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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an 14. 2020

닭, 달걀, 토마토, 양파, 감자 그리고 바나나

음식에 관한 단상 11

외환위기가 일어나기 전인 1990년 대 중후반,

런던의 어느 가을날 아침이었다.

나는 중심가 뒤편에 있는 호텔을 빠져나와 돌이 깔린 길을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작은 식당들이 모여 있는 거리였는데

아늑한 조명으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웠던 어제 저녁의 석조건물들은,

뿌연 아침 햇살 아래 다소 낡고 무거워 보였다.

덧문이 내려진 식당들 앞에 놓인 커다란 쓰레기통과 쓰레기봉투 더미를 지나서 큰길 쪽.

대형 패스트푸드 가게는 이미 영업을 시작했다.

햄버거, 샐러드, 닭튀김, 감자튀김... 벽면을 둘러싸고 메뉴 사진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흘깃 가게를 쳐다보면서 큰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의 행렬에 행선지를 가늠하다가.

갑자기 양계장 선반에 겹겹이 쌓여서 고기로 키워지는 닭들의 비명소리가

밀려드는 차량들과 소음에 겹치면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그들의 아비규환.

이 순간에도 지구 위 모든 곳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닭들이 밥상에 오르기 위해 손질되고 있으려니.

생명을 얻어 길지 않은 시간.

좁은 틈에 몸을 지탱하고 오직 인간을 위해 살을 찌워야 하는 닭들의 괴로움이,

찰나처럼 내 마음을 깊숙이 찌르고 지나갔다.



직접 여행을 다녀봐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통해 봐도

전 세계 어디에서나 닭고기, 달걀, 토마토, 양파, 감자, 그리고 바나나는 다 먹는다.

조리 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때로는 지역 특산의 품종이 있고,

조리할 때 독특한 지역의 향신료를 이용하여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는 있겠지만.

첨단의 대도시든, 히말라야 산중이든, 라틴 아메리카 사막에서도.

누구나 익숙한 닭, 달걀, 토마토, 양파, 감자 그리고  

바나나를 먹을 수 있다.

원산지는 따로 있지만

(바나나를 제외하고) 어디서나 잘 자라고,

가격 저렴하고.

다른 식재료들과도 잘 어울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영양가 있는 식품들이다.



닭은 오래전부터 사람과 가까이 살면서

꼬꼬댁, 분주히 아침을 알리고,

매일 알을 낳아주고,

때마다 고기까지 내어주는 고마운 동물이었다.

마당에서 종종거리던 닭들은

도시와 촌이 분리되고,

도시가 점점 더 비대해지고,

도시인을 위한 식량 공급이 갈수록 대량화되면서.

대규모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많은 생산량을 목표로 하는 단순한 '제품'이 되었다.

지구 상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닭과 달걀의 양은 얼마나 될까?



지구가 통신, 교통, 교류, 미디어의 영향으로 가까워지면서 급속도로 획일화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계 어디서나 같은 프랜차이즈 식당이 성업 중이고,

사람들은 익숙한 몇몇 브랜드의 식료품을 집중적으로 소비한다.

 브랜드는 달라도 알고 보면 같은 회사의 다른 얼굴인 경우가 상당하다.

대규모 프랜차이즈 식당들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작은 지역까지 파고 들어서

소규모 자본과 노동력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자영업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특색 대신 효율성, 솜씨 대신 광고와 이미지가 식당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지구적인 규모의 몇몇 회사들은 그 자체로 제국이다.

그들은 막대한 자본력이라는 영토를 차지하고.

다단계 같은 소영주들을 조직하며,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자체 신민을 거느린다.

마케팅과 홍보는 그들의 통치 수단이다.



동식물을 최대한의 가성비로 생산해내고(생명체가 아닌 단지 '식량').

저렴한 생산 과정으로 식품을 제조하고.

막대한 광고로 제품을 포장하며.

장악한 유통망으로 물건을 판다.

맞춤형 종자를 개발하고,

화학약품과 조제된 영양제를 들이부어.

최대한의 이익이 보장되는 시점에 수확을 거두는 이 '경제적인' 원칙은,

과연 인간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서 쓰일 때만 적용되는 방식일까?

그들의 신민에게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게 아닐까?

그들이 '존중해야 할 인간'의 범주에 과연 우리는 있는 것일까?



쓰레기 수거 차량이 끼익 끼익 소음을 내며 톤백을 들어 올려 안에 든 재활용 쓰레기를 차량 안으로 쏟아부었다.

조금 있으면 또 다른 차량이 음식물 쓰레기를 회수해 가겠지.

내 눈 앞에서는 사라지겠지만 최종적인 처리가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

과다하게 생산하여 재고와 쓰레기를 남기는 지금과 같은 식료품 생산 방식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고 다른 방법을 찾고

끊임없이 더 나은 해법을 시도하고 있다.



귀찮더라도 일상의 표면 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분고분한 생산자와 귀 얇은 소비자로서만 살아가기에는,

우리 역량은 차고 넘친다.


스스로 생각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의견을 도출하고

행동으로 요구하여.

잘못을 시정하고 그릇된 흐름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지난 몇 년 우리는 그렇게 잘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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