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크고, 키가 작고

일상 속에서

by 기차는 달려가고

고등학교 입학하고 한 달쯤 뒤엔가,

봄볕이 몹시 따갑던 월요일 아침,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열 맞춰 조회받던 중이었다.

교육 훈장으로 빛나는 교장선생님의 길고 긴 훈화 말씀 중에,

반장이라고 맨 앞에 서있던 나는 감히 픽, 쓰러지고 말았다.

강하게 키운다며 학생들을 일부러 춥고 덥고 배고프고 짜증 나는,

험한 환경에 내던진 듯했던 박정희 시대에,

이 비난받을 허약함이라니.


선생님의 등에 업혀 양호실로 가서도 한참 뒤에 정신을 차렸고.

비실비실 문제적 학생이 된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월요일 조회에도, 교련이나 체육 시간외수업에서도 제외되었다.

그늘진 스탠드에 멍하니 앉아 아이들이 오글거리는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행운이라니.

이런 개꿀^^

체력장 점수는 당연히 꼴찌여서 대학 입시에 불리했지만,

저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거든요.



1970년 대, 내 고등학교 시절에는 국가적으로 전쟁놀이가 한창이었다.

여의도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제식훈련과 절도 있게 행진하는 열병식을 했다.

시범학교로 뽑힌 일부 고등학교의 키가 큰 2학년 학생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개별 연습을 먼저 하고,

그 뒤에 서울 시내 참가학생 모두가 행사장인 여의도 광장에 모여서 합동 연습을 했다.

그래서 키가 큰 뒷번호 아이들은 점심시간이 지나면 오후 수업을 빠지고 여의도로 떠났다.

반에서 제일 키가 컸던 나는 물론 여기서도 제외.

그래서 오후에 복도로 나가면 아이들 틈에서 내 머리통만 동동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어이없지만.

오우,

그때는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전쟁 나면 모두 전쟁터에 나가서 적군을 물리쳐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더랬습니다.



내 경험 범위에서 말한다면 그때는 지금처럼 외모에 초민감하지 않았다.

동서고금,

예쁜 여자가 선망의 대상일 수는 있겠지만.

일부 못된 애들이야 심사가 뒤틀리면 그때도 외모를 꼬투리 잡아 헐뜯고는 했지만.

요새처럼 키, 몸무게, 얼굴 크기, 다리 길이, 피부결과 피부색을 일일이 따지면서 외모를 평가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키가 크면 큰대로 멀대 같네, 싱겁네, 하면서 놀려댔고.

작으면 작은대로 밤톨만 하네, 콩알 같은 게, 하면서 킥킥거렸는데.

앞 번호 애들은 야무져서 전교 일등을 차지하고.

뒷번호 애들은 느긋해서 속이 편하다고 서로 덕담을 했지,

요즘처럼 원망과 자기 방어와 저주까지 섞인 혼란한 감정으로 날카롭게 대하지는 않았다.


부유함, 외모, 스펙 같은 평가가 난무하면서 서로를 깎아내린다.

사람의 장점을 보기보다는 칼 같은 잣대로 서로의 단점을 캐낸다.

게다가 방송에서는 왜 그리 외모 평가가 많고 물질적 부유함을 자랑하는지.

아직 세상을 파악하지 못하는 성장기 아이들에게

미모에 대한 열망과 물질적인 화려함을 눈앞에 들이민다.

그것도 상당 부분 허위와 과장으로 말이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오직 상업적 소비자로만 대하는 느낌이다.

당신 지갑에 남은 몇 푼.

아니 빈털터리 소비자가 영혼까지 팔아 끌어당길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을 뽑아내고야 말겠어!

하는 시퍼런 결의가 읽힌다.


그렇게 뽑아낸 돈은 또 다른 상업적 욕망의 대상이 되고.


그러면 행복해지던가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늘은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