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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Feb 27. 2020

당신에게 기대어

음식에 관한 단상 15

그동안 아버지 기일 저녁에 제사상,

설날과 추석 아침에 차례상을 차려왔다.

올해부터는 어머니 기일 제사가 더해지겠지.

기일 제사는 당신이 자식에게 쏟아주신 사랑과 헌신에 감사하는 자리이다.

생전에는 못했던 당신 위한 밥상을 차려드린다.


명절 차례는 인사드리기이다.

설날에는 해도 힘내어 살아보겠다고 약속하고,

추석에는 아이고 아버지, 올해도 그럭저럭입니다.

아직 두어 달 남아 있으니 끝까지 잘해보겠습니다,라고 다짐한다.

부모를 의지해 살아온 딸은 마음 한가운데 부모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제사를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나이 들어가며 아버지라는 한 인간이 가졌을 번민과 갈등이 보인다.

많이 외로웠겠다, 아버지.

그래서 미안하다.


시간이 갈수록 제상은 가벼워지고 형식은 간소해진다.

반면에 준비하는 마음은 무거워진다.

딸은 인생의 풍파와 희로애락을 겪어온 60대에 들어선 것이다.

맙소사, 부모님 품의 그 어렸던 딸이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힘을 다 쏟아 간신히 일상을 꾸려간다.

딱 식구들이 살 만한 공간에,

일상적인 도구들로 집은 꽉 차있다.

당장 살아남는 것이 다급한 형편이라

이미 돌아가신 분에 관한 지출 -그것이 시간이든 비용이든, 마음이든 수고스러움이든- 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의식용 그릇과 도구, 밥반찬 이상의 음식, 참가자에 대한 배려가 요구되는 제사라는 비일상적인 행위는,

생각만으로도 묵직한 부담이다.

예전, 직접 농사 지어 추수한 제물에 시간과 노동을 갈아 넣어 제사를 지냈던 시절을 지금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



우리 집 제사 풍경도 시간과 형편에 따라 계속 바뀌어 왔다.

기제사는 비교적 전통적인 상차림을 따른다.

탕과 메, 고기, 생선, 나물, 전, 과일, 생밤, 곶감과 대추, 한과 등

다양한 재료의 많은 음식들이 상을 가득 채운다.

자손들은 제사 음식으로 음복한다.


우리 집 다른 제사 음식으로 '소고기 산적'이 있다.

대개 산적이라 하면 소고기를 크고 넓고 두툼하게 펴서 양념해 구운 음식,

아니면 소고기와 다른 재료를 꼬지에 꽂아 구운 음식을 '소고기 산적'이라 부르더라.

우리 집에서는 기름기 적은 소고기를 잘게 다져서 불고기 양념을 하고,

이것을 한참 치대어 손바닥 두 개 정도의 크기부터 조금씩 작게, 넓적하고 도톰하게 빚는다.

( 떡갈비와 비슷)

넓적한 옛날 알루미늄 도시락 같이 빚은 이 다진 고기 덩어리는 기름을 두른 팬에 굽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고기 산적을 각각 다른 크기로 3단을 쌓아 상에 고인다.

비용이 많이 들고 공도 많이 들며,

무엇보다 솜씨와 정성이 필요한 소고기 산적을 지난 몇 년은 올리지 못했다.

해놓으면 누구나 잘 먹는데.



명절 차례는 간소하게 지낸다.

원래는 상다리 부러지는 명절 음식을 해서 차례상에 올렸었는데,

형편도 나빠지고 어머니 병으로 집안 분위기가 무거워지면서 대폭 줄였다.

명절 차례는 떡국과 메 또는 송편에 탕,

육포와 과일, 밤, 대추, 곶감, 한과 정도 올린다.

식구들 먹을 음식은 따로 준비한다.

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차릴 생각이다.

기제사에 올리는 음식은 고민이 더 필요하다.

가급적 줄이는 방향으로.

대신 어머니 기제사에는 마지막까지 잘 드셨던 어란과 케이크도 올려야지.



상차림은 신경 쓴다.

제기는 따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상적인 그릇을 쓰지는 않는다.

어머니는 백자 그릇을 쓰셨는데 나는 유기를 쓴다.

제사용 백 병풍은 따로 맞췄다.

향과 초는 보기에도 좋고 냄새도 그윽한 것으로 고른다.

꽃도 놓으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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