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풍경

마음에 남긴 풍경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나처럼 건물만 잔뜩 있는 내륙의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볕이 좋은 ,

바다에 갔다가 끝없이 출렁이는 파란 바다를 그리움으로 품은 채 도시로 돌아온다,

그래서 바닷가 도시에 대한 어떤 로망이 있다.

아침에 눈 뜨면 검푸른 바다 위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볼 수 있겠지.

기분이 울적할 때는 바닷가를 거닐면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에 시름을 실려 보낼 수 있겠네, 하는.


대학에 들어가서 해안 도시에서 온 친구들에게 맨날 바다를 볼 수 있으니 좋겠다, 했더니.

우리도 바다 보려면 일부러 차 타고 가야 해, 눈 동그랗게 뜨고 말하더라.

아우, 부끄러워.

왜!

미처 그 생각을 못했을까?



바닷가 마을을 찾아간다.

서울과 다를 바 없이 다닥다닥 간판을 붙인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버스터미널에 내린다.

터미널 건물을 나가 다시 버스를 갈아탄다.


바닷가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모여 살아온 작은 마을들이 있다.

바다에서 약간 떨어져 위로 올라온 단단한 지대이다.

마을들을 연결하는 길이 있고 버스는 바다 가까이 이 길을 달린다.

파란 바다 안쪽으로 알록달록 지붕들이 보이고 골목이 있는 마을을 지나면.

길은 다시 초록의 밭, 나무들, 창고 또는 언덕이나 절벽, 아주 가끔 외딴집... 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버스 안에서 푸른 바다는 보이다 말다 하고.

여행자는 고개를 내밀어 풍경에 집중하지.



제주도에는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었다.

간선버스는 꽤 가까운 거리마다 있는 버스정류장에 일일이 차를 세운다.

동쪽과 서쪽의 바닷가를 각각 둘러 다니는 길고 긴 버스 노선이 있다.

시간이 많은 나는 그 버스를 탄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제주도 바닷가 풍경은 다채롭다.

커다란 동백나무에 붉디붉은 동백꽃이 가득 피어 있는 모습이 정말 낯설더라.

집에서는 화분에 심겨 두어 송이 작은 꽃만 피는 동백을 보았기에,

붉은 꽃들을 화려하게 피운 굵고 키 큰 동백나무들이 꽃잎들을 떨궈서 땅을 붉게 물들인 풍경이 신기했다.

키 작은 초록의 감귤나무는 또 얼마나 많은 주황색 열매들을 품고 있던지.

이 많은 결실들을 키워내고 무겁게 품어내다니, 고맙고도 애처로운 심정이 되었다.



크고 작은 마을들은 풍경이 비슷한 듯 다르다.

끝없이 시퍼런 바다가 보였다가는,

깎아지른 벼랑에 안긴 잔잔한 바다도 있었다.

어선들이 출렁거리는 부두가 있고,

방파제로 둘러 싸인 포구도 있다.

길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그래도 버스정류장에는 여행자가 가방을 들고 서있더라.


버스는 점점 제주시로 다가간다.

마을들이 커지고 있었다.

나는 순간순간 졸음이 오고 허기졌다.

이름을 들어본 어느 동네에서 버스를 내리지.

수협이 있고 우체국이 있는 큰 동네.

담장이 낮은 초등학교에 아이들이 오가고.

미장원과 학원, 방앗간과 식당들이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한가함이 있다.

남쪽에서 떠날 때는 화창했는데,

북쪽에 오니까 어두운 구름이 해를 가렸다 말다 했다.

바다는 어디?



시야를 막는 상가들 사이에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길에 들어서자 바람이 세차다.

골목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멀리는 검푸르고 가까이는 옥빛인 바다에는 하얀 물살이 연신 밀려오고 부서지고 있었다.

길을 내려가 몸을 뒤흔드는 바람을 맞았다.

첨단의 도시적인 카페가 있는 바닷가를 좀 걷다가.

안쪽으로 들어가 손님 없는 식당에서 뜨끈한 고기국수를 먹었지.

다시 바다를 좀 걷다가 버스가 다니는 도로로 나와 레트로 풍의 커피집 나무 문을 밀었다.

젊은 주인들이 서있는 볕이 쏟아지던 작은 가게에는 손님이 없었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다시 버스를 탄다.

제주 시내로 다가가자 정면으로 구름에 가려진 한라산이 우뚝, 다가온다.

검고 큰 산은 감동을 준다.

좀 뭉클해졌네.



시내에 가까워지면서 바닷가에는 각양각색의 건물들이 많아지고 규모는 커진다.

번잡해진다.

자본이 자리를 넓혀 가는구나, 싶은.


그래도 줄지은 건물들 사이로 바다를 향하는 골목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어김없이 길게 나있었고.

그 골목이 끝나는 곳에는 변함없이 푸른 바다가 반짝반짝 출렁거리고 있었다.


아, 밀려오고 밀려가는 푸른 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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