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여행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적이다.
가게 주인, 숙박, 운송, 식당 같은 관광 관련 사업자 정도.
서로 딱 필요한 몇 마디를 나눌 뿐이다.
그래서 여항지를 떠올리면 맛있게 먹었던 음식과 잘 보았던 풍경만이 남는가 보다.
내게는 사람들과의 몇몇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짧지만 따스했던 순간들.
원주에서,
시장 안에 음식을 파는 코너가 있었다.
가게들은 부침개, 국밥, 국수, 순대, 튀김, 떡볶이 같은 음식들을 팔았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가게 넷을 묶어서 한 구역이 되는데.
각 가게들은 주인이 음식을 준비하는 조리대를 가운데 두고 디귿 자로 손님들이 음식 먹는 좁은 테이블을 둘렀다.
점심시간 전, 한적한 시간에 내가 음식 코너에 들어섰을 때 맛집으로 소문난 가게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곳에만 사람들이 가득했으니까.
맛집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는 나는 바로 그 옆 가게,
메뉴는 똑같은 데 손님이 없는 가게에 자리를 잡았다.
일 인분 주세요, 하자
무표정한 주인은 바지런히 손을 움직여 음식을 데우는 동시에 내 앞에 밑반찬과 물병을 차려놓았다.
음식 맛도 흠잡을 데가 없고 양은 아주 많았다.
구석구석 가게는 또 얼마나 깨끗한지.
주인은 쉴 새 없이 닦고 치우고.
내가 먹는 중에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셨는데,
말은 없었지만 주인은 손님을 참 살뜰하게 챙기시더라.
무뚝뚝하지만 친절하고 성실한 그분께 뭔가 해드리고 싶었다.
뭘 할 수 있을까?
가방 안에 든 두 개의 인스턴트커피를 떠올리고 커피 한 잔 드시겠냐고 물었더니,
나더러 먹으라고?
깜짝 놀라시다가 활짝 웃으시면서 고맙다고.
그래서 두 개의 블랙커피 스틱은 두 잔의 커피가 되었고,
그분 몫 한 잔은 설탕이 더해져서 할아버지 손님과 반 잔씩 나뉘었다.
정읍에는 쌍화탕 거리가 있다.
수십 군데는 되어 보이는 쌍화탕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선 정읍의 명소이다.
이곳에서 파는 쌍화탕은,
여러 좋은 재료를 오랜 시간 정성껏 달여서.
군밤, 대추, 은행 같은 고명을 듬뿍 얹어,
따끈하게 돌로 된 찻그릇에 찰찰 담겨 나오는 보신 음식이다.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어머니와 나는 찻집에 오래 앉아 있었다.
포장된 쌍화탕을 사가려니 물량이 밀려 있어서 며칠 뒤에 문의하면 주문이 가능한지 알려주시겠다고.
사장님은 어머니와 여행 오셨냐 물으시며,
본인은 친정엄마와 여행 한 번을 못해봤다 하시면서.
좋지 않은 우리 어머니 건강을 염려해주시고, 집까지 잘 들어가세요, 택시를 불러 주셨는데.
기차역에서 내릴 때 알았다.
사장님이 벌써 택시비까지 지불하셨다는 걸.
한평생을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다.
세파에 시달리고 사람과 부대끼면서 인격이 성숙해지기보다는 마음이 뒤틀리고 거칠어진 사람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겉으로는 단단한 방어벽을 세우더라도.
부드럽고 따스운 속살은 망가뜨리지 않고 깊숙이 보관한다.
그래서 방어하지 않아도 되겠다, 마음 놓을 수 있을 때.
선선히 감춰둔 마음이 열리고,
순하고 착한 본래의 모습을 기꺼이 열어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