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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Oct 22. 2020

어린 올리버

활자로 만난 인물들

[올리버 트위스트 1, 2권],

찰스 디킨스 작, 김옥수 옮김, 비꽃 출판사



[올리버 트위스트]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이다.

동화책, 뮤지컬, 영화, 만화 같은 가능한 모든 형식으로 각색되어,

전 세계 어린이들이 눈물을 흘리게 했지.

하지만 원작을 완역한 책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당시 소설은 연재물처럼 한 챕터씩 발간되었는데,

찰스 디킨스가 25세 때 쓴 이 소설은 여왕부터 노동자까지 모든 연령과 계층을 아우르는 독자들이,

올리버의 고통에 슬퍼하고 악당들의 악행에 분노하면서 다음 편의 출간을 애타게 기다렸다고 한다.

소설은 가엾은 고아 소년 올리버가 끝없이 겪어내는 고난과 시련의 스토리만이 아니고.

19세기 중반, 식민지와 산업혁명으로 부가 편중된 영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치열한 생존경쟁이면드러낸.  

그런 사회에 약자들이 놓인 처참한 현실을 보여준다.



올리버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젊은 여자의 아들로 구빈원에서 태어나, 곧 고아가 된다.

‘ 항상 배를 곯으며 죽도록 일해야 하는 신세, 세상을 헤매며 구둣발에 차이고 쇠고랑을 찰 신세, 모두가 경멸하고 아무도 불쌍히 여기지 않는 ’(1권 14쪽) 처지로 평생 살아야 할 올리버.


올리버가 거쳐가는 세상은 학대받는 아이들, 업무적 책임을 사익으로 바꾸는 관리자들, 이익에 눈먼 사람들, 음침한 범죄자의 세계이고.

밑바닥 인생들만이 아니라 어엿한 권위를 갖춘 고귀하다는 자들이 저지르는 일상적인 악덕이 넘치는 세상이,     

권력과 명예로 치장하고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탐욕과 몰염치함,     

그들의 기만과 사기에 의해서도 올리버는 끊임없는 고초를 겪는다.


읽기에매우 고통스러운 비극적인 상황을 작가는 흥미진진하고 익살스럽게 이야기를 끌어간.

유머 감각이 뛰어난 작가의 재능으로 끊임없이 웃음보를 쥐게 하는 풍자와 해학이 가능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어린 올리버에게 닥친 가혹한 운명이 너무 슬퍼서 소설을 계속 읽을 수 없었을 것 같다.



늘 배고프고 얻어맞고 고통받는 상황에서

'올리버는 감정이 부족한 게 아니라 매우 풍부한 상태나, 오랫동안 학대받다 보니 감정을 잔인할 정도로 우둔하게 억누르면서 우울한 상태'(1권 49쪽)가 된다.


그러나 올리버는 그렇게 힘겨운 처지에서도 죽어가는 아이가 해준 '생전 처음 듣는 축복'(85쪽)을 절대로 잊지 않았고.

자신에게 '얼마 안 되는 음식'내주고 '다정한 말과 함께 동정과 연민이 깃든 눈물'(89쪽)까지 흘려준 가난한 노인의 친절을 마음에 깊이 새겼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아주 미미하지만 따사로운 볕을 마음 깊이 간직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학대받고 악의 구렁텅이에 온몸이 푹 빠진 비참한 처지에서도,

올리버는 악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착한 품성을 잘 지켜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작가는 경제적인 이유로 열두 살에 가족과 헤어져서,

학교도 그만두고 열악한 공장의 어린 노동자가 되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보호자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심지어는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도리어 아이를 괴롭히고 해치는 경우가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도 아이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

바르게 살고 싶다는 희망으로 좁은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려 몸부림친다.     

되풀이되는 고난으로 절망해 어둠 속에 마냥 주저앉기 전에 누가 손을 잡아준다면.

그 손길이 작은 디딤돌이 되어 아이들은 빛을 향해 힘껏 몸을 뻗을 수 있을 텐데...         

  


나는 작가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작가가 청소년기에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할까 상당히 두려워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산층의 생활에서 어린 노동자가 되는 급격한 위치 낙하를 겪으면서 비참한 세계를 알게 된 작가는.   

건강하고 밝은 생활에서 영영 멀어진 게 아닐까,     

나쁜 사람, 못난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하는 공포에 짓눌렸던  같.             


물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모든 것을 긍정하지는 않지.

작가는 그들이 스스로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곤란한 처지와 겪어내야 하는 고통 차근차근 설명한다.           

지금의 악당들도 한때는 더 나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계에서 희망은 금세 꺾이고.

자포자기, 될 대로 사는 쪽으로 기울었겠지.

때때로 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추한 모습에 혐오를 느끼고.

그러면서 (쓰러지지 않으려니) 추잡한 자신을 합리화하는 악당의 논리를 더 우겨대겠고.

그렇게 악순환.



작가는 어린 올리버가 고난을 겪어내고 이겨가는 과정을 통해,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선한 마음과 행동을 주문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려 했던 게 아닐까.

작가는 인과응보, 권선징악으로 소설을 끝맺는데.

올리버를 보면서. 

우리가 이루어야 할 진정한 행복이란 근사해 보이는 조건을 얻어내는 것보다,

스스로를 올바르게 지켜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다.



* 추가 1


근대 시기 영국 소설을 읽다 보면 불행 속에 있는 착한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유산을 물려받아 고난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말 그때는 독신 친척이 남긴 유산을 물려받는 경우가 때때로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던 당시 사회상의 역설적인 반영인지.

늘 궁금함.



* 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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