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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Feb 14. 2020

어떻게 입맛이 변하니?

음식에 관한 단상 13

내가 아주 어릴 적에,

그러니까 1960년대 초중반쯤.

집에 오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밥상을 차려 주었다.

불러서 온 손님이 아니어도,

일하러 온 사람, 심부름 온 사람, 물건 팔러 온 사람, 동냥하러 온 사람에게도 밥 한 술 권했었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그랬을 것이다.

여름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편지라도 가져온 우체부는, 

할머 건네주는 냉수 한 사발에 설탕 한 숟가락 휘휘 저은 물대접을 받았다.

궁핍한 시절, 오가는 설탕물로 고된 노동과 더위와 허기를 견뎠다.

가끔 그 시절이 떠오른다.

간소하고 조촐하고 단순했던.

작은 집에서, 적은 물건으로, 몸을 많이 움직이며, 부지런히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해외에서 수 십 년을 살아도 한국 사람은 밥, 국, 김치를 먹는다.

어릴 때 형성된 식성은 바뀌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입맛이 평생 초지일관은 아닌 것 같다.

유난히 우리 음식만 찾는다거나 기름진 음식을 좋아한다거나 하는 큰 테두리의 식성은 잘 안 바뀌겠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입맛은 살짝살짝 달라진다.

달라지는 입맛에 맞추어 음식도 대응해왔다.



어머니는 TV에서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보시면 '온통 뻘건 색 투성이다' 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셨다.

매운 음식을 먹는 것으로 알려진 함경남도 출신의 어머니 말씀하시길,

이북 사람들이 즐겨먹는 몇 가지 매운맛 요리가 있는 것이지, 모든 음식이 매운 것은 아니란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장르 구분 없이 매운 음식은 부실한 재료를 덮느라 양념을 퍼부어서 미각을 마비시키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셨다.

얼얼한 혀와 찔찔 흐르는 땀을 동반하는 심하게 매운맛을 선호하는 흐름은 단순히 한때 유행인지,

어떤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사회 현상인지 궁금하다.



매운맛도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음식이 달아졌다는 느낌이다.

외국 음식보다는 달지 않게 먹는다고 하지만 그건 간식이나 후식의 경우이고,

불고기나 갈비찜에, 생선조림까지,

설탕을 넣어 주요리를 달게 조리하는 나라가 많지는 않을걸?

예전에도 우리 음식에 간장, 설탕이 기본양념 이기는 했지만 담백하니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렸었는데,

지금은 주요리, 반찬, 후식이나 음료, 떡 모두 참 달달하다.

물론 내 입맛에 그렇다는 얘기다.

상업적인 음식 비중이 높아지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불만이 적은,

판매에 유리하도록 만든 음식이 표준이 되어 가겠지.

바깥 음식은 집의 음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신 짠맛은 덜해졌다.

건강 문제가 부각되면서 간이 싱거워졌겠는데.

냉장 시설이 미흡했던 예전에는 보관, 유통에 소금이나 간장을 잔뜩 쓸 수밖에 없었겠다.

요새는 냉장, 물류 시설이 잘 되어있으니 굳이 짜게 식재료를 보존할 이유가 없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반찬을 넉넉하게 먹는 방향으로 식단 구성이 바뀌니 당연히 개별 반찬들은 싱거워지겠고.

다이어트가 일상이니 밥은 예전 장아찌 먹듯 그저 곁들일 뿐이고,

채소와 단백질 반찬을 주식으로 먹기도 하니, 음식 간은 더 싱거워진다.



이에 더해 식재료 자체의 맛도 변하지 않았나 싶다.

바다에서 자연산으로 잡는 해산물은 안 그렇겠지만,

키우는 동식물은 사료, 비료, 첨가물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종자 개량 같은 과학적 측면도 한 요인이겠고.

예전에는 삶거나 찐 고구마, 감자, 삶은 달걀 먹을 때 김치나 소금을 곁들여 먹었는데

요즘은 뭘 더하지 않고 그냥 먹는 경우가 많다.

입맛이 바뀌어서도 그렇겠지만 재료 자체의 맛도 달라졌을 것 같다.


고기 포함 식재료들이 대체로 부드러워졌다.

질기거나 단단한 식재료는 환영받지 못한다.

그래서 턱에 영향이 미쳐 얼굴 모양까지 달라진다지.



치즈가 각광을 받는다.

난 원래 치즈를 잘 먹었는데 그 시절에는 치즈를 오물거리는 나더러 느끼하지 않냐는 친구들이 있었다.

요새 젊은 세대는 치즈를 다양한 음식에, 듬뿍듬뿍 얹어 먹는다.

자랄 때부터 우유에 익숙했으니 치즈 맛이 새삼스럽지 않겠다.


동시에 토마토소스도 익숙하다.

우리나라에서 과일 취급을 받던 토마토가 이제 샐러드만이 아니고,

피자나 파스타 소스로 접근하면서 치즈와 더불어 소비량이 급증하는 추세가 아닌가 싶다.



튀긴 음식이 많아졌다.

치킨이나 돈가스는 물론,

급식이나 편의점 도시락처럼 대규모로 조리하는 음식을 보면 튀김류와 조림류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조리와 유통의 편의성에 더해 사람들의 입맛을 고려한 식단이겠지만,

입맛이 먼저인지 공급이 먼저인지 모르겠다.



어릴 때 먹던 음식이 입에 익어서 나이가 들어도 즐겨먹는다면,

지금 청춘들은 노인이 되었을 때 현재 어르신들과는 다른 식성, 다른 식단을 갖게 되겠다.

햄버거에 감튀를 우물거리면서 라테를 마시는 노인들 모습이 아직은 상상되지 않지만.

나이 들어도 한창때 입었던 스타일대로 계속 입게 되는 의생활을 떠올려보면,

기모 맨투맨에 스판 청바지를 입은 실버타운의 백발께서 편의점 도시락을 고르는 모습이 그려지기는 한다.

정신도 젊을 적의 청정함과 패기를 그대로 유지하는,

멋진 청춘 노인을 떠올리며.

막 세계 시장에 얼굴을 내민 우리 음식이 어떻게 달라져갈지,

두근두근,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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