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차는 달려가고 Dec 16. 2019

집밥의 기술

음식에 관한 단상 6

젊었을 때는 잘한다는 식당들을 찾아다녔고,

근사한 식당이 새로 문을 열면 냉큼 달려갔다.

분위기 좋은 카페 엄청 따졌고,

새로운 메뉴, 몰랐던 음식은 꼭 먹어봐야 했다.

식생활에 있어서만 '얼리 어답터'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  

나이가 들어서인지 원래 성향 때문인지.

-아아, 돈이 없어진 시기와도 맞물리기는 하는군-

젊은 그 시절이 딱 지나니까 돌아다니는 게 싫어졌다.

사람 만나면 피곤하고,

말을 많이 내놓은 날은 마음이 불편했다.

되도록 집에서 책 읽고 음악 듣고 사색하며(응?) 지내는 게 마음도, 몸도 편했다.


진성 집순이인 나에게 음식은 여전히 큰 관심거리기에,

음식에 관한 정보는 눈에 띄는 대로 훑어보고,

호기심이 이는 식당은 '가봐야지!' 메모해두지만.

나가기 싫다!

집에서 편하게 밥 먹는 게 좋더라!

-하는 강력한 관성은 나를 집에 붙들어 놓으니.

오늘도 나는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또 밥상 차리고, 치우고, 청소하고 정리하고.

과로 중이다.



예전에 비해 살림하기는 무척 쉬워졌다.

편리한 부엌 구조, 각종 가전제품, 다양한 조리도구들은 음식을 만들고 치우는 일을 수월하게 해 주고.

풍부한 식재료는 더군다나 먹기 좋게 손질되어 집까지 배송된다.

랜선에는 세계의 모든 음식에 관한 정보와 조리법이 흘러넘친다.


한편 살림을 전담하는 사람은 줄고,

에 대한 기대는 높아졌다.

허기를 면하고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능을 넘어 음식은 맛있고 보기도 좋아야 한다! 고 요구한다.


무엇보다 인생의 전반에 걸쳐 기대치가 높아졌다.

먹을 것을 구하고, 밥상을 차리고, 자손을 키워내는 것.

더 바란다면 그것들이 좀 더 안정적이고 풍성했으면, 하는 것 이상을 바랐던 옛날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라고 모든 사람들이 묵묵히 또는 기꺼이 고생스러운 삶을 받아들이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건 원래 고되고 힘겹다는 걸 지금 사람들보다는 순순이 받아들였을 거라고 상상한다면 오해일까?



'자아실현'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표현되는 삶에 대한 기대에,

부엌에서 밥상 차리느라 '허비하는' 모습은 포함되지 않아 보인다.

각종 매체에서 쏟아내는 연출된 비현실적인 비주얼이 압도하는 세상에서,

부엌에서 동동거리며 음식 냄새 밴 후줄근한 행색은 절대로 근사하고 멋져 보이지 않는다.

내 손에 쥐어지는 당장의 보상도 없고 말이지.


그러면서도 엄마의 밥상을 그리워하고.

고된 하루에 지친 내가 돌아갈 따듯한 집의 풍경에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맛난 '집밥'이 필수이니.

이제 집밥은 좋아하고 그리워하지만,

직접 만들기에는 귀찮고 곤란한 숙제가 되었다.



매일매일, 휴일 없이, 하루에도 여러 음식을 만들고, 치우는-

반복되는 일은 지루하고 성가시다.

식비로 쓸 수 있는 금액은 뻔하고,

입맛은 늘 새로움을 요구한다.

늘지 않는 솜씨로 맛있는 요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해보려는 의욕을 사그러뜨린다.

과연 집밥은 마지못해 해내야 하는 노동일 뿐인가?



음식 만들기, 더구나 집밥을 만드는 일은 매우 창의적인 작업이다.

날씨, 몸 상태, 먹는 사람 입맛, 냉장고 사정이 매번  

다르다.

같은 이름을 가진 음식을 만들더라도 내가 쓸 수 있는 재료도, 식탁 상황도 그때그때 다르니,

뭔가는 꼭 모자라는 재료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절대로 지루할 수 없는 작업이다.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일이다.


마음이 심란할 때가 있다.

실타래처럼 엉킨 상념과 미로 같은 심연에

존재가 붕붕 떠다닌다.

밥시간이 되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한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매콤한 볶음 냄새가 집안을 감쌀 즈음에는,

밥상으로 식구들을 부르는 자신의 명랑한 목소리에 스스로 놀랄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걷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부단히.

일어나고 발자국을 떼고 주저앉고 다시 걸어보는 실패와 도전의 반복을 통해 아이는 걷고 뛰게 되었다.

인생의 어떤 것도 지루하고 반복되는 시간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성취하는 잠깐의 순간까지 인생의 모든 것들은 서툴고 불안하고 고단한 긴 과정을 견딘다.


사실 한국 음식이나 외국 음식이나 조리법은 그리 다르지 않다.

굽고, 볶고, 조리고, 튀기고, 찌고, 삶고, 버무리고.

또는 이들의 중복.

하면 는다.


각 재료의 맛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각각의 맛을 알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지는 음식을 상상할 수 있다.


솜씨가 없어도 조리 방법을 잘 따라 하면 일정한 맛이 나오는 요리가 있다.

착실하게 성의껏 레시피를 따르면 된다.

그런 음식들만 손에 익혀도 식구들 밥상은 충분히 차려낸다.


제대로 해보기 전에 미리 포기하지 말 것.

서툴고 미숙한 시간을 견딜 것.

타인에게 기대지 말 것- 내가 해낼 거임!- 요런 자신감이 필요하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힘들고 지쳐있는 상대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괴롭지만,

자신이 짊어져야 할 인생의 무게를 대신해줄 수 없다.

그저 밥 한 끼 공들여 차려주고, 묵묵히 지켜보고, 조용히 기도하는 것.

소중한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인생에는 혹한기가 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이 나를 덮쳤다.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어둠은 끝이 없고,

어디서부터 잘못했더라?- 끝없는 자책으로 심신은 너덜너덜하다.

세상이 밉고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바닥을 보이는 쌀.

말라버린 감자, 싹이 난 양파를 손질하고.

찢어진 봉지에 남은 멸치 몇 개,

굳어버린 된장 한 숟가락.

긁어모아 된장국에 밥 한 그릇으로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린다.

울면서 밥 한 숟가락,

콧물 훌쩍이며 국물 한 모금.

그렇게 스스로 다독이면서 하루하루 견디는 거다.

견디다 보면 계절이 바뀌고,

어느새 훨씬 단단하고 의젓해진 자신을 볼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양키 물건 - 미국을 선망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