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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Feb 17. 2020

뜬금없이 떠오르는 음식들

음식에 관한 단상 14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을 때가 있다.

(사실은 거의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한참 있다 보면 공기 같은 의식 위로 상념의  부스러기들이 먼지처럼 툭툭 떠다닌다.

때로는 감정의 파편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지나간 어느 날의 정지 화면이기도 하다.

가끔은 먼 옛날 의문 가득한 미스터리로 봉인되었던 일이,

갑자기 이면을 보여주면서 감춰졌던 해답을 드러내기도 한.

이를테면 썸 타던 상대방의 변덕스러웠던 언행이,

아마 그조차도 분명히 인식하지 못했을 청춘의 자존심과 협량한 이해력과 현실에 대한 번민.

그런 것들이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눈에 확연히 보이면서.

잘 가라 내 청춘,

미숙했던 우리들.

풉, 너그럽게 그 시절을 떠나보낼 수 있는 것이다.


멍하니 앉아 있는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면,

그건 즐거운 추억이 떠오른 거겠지?

맘에 드는 옷차림으로 한껏 모양을 내고 나갔는데,

때마침 내가 좋아하는 아이랑 마주쳐서 서로 뺨이 발그레했던 기억이라거나.

치사하고, 유치하고, 속좁고, 잘난척했던 천방지축, 안하무인의  20대를 떠올리다가,

부끄러움으로 마음이 막 괴로워지기 3초 전에,

내가 그래도 이만큼 컸구나,

그 시기를 빠져나와 다행!- 뭐 이런 식의 아전인수로 급선회했다거나...

(나는 스스로를 괴로움에 가두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에게는 매우 관대하기로:;)


무념무상으로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까맣게 잊어버린 옛날 음식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럼, 의식 저편에서 문득 떠오른 옛날 음식 몇 개 풀어볼까여?



* 칼피스


나 어릴 때, 한 댓살? 그 언저리 몇 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 왕가' 댁인가, 그렇게 부르는 집이 있었다.

조선 왕실 후손인데, 커다란 한옥집이 있고 산 하나가 그 집 정원이었다.

한동안 그 댁 뜰에서 음식점? 카페? 그런 영업을 했던 것 같다.

(그 자리가 호텔이 됐을 것이다.)

아버지 따라 몇 번 간 기억이 있는데,

꽃과 나무 가득한 뜰의 테이블에서 아버지와 아버지 동료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칼피스를 쪽쪽 마시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 우리나라에 비슷한 음료는 있지만 칼피스라는 명사는 사라졌다.

그 시절의 나는 칼피스를 좋아했다.

추억으로 먹는 음료.



* 화교 중국집의 물만두와 오향장육


칼피스와 비슷한 시기.

종로에는 화신백화점과 신신백화점? 이 있었다.

신신백화점(확실치 않아요...)은 시장처럼 생긴 아케이드형 건물로 기억되는데,

그 안에 화교 아저씨의 물만두 집이 있었다.

나는 늘 물만두와 오향장육을 먹었다.

체격이 큰  주인아저씨는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잘 먹는 나를 보고 뭐라 뭐라 알 수 없는 말을 하시면서 씩 웃으셨다.


언젠가 미국 L.A. 에 갔다가 코리아타운 언저리,

교포들이 간다는 중국음식점에 간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살다 미국으로 이민 간 화교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여서 우리 식의 중국요리를 내셨다.

서울에서 왔다니까 가족 모두 반가워하시며,

우리는 어디 살았다면서 서울 소식을 묻는데.

그때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 화교 분들의 생존권이 보호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한국에서 살기 힘들어 미국으로 이민 간 분들이 한국을 그리워하고 서울 소식을 듣고 싶어 하는 모습에 미안하고, 고마워서 뭉클한 심정이 되었었다.



* 일식집 소고기 튀김


1970년 전후하여 가족들이 일식집에 가면,

부모님은 초밥이나 회를 드시고,

아이들은 소고기 튀김을 먹었다.

중국음식점의 '소고기 덴뿌라'와 뭔가 달랐던 일식집 소고기 튀김은 우리 집 아이들이 다 좋아하는 메뉴여서,

음식은 나오자마자 빈 접시가 되었다.

아, 배부를 때까지 먹고 싶다, 는 소원.

여태 이루지 못하고 있구나.



* 브라질 아이스크림 


중학교 다닐 때 '분식센터'의 단골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아래 분식센터에 들러 배부르게 드신 뒤 개천 따라 걸어 큰길에서 집에 오는 버스를 탔다.

튀김, 만두 같은 음식을 자주 먹었던 것 같다.

다른 메뉴는 기억이 흐릿한데 먹고 나오면서 가게 앞에 있던 '브라질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기억은 확실하다.

콘에 짜주던 묽은 아이스크림.

왜 이름이 '브라질 아이스크림'이었을까?



* 비후까스


양식집 메뉴 중에 '비후까스' 가 있었다.

소고기를 얇게 펴서 넓적하게 튀긴, 원래는 서양식 비프커틀릿이었겠지.

양식집에 가면 나는 꼭 비후까스를 주문했다.

나중에는 돼지고기로 만든 돈가스가 유행이다가,

지금은 일본식 돈가스가 우세라 얇게 편 돈가스는 경양식 풍이라고 명맥은 유지하더만.

'비후까스' 하는 집 있나요?



* 멕시칸 사라다


70년대에는 경양식집이 유행이었다.

메뉴 중에 '멕시칸 사라다'가 있었다.

다양한 재료를 마요네즈 기반 드레싱으로 버무린.

고등학생 때 겉멋이 팍 들어서 언니, 이모 따라 경양식집, 카페 다니면서 참 많이도 먹었다.


소박했던 70년대 통기타 청춘들은 그때 자유와 정의를 외쳤습니다만.

사회에 나와서 일도 억척스레하시고, 업적도 많은데.

일부, 그냥 일부 분들은 권력과 돈에 매우 탐욕스러우셨고,

정의를 내세우며 자기 맘대로 법을 말아드셨다.

오직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사신 분들이 참 많은 세대가 되었다.

물론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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