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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Nov 25. 2020

내 살아온 얘기를 들어보겠수?

활자로 만난 인물들

[산파 일기],  로렐 대처 울리히 지음,

윤길순 옮김, 동녘



미국 메인주에 할로웰이라는 지역이 있다.

대서양에서 강을 따라 깊숙이 들어앉은 .

거기에서 마서 밸러드라는 여인이 살아갔. 

1735 매사추세츠 옥스퍼드에서 태어나,

1754년 이프리엄 밸러드결혼했다.

아홉 아이를 낳았고 그중 셋은 어릴 때 잃었다.

오랫동안 산파로 일했고 1812년 사망했다,


이상과 같은 기록은 아마 구미 쪽 나라에서라면 교회나 시청의 먼지 쌓인 문서고에서 얼핏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공기록에서 인구 구성원으로 개체 생멸은 파악이 되지만,

숨을 쉬고 감정을 가진  사람살아갔던 희로애락의 하루하루를 알 수는 없다.

만났던 사람도, 했던 일도, 그날의 날씨도, 먹었던 음식도, 기쁨과 슬픔도.

모두 시간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공적인 기록과 누군가 남긴 편지들, 문학 작품, 그림 같은 시대의 작은 조각들을 모으고 연구해서 역사가들은 특정한 시대의 생활사를 상상해낸다.


마서 밸러드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고 산파로 일하면서.

공책을 손에 들고 틈틈이 일기를 썼다.

짤막하고 건조하게 사실 위주로 기록된 일지 같은 일기에는,

자신의 신상에 일어난 일들도 드문드문 쓰여있지만.

그날 자신이  곳 태어난 아기와 산모의 상태, 보수로 받은 액수와 외상 같은 업무 관련 사항부터.

그날 집에서 한 일, 오간 사람들, 지역의 아픈 사람들과 죽음, 날씨.

그리고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 같은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차곡차곡,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27년 간의 일기가 전해지 있는데.


한 역사 교수가 일기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고,

그녀일기와 당시  지역의 다른 기록들, 시대적 사실  여러 역사적 자료들 교차,  대조하면 광범위하고 꼼꼼하게 연구했다.

덕분에 우리는 역사책기록되지 않은 평범한 삶을 생생하게 짐작 수 있게 되었.

내가 아주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



산파가 되는 과정과 역할은 이전에 읽은 [트리스트럼 섄디]에도 나온다.

소설과 거의 동시대,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 개척지 마을에서 살아가던  마서 밸러드 역시 출산의 경험이 있고.

자녀들이 어느 정도 자라서 바깥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며.

아마 필요한 다른 조건도 갖추어서 산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산파의 일은 출산 과정에만 국한되지 않는.

마당에서 약초를 키우고.

그 약초들로 고약, 마시는 약, 찜질용 약을 직접 만들어 증세마다 적절하게 처방하면서 다른 병의 환자들도 돌보았다.

병든 사람 곁을 내내 지키고, 죽은 자의 염을 도왔다.

날씨에 상관없이 말을 타거나 걸어서.

들을 지나고 강을 건너 지역의 아픈 사람들과 태어날 아기들을 찾아다녔다.


동시에 어머니이면서 아내인 주부 마서 밸러드는,

아마를 기르고 실을 자아 옷감을 짰다.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바느질을 하고 빨래를 하고 비누를 만들었다.



인디언들을 밀어내면서 만들어가는 캐나다에 인접한 개척지 마을.

남편이 숲에서 나무를 얻고 이를 가공해 강을 따라 내보내는 제재업을 하기 위해 찾아온 곳이었다.

외부에서 사람들이 들어와 형성되어가는 과정에 있던 할로웰 마을 부족한 것이 많았다.

마을 사람들은 오븐 하나돌아가며 빵을 굽고.

이웃들끼 노동력과 도구를 서로 빌리 빌려주면서 옷감을 짰다.

처녀들은 자신의 집 또는 이웃들의 가사를 도와주면서 살림살이를 배우결혼 비용을 았다.


공적 기록에서찾아볼 수 없는 지역 여자들의 경제 네트워크-

그러니까 함께 또는 재료와 노동력을 주고받으며 실을 잣고 옷감을 다.

모자라는 식료품은 서로 주고받는다.

이웃들이, 어떤 방식으로 노동력과 돈과 물품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도와가는지 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또 아이가 자라고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그 시절의 인생사들도 27년 동안의 기록 안에 담겨 있고.

겨우 살림을 일궜다, 싶으면 재난이 닥치고.

전염병이, 전쟁이 일어나 생존의 기반을 뒤흔드는 생존의 어려움이 담겨있다.

경제적인 위기는 때때로 닥치고.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기간도 있었다.

자식 일은 대로 되지 않는다.

일가를 이루는 자식들과 늘어나는 자손들은 기쁨이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 시절, 문맹이 대다수였을 때.

글을 쓸 줄 알았던 마서 밸러드가 매우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는 건 일기를 통해 알겠다.

그렇다고 특별히 훌륭한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는 그녀의 일기에서 '험담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125쪽)고 한다.

또 산파로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도우려고 했다.'(125쪽) 고도 전한다.



마서 밸러드는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워있는 마을 사람의, 태어딸을 위해 기도한.

"전능하신 하나님, 이 아이를 축복하고 이 아이가 아버지를 본받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우리가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선의는 이 정도가 아닐까?


이승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하늘로 가신 마서 밸러드가 영원한 안식을 얻으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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