 2019

남쪽 음식,  북쪽 음식

음식에 관한 단상 4

내가 직접 살림을 하면서 그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을 알게 되는 게 있다.

부모님이 사셨던 시절과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사회적 배경이 달라지면서 부모님이 살아간 시대의 한 부분을 우리 집 음식을 통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달까.


지금은 각 지방에 관한 정보도 많고,

물류의 발달로 지역 특산물을 손쉽게 접한다.

매체마다 지역의 토속음식, 특색 있는 요리들을 수시로 소개한다.

전국의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고.

블로그에, 인스타그램에 실시간 음식 사진을 올린다.

내 집 밥상에 국한되었던 음식의 세계가 미처 몰랐던 재료, 조리법과 맛으로 활발하게 확대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빈곤했던 시절을 살아서,

음식은 목숨을 이어가는 수단으로 허기를 채우면 고맙지, 맛을 따지는 형편이 아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처럼 식재료가 풍부하지도 않았다.

바다에서 해산물을 양식하거나 산에서 나물을 재배를 하는 경우도 제한적이었으며.

해외에서 수입을 하거나 냉동, 냉장고로 운반, 유통하는 체계가 발달하지 않았다.

자기 지역 밖의 음식은 먹기도 어려웠고 알 지도 못했다.



우리 어머니는 새로운 음식에 호기심이 많은 분이어서

'퓨전 음식'이라는 말이 있기 전부터 동서양 재료와 조리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음식을 예사롭게 만드셨다.

아버지는 '음식은 맛있어야 한다'는 분이어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셨고,

당신이 좋게 드신 식당에는 꼭 가족과 함께 가셨다.

그럼에도 우리 집 밥상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지역의 한계가 있었다.

언젠가 추석에 어머니가 토란국을 끓여 내셨는데,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 못해 밥상에서 토란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나에게는 '미끈미끈한 토란'이라는 기억의 단편만 남았다.



식생활에는 비용을 아끼지 않고,

늘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부모님 덕에 갖가지 남다른 음식을 접해본 우리임에도.

가자미와 명태는 즐겨 먹었지만 민어, 도미는 꽤 어색했다.

오징어는 언제나 환대를 받고 문어도 환영을 받았는데,

낙지나 주꾸미는 집에서 먹지 않았다.

홍합, 대합, 바지락은 잘 먹었지만 꼬막, 백합을 직접 해 먹게 된 건 최근 일이다.

외할머니가 집에 오셔서 순대를 만들어 주셨고,

이북식 순대를 먹으러 일부러 시내에 있는 식당을 찾아다녔지만.

순대국밥은 먹지 않았고, 족발은 마흔이 넘어서 먹기 시작했다.

산초장아찌는 담가먹었는데,

남쪽 지방에서 쓴다는 방아잎, 초피 열매는 여전히 지식에 머물러 있다.

TV에서 본 방풍나물은 궁금해서 한번 사서 죽을  끓이고 부침개를 해 먹어 보았다.

오, 이런 맛이야? 은은한 향과 깔끔한 맛이 좋았지만 언제 또 해먹을 지는 모르겠다.

된장을 풀어 시래기를 넣고 푹 끓인 갈빗국은 어릴 때부터 종종 먹었는데.

어머니 투병 중에 해산물로 낸 육수에 된장을 풀어 시래깃국을 끓여 드렸더니,

"네 덕에 처음으로 시래깃국 맛을 알았다"며 맛있게 드셨다.


친가, 외가 모두 조부 대부터 도시 생활을 한 집안이다.

그래서인지 나물 반찬이 약하다.

고사리, 도라지, 더덕, 시금치 같이 시장에서 사는 채소는 잘해 먹지만.

요즘 방송에 종종 소개되는,

예전에는 키우지 않고 채취에 의존했던 산나물이나 들풀 같은 음식은 식단에 없었다.

만약 아버지가 좋아하셨다면 어머니는 얼른 그 음식을 해내셨겠지만.

두 분 모두 모르셨던 것 같다.


모르면 선입견을 갖기 쉽다.

미지의 것에 우리는 턱없는 선망을 갖거나,

반대로 정당한 근거 없이 폄하하기 쉽다.

다른 음식을 통해 나와 다른 것에 마음을 열고

그것을 제대로 알고 정당하게 평가하려는 진지한 태도를 갖게 되면 좋겠다.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 우리는 상대를 잘 알고 싶은 열렬한 자세가 되지 않나?


그러니까 맛있게 먹은 낯선 음식은 우리에게 보다 현명해질 수 있는 기회도 준다.

일거양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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