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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an 19. 2020

그때와 지금 2

음식에 관한 단상 12

60년을 살다 보니 '라떼' 여사가 되어간다.

그동안 살아온 시간이 내 안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지금 바로 이 순간을 보면서 동시에 머릿속으로 이와 비슷했던 지난 일이 쫘르륵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니 나이 든 사람들에게서는 지금이 처음인 젊은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이번이 처음인 젊은이들이 와, 감탄하면서 순정의 마음으로 100% 받아들일 때,

이'라떼'들은 그거 나중에 보면 별 거 아닐지도 모르는데,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데, 눈을 가느스름 뜨면서 시큰둥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어머니가 보시던 1960년대 '요리 대백과사전'에는 요리 재료 중에 '아지노모토'가 당당히 적혀있었다.

일본 박사가 개발했다는 그 놀라운 물질,

모든 음식에 감칠맛을 더한다는 신통방통한 신상품이었다.

반응은 선풍적이었고 도시의, 중산층 이상의, 신문물에 민감한 세련된 주부들이 이 '아지노모토'를 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상품화된 이 제품은 '미원' 또는 '미풍'이라는 이름을 달고 유명 탤런트가 광고를 했다.

완전 도시의 맛이었다.


그 이후 반 세기 동안 이 인공조미료는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은 시대에 뒤쳐진 할머니들이 찬장 구석에 숨겨두는 무기이며,

식당에서 손님들 몰래 넣는 왠지 좀 꺼림칙한 비밀이 되어있다.

유사품, 대용품 모두 팔리기는 잘 팔리는데 말이다.

그러니 지금 선풍적인 호응을 얻는 그 무엇을 보면 라떼들은 MSG의 행로를 떠올릴 수도 있지 않겠어요?



정부가 정책적으로 밀어붙였던 사례인데,

1960년대에는 '분식의 날'이 있었다.

국민들이 애호하는 쌀은 모자라고 원조받은 밀가루는 많으니.

밀가루가 몸에 좋다면서 먹으라고, 먹으라고.

요리전문가들이 정부 주도 하에 전국을 순회하며 외국산 밀가루 음식 보급에 열성을 부렸다.

(싼 구호물자 외국산 밀가루 덕에 당시에도 얼마 되지 않던 국내산 밀 농사가 거의 단종되었다고)

지금 밀가루 소비량은 그때보다 어마어마하게 많아졌을 텐데,

그렇다고 그 시절처럼 영양가 높고,

해 먹을 음식 많은 '너무너무 좋은' 식품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이어트 방침의 상단에 밀가루 음식 자제가 들어간다.

'우리 국내산 밀가루'-는 떳떳하게 홍보한다.

국내산 식재료가 이렇게 환영과 신뢰를 얻다니.

(그 시절에는 뭐든지 외국산이 최고,

국산은 뒤떨어지고 모자라는,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다.)

참 근데, 관 주도 하에 사리사욕을 채운 고위층이나 기업인이 없었기를 바라지만.

글쎄요, 그 시절은 공권력을 사유화했던 시절이라,

돌이켜보니 혹시 그 구호품 밀가루로 떼부자가 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요?



일본이 잘 나갔을 때.

전자제품, 자동차, 일본 게 최고! 였다.

주부들은 일제 코끼리 밥솥에 열광했다.

도쿄 번화가 양판점 부근을 지나가노라면 그 커다란 일본 밥솥을 끼고 나오는 주부들이 꼭 몇 명씩 있었다.

코끼리밥솥이 주부들의 로망이었다면 그 남편들은 소니 텔레비전에 애가 달았다.

아이들은 워크맨.

불과 40년도 채 안 된 예전 이야기이다.

영화는 할리우드와 홍콩.

인기 스타는 백인 미남, 미녀.

한국은 문화 수입국.

우리 것이 해외에서 각광을 받을 날이 오리라고는 꿈도 못 꿨다.

아니 우리 것이 뭐 있기나 해?- 이런 자조.

불과 30년 전 이야기다.



세상은 변한다.

그 변화의 흐름과 기세는 개인을 넘어서지만.

우리의 의지로 바꿀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나 개인의 운명을 열어가는 일은 쉽지 않은데

우리가 관심을 갖고 개인적인 이익의 범위를 공공의 단위로 넓혀본다면.

우리의 세계를 더 좋게 만드는 일이

혼자 나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빠를 수도 있겠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높은 분들이 하는 일에 무기력했지만.

우리가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을 더하니 어, 달라지는걸! 자신감을 얻었다.



지금 노인들은 정말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은 세대이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이뤄낸 물질적인 성취가 있지만.

내적으로는 무척이나 좌절하고 절망한 게 아닐까,

너무 외롭고 불안하고 두려운 게 아닐까?

성조기를 흔들면서 욕설과 고함이 난무하는 악에 받친 그분들의 집회를 지나가면서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지금 젊은이들은 개인적으로 기회가 사라지고 계층이 고착화되어 참 힘들어하는데.

지금 이 순간은 늘 출렁이는 유동적인 것이다.

힘을 모아 더 투명하고 정직하며,

공정한 사회로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오늘의 한국이 되었다.


게 60년 살아온 '라떼 여사'가 알게 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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