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에는 상림이 있다.

by 기차는 달려가고

지리산 언저리, 함양.

함양에는 위천이 흐른다.

범람을 막기 위해 강에 둑을 쌓고 나무를 심었는데 이를 상림이라 부른다.

무려 신라 시대,

함양 태수로 부임했던 최치원이 조성한 숲이라고 한다.

천 년이 넘는 그 아득한 시간.

숲은 변함이 없구나.



숲은 그윽하고 깊다.

길이는 길어도 폭은 넓지 않은데 마치 동화에 나오는 깊은 숲 같은 느낌이다.

까마득하게 높고 넓게 자란 나무들은 수종이 다양하다.

상림을 찾아서 여름 끝무렵, 어머니와 함양으로 갔었다.


험한 산길을 올라와 있는 함양 시내는 작다.

외부로 통하는 길, 시내 초입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고,

마천이니 금계니 하는 지리산 둘레길 마을들의 표지판을 단 버스들이 이곳에서 길을 떠난다.


상림은 시내를 가로질러 터미널에서 대각선 위치에 있다.

어머니에게 다소 무리는 될 수 있겠지만,

무더위가 갑자기 가신 흐린 날, 청량한 함양 거리를 걷고 싶었다.

가는 데까지 가봅시다, 하고는 걷기 시작했지.



높은 건물 없이 조촐한 함양 시내는 산지도 구릉도 없는 평평한 지형이었는데,

멀리 사방으로 큰 산들이 보였다.

소란스러움이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하고 반듯한 곳이었다.

상림으로 가는 길은 집과 건물들 사이로 여러 갈래가 있는데.

우리는 가로로 놓인 길을 따라가다가 밥을 먼저 먹고,

위천을 따라 숲으로 가는 경로를 골랐다.


식당을 나와 위천을 따라 걷다 보니 부슬부슬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맞으면서 걸어도 무방한 정도였는데 조금 더 걷다 보니 허름한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 올라 어머니는 돗자리를 펴고 누우시고 나는 곁에서 커피를 내렸다.

동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듯한 정자 바로 옆으로 위천이 흐르는데.

철렁철렁 이리저리 부딪치며 떠나가는 물소리도 좋고 바람도 솔솔 시원해서,

어머니는 여기가 명당이로구나, 하셨지.

거기서 한참을 쉬었다.



조용한 동네.

위천을 따라 슬슬 걸어 드디어 숲에 들어섰다.

아, 감탄.

그냥 감탄.

높다란 나무들은 하늘을 가리고

우우, 바람은 무성한 이파리들을 지나면서 소리를 냈다.

들이쉬는 공기는 향긋하고 상쾌하고.

나무들은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숲은 걷기 쉽고 편하고 친근하고,

시내와 붙어있으니 지역 분들이 쉽게 오갔다.

명칭도 상림공원.


슬픈 일도, 기쁜 날도 상림을 걸으면서 나무들에게 털어놓으면,

마음에 고이는 찌꺼기 없이 홀가분할 수 있겠다.

탐욕이 마음을 괴롭히다기도 아름다운 상림을 걷다 보면 스르르 흩어질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데 뭘 더 바랄까?

매일 상림을 걸을 수 있는 함양 분들은 참 좋겠네.


숲에 공원이 이어져서 커다란 연못에는 갖가지 연꽃이 가득했다.

꽃도 보고, 곳곳에 놓인 의자, 정자에서 쉬기도 하면서 여름 끝자락의 한가함을 누렸다.



공원 입구에는 동네 분들이 직접 키운 과일을 한 소쿠리씩 들고 와 파셨는데.

복숭아를 펼치고 있던 아주머니는 가을에는 밤을 파신다고 하셨다.

친구들이랑 얘기도 하고 물건도 팔고.

또 이렇게 먼 데서 온 손님들도 보고, 재미있어!

하셨지.


유쾌하고 명랑하고 씩씩한 삶의 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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