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조간신문을 들고 오신 아버지께서 내가 잠자고 있는 방문을 두드리셨다.
"너 오늘 학교 안 가도 되겠어."
쿨하게 말씀하시더니 툭, 신문을 주신다.
잠이 덜 깬 어두침침한 눈으로 신문을 받아 보니,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된 전면에 [유고]라는 낯선 단어.
친구들과 전화를 나누다가 그래도 궁금해서 학교에 가보니.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과 보기에도 무서운 탱크가 닫힌 대학 정문을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길 건너에서 잠깐 삼엄한 분위기를 살피고.
그들 눈에 띄면 괜히 혼이라도 날 것 같은 두려움에 얼른 시선을 비껴 나서.
군인들이 쫘악 깔린 거리를 좀 걷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방송에서는 종일 장송곡만 흐르고.
신문은 검은색 조의 표시와 상복을 입고 울부짖는 시민들의 행렬만 내보냈다.
누군가들에게는 확실히 초상이었겠지.
다시 부활했지만 말이다.
휴교,
그리고 잠깐 수업을 했다가 또 긴 겨울방학.
2학년 올라가서 학교에서는 시위, 집회가 많았다.
그러다 5.18로 또 휴교했다.
학생들이 모여 웅성웅성 집회를 시작하면,
학교 안으로 경찰보다 먼저 백골단이 달려 들어오고.
남학생들은 돌멩이를 던지며 반항하다가,
최루탄을 쏘면서 덮치는 경찰들에게 끌려가곤 했었다.
41년 전 박정희의 죽음이 알려진 날,
아침 식사자리에서 박정희 죽음에 대해 아버지는 짧게 소감을 피력하셨다.
"밖으로 강해질수록 안에서 무너지기가 쉽다."
권력에도, 집단에도,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지.
어릴 때부터 일제,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와 부패에 한결같이 저항하셨던 아버지는.
박정희의 죽음에 대해 아마 더하실 말씀이 있었을 텐데.
그때 나는 아버지와 토론하기에는 너무 어렸었다.
다만, 나 자신의 내실을 끊임없이 채우려 노력하는 것으로,
아버지의 가르침을 실천하려 한다.
아버지로부터 부자로 편히 살라는 세속적인 기대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소망을 받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