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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Dec 03. 2020

마음속에서만 떠돌던 말들.

활자로 만난 인물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1892년 도쿄에서 태어나,

1927년, '몽롱한 불안'이라는 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본 작가이다.

 《아쿠다가와 문학상》으로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정밀하고 섬세한 감성을 가진 작가의 작품 중에서 나는 다이도스지 신스케의 반생》이라는 짧은 소설을 좋게 읽었다.

내가 읽었던 도서관 자료 목록을 찾아봤는데 책찾을 수는 없었다.

대신 좋았던 구절을 저장해 둔 것이 있어서,

 구절들과 기억에 의지해 내성적이고 순수한 한 소년의 맑은 눈에 비친 세상을 들여다보려 한다.

책은 아마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단편선]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작가는 태어나자 곧 정신병이 발병한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서 자라게 되었다.

나중에는 외삼촌의 아들로 입적해서 "아쿠다가와"라는 외가 성을 따르게 되었는데.

입양아로서 자신을 키워주시는 부모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 더 반듯하게 생활하고, 열심히 공부했 말을 기억한다.


어릴 적부터 총명했던 작가는, 도쿄제일고등학교-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로 이어지는 최우등 코스를 밟았지만,

관계나 경제계로 진출하는 대신 문학을 하기로 한다.

작가는 어머니의 정신병이 자신에게도 드러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는데.

입양아로서 부채감.

어머니의 정신병을 물려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두 요인은 작가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겠다.



양부가 된 외삼촌은 인플레로 날이 갈수록 가치가 줄어드는 고정 연금으로 생활하는 퇴직 관리였다.

근대 일본 제국이 아닌 도쿠가와막부 세계에 속했던 부모는.

역시 근대화로 희생되고 뒤쳐진 동네

도쿄 스미다 강의 동쪽 오래된 마을에 살아왔다.

이곳은 에도시대 시타마치 지역으로,

생활의 모든 부분에 신분제가 철저했던 도쿠가와막부 시대에 주로 공상업을 하는 서민들이 밀집되어 살았던 저지대이다.

또 서민 계층에게 허락되었던 유흥과 독특한 계층 문화가 뿌리내린 지역이기도 했다.

(지금은 천지개벽했는데 현재 도쿄의 고토구에 속해있다.)


'다이도지 신스케'는 작가를 연상케 하는 조용한 소년이다.

수재들이 모인 (동네가 아니라) 도쿄 단위의 학교에서,

동급생들 다수가 예전 무사계급이 차지했던  지반이 단단한 고지대.

근대기에 근대적인 중상층 지역이 되었고.

도쿄의 서쪽으로 확장되어 간'야마노테'에 살았을 텐데.



날로 화려해지는 세상에서 무언가 빼앗긴 듯 억울하고 밀려난 느낌에 더해.

나날이 기울어가는 형편에 헛된 체면만 차리는 부모는,

사소한 가식과 허세 간극을 견딘다.


그런 부모의 위선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학교의 폭력성에 진저리 치면서.

그러나 이것들에서 벗어날 수도 없어 몹시 괴로웠을 소년은.

헌책방에서 책 읽는 기쁨을 느끼고.

자신이 살아가는 초라하고 누추한 거리에서  숨어있는 자그마한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소년이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던,

19세기 말 혼조 거리는 이랬다.

 '다이도스지 신스케가 태어난 곳은, 혼조에 있는 에코인 근처였다.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곳 중에, 아름다운 거리는 하나도 없었다. 아름다운 집도 하나도 없었다. 특히 그의 집 주위에는, 목욕통 등속을 만드는 목수의 집이랑 막과자 가게, 고물상 등이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집들 앞의 행길도 진흙탕으로 질척거리지 않는 때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또 그 길의 막다른 곳엔, 오다케구라의 시궁창이었다. 수초가 떠 있는 시궁창은, 언제나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물론 이러한 동네를 보고, 우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또, 혼조 이외의 동네들은, 그에게는 더욱 불쾌했다. 일반 주택이 많은 야마노테를 비롯하여, 말쑥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이전부터 있어 온 번화가도, 그를 압박했다. 그는 홍고나 니혼바시보다도 오히려 호젓한 혼조를 -에코인을, 고마도메바시를, 요코아미를, 하수 도랑을, 한노키바바를, 오다케구라의 시궁창을 사랑했다. 이는 어쩌면 사랑보다도 연민이었다. 하더라도, 30년 후인 오늘날에도 이따금 그가 꿈을 꾸게 되면, 아직도 그러한 장소들뿐이다.

  신스케는 철이 든 다음부터, 늘 혼조의 거리들을 사랑했다. 가로수도 없는 혼조의 거리들은, 언제나 모래먼지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신스케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르친 것은, 역시 혼조의 거리들이었다. 그는 지저분한 거리에서 막과자를 먹으며 자란 소년이었다. 시골 - 특히 무논이 많은, 혼조의 동쪽에 펼쳐져 있는 시골-은 이렇게 자란 그에게는 조금도 흥미를 안겨주지 않았다. 이는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도 오히려 자연의 추악함을 직접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혼조의 거리들은 비록 자연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꽃을 피운 지붕 위의 잡초나 웅덩이에 비친 봄날의 구름을 통해, 뭔가 애처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러한 아름다움을 보고, 어느덧 자연을 사랑하기 시작했다.(196~197쪽)        



다이도스지 신스케는 자신이 겪은 가난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신스케의 가정은 가난했다. 하긴 그들의 빈곤은, 한 지붕 밑에 여러 가구가 잡거하는 하류계급의 빈곤은 아니었다. 하지만 체면 유지를 위해 더욱 고통을 받아야 하는 중류 하층계급의 빈곤이었다. 퇴직 관리였던 그의 아버지는, 약간의 저금 이자를 제외하면, 해마다 500¥의 연금을 가지고, 하녀를 포함한 가족 다섯 명이 입에 풀칠을 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절약하며 검소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현관을 포함하여 방 다섯에 작은 마당이 있고, 대문이 있는 집에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옷 따위는 누구 한 사람 거의 해 입지 못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손님에게는 내놓을 수 없는 싸구려 술로 저녁 반주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역시 하오리 안에 깁고 또 기운 오비를 감추고 있었다. 신스께도- 신스께는 니스칠 냄새가 나는 그의 책상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책상은 헌 것을 사긴 했지만, 위에 깐 녹색의 나사 천도, 은빛으로 반짝이는 서랍의 손잡이의 쇠장식도 얼핏 보기에는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은 천도 엷고, 서랍도 수월하게 열고 닫히지가 앉았다. 이것은 그의 책상이라기보다는 그 집안의 상징이었다. 언제나 체면만은 차려야 하는 그의 집 생활의 상징이었다.

 신스케는 이러한 빈곤을 싫어했다. 아니, 지금도 당시의 증오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지우기 어려운 반향을 남기고 있다. 그는 책을 살 수 없었다. 하계 학교에도 갈 수 없었다. 새로운 의복도 입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모두 그런 것을 누리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부러워했다. 때로는 그들을 질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질투와 선망을 자인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이는 그들의 재능을 경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빈곤에 대한 증오는, 조금도 그것 때문에 변하지는 않았다. 그는 낡아빠진 다타미를, 어두컴컴한 램프 불을, 담쟁이덩굴 그림이 벗겨져 가는 당지를, 가정의 모든 궁상스러움을 증오했다.'(201~202쪽)        



'하긴 그에게도 다소의 행복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도, 신스케에게는 흐린 날에 구름 사이로 언뜻 새어 나오는 햇빛과도 같았다. 증오심은 어떠한 감정보다도 그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느 틈엔지 그의 마음에 지우기 어려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는 빈곤에서 벗어난 후에도, 빈곤을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또 빈곤과 마찬가지로 사치스러움도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스케의 사치스러움에 대한 증오는, 중류 하층 계급의 빈곤이 안겨주는 낙인이었다. 그는 지금도 그 자신의 내부에 이러한 증오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 빈곤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Petty Bourgeois의 도덕적인 증오를...'(204쪽)            



소년에게 있어 책이란,

'책에 대한 신스케의 정열은, 초등학교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이 정열을 그에게 가르친 것은, 아버지의 책장 밑에 있던 데이고쿠 문고본 중의 하나인 "수호지"였다. 머리만 큰 초등학생은, 어두컴컴한 램프 불 밑에서 몇 번이나 "수호지"를 되읽었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지 않을 때에도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하도록' 동관이 대송의 천자로부터 하사 받은 기나, 경양 강에서 죽송이 죽인 커다란 호랑이, 장청이라는 사나이가 나그네를 붙잡아 죽이고, 그 고기를 팔아 살아간다는 이야기에 나오는, 대들보에 매단 인간의 넓적다리 등을 상상했다. 상상? 그러나 그 상상은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웃거나 울곤 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전신(轉身)이었다. 책 속의 인물로 변하는 일이었다.  그는 석가모니처럼 수많은 전세나 과거생을 빠져나왔다.' (209쪽)        



세월이 흐르고 세상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만.

인간도, 인간 세상도 그 구조는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시타마치에 더 알려면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도쿄 이야기』와.

작가 '나가이 가후'의 소설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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