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차는 달려가고 Jan 12. 2021

이글이글, 돈을 욕망하다.

활자로 만난 인물들

[돈] ,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문학동네



예전에 읽었던 소설인데 문득 다시 읽고 싶어 졌다.

소설은 1890년에 들어선 즈음에 쓰였는데  배경은 1860년 대, 파리이다.

150년도 에 벌써 프랑스 금융 시장의 행태나 돈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

읽다 보면 종종 괴로움을 느끼면서 책을 덮어버리고는 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작가인 에밀 졸라는 마치 과학자나 사회학자가 대상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면서 면밀하게 연구하듯.

또는 화가가 매우 정밀하게 도시 그림을 그리듯이.

나폴레옹 3세 치하 프랑스 제2제정 시대의 면모광범위하게 파악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갖가지 인간들과 사건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관점에서  일련의 소설들 

'루공 마카르 총서'라는 스무 권의 연작이고. 총서의 18편인 [돈]은 은행, 증권가를 배경으로 '돈'을 둘러싼 인간의 행태를 탐구한다.



소설에는 물질이 파도같이 인간들을 휩쓸어 대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남녀노소, 부자와 가난한 자, 귀하고 비천하고. 

무조건 돈을 욕망하는 자들과 그래도 뜻있는 삶을 찾으려는 자 등 각각의 사연을 가진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동방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성실한 기술자는 빈곤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동방의 발전을 꿈꾼다.

재물향한 욕심으로 부침을 겪어온 야심가 샤카르는 동방에 관한 얘기를 듣고는 '동방 정복'이라는 사업으로 구상하고.

당시 성공에 도취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동방 정복'은 돈을 끌어모으구체적인 사업으로 계획된다.

몇몇이 모이고, 그 누구실제적인 투자 없이 서류 위에 '펜대만' 놀림으로써 주식회사 만국 은행이 출범한.



사업은 돈으로 매수한 각 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또는 은밀히 홍보, 광고되고.

귓속말과 뜬소문,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과 과시적 소비.

무엇보다 치솟는 주가로 사람들의 돈에 대한 욕망에 불을 붙인다.


사카르는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이다.

엄청난 돈을 맘껏 쓰고 싶어 하는 사카르는 화려한 생활을 하고.

거대한 사옥을 짓고 여자들을 탐한다.

실제 동방에서 사업은 진행했지만.

주가는 실적이 아니라 주로 탈법과  비밀정보, 허위과장. 

배당과 보수, 불법과 운에 기대는 투기로 급격하게 끌어올려진다.


위태위태하게, 그러나 겁 없이 살얼음판에서 공중 줄타기를 하는 사카르.

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인식은 이러하다.

"... 투기는 서투른 자들만을 잡아먹는 법이라오."

".. 투기, 그것은 삶의 미끼이자, 우리로 하여금 투쟁하고 살게 만드는 영원한 욕망이라오."(186쪽)


그러나 사카르가 한바탕 투기판에 뛰어들  무렵,

누군가가 말했던 파리 사정에 관한 비관적인 소회를 떠올려보자.

"그래, 당신한테는 시장이 견고해 보이겠지. 거래도 활발해 보일 테고. 하지만 결말을 기다리시오.... 파리에서는 너무 많은 파괴와 너무 많은 재건축이 이루어졌. 당신도 알잖소! 연이은 대공사가 은행 예금을 죄다 소진시켰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이제 막 창립된 노동자 인터내셔널이 나는 두렵기 짝이 없소. 프랑스에서는 저항운동, 노동운동이 날마다 커져가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과일 안에 벌레가 있소. 모든 것이 폭발할 거요."(16쪽)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몇 가지 점이  눈에 띄었는데.

첫째, 정-재계는 은밀하게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서로 신출내기 뜨내기가 아닌 공고하게 이어온 오래된 관계를 선호한다.


둘째, 정의를 내세우는 공권력은 종종 개인적인 이유로 잔인하게 휘둘러진다.


셋째, 언론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매체들은 반드시 옥석을 구분해야 한다.


넷째, 한 세대 전인 영국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도 보았는데,

당시 사회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가 상당했다.

돈을 쥔, 돈을 향한 그들의 행태가 사실이라면,

증오받을 근거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다섯째, 동방, 즉 현재 일부 중동 지역에 대한 당시 그들의 인식은 식민지배와 궤를 같이한다.

비교적 선량한 사람들도 앞선 그들의 기술력이 동방을 빈곤에서 구할 듯이 믿고 있었나 보다.

흥!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흥미 있는 점인데.

비슷한 시기 영국 소설은 좀처럼 남녀의 애정 문제를 구체적으로 담지 않는다.

이에 비해 프랑스 대개의 소설에는 도대체 금기가 없는 남녀의 복잡한 애정 행각을 틈날 때마다 상세하게 다룬다.

영국과 프랑스는 애정에 대한 견해가 그토록 달랐던 것일까?

아니면 이를 다루는 소설가들만 달랐던 것인가?



소설의 몇 구절을 인용한다.

그때 그들의 '동방'(지금 이른바 중동 일부 지역임)에 대한 인식은 이러했다.


십자군이 시도했었던 일, 나폴레옹이 완수할 수 없었던 일. 사카르를 불타오르게 한 것은 동방 정복이라는 그 거대한 과업이었는데, 이번에는 과학과 돈이라는 이중의 힘을 통해 합리적으로 실현할 정복이었다. (102쪽)



이른바 언론이라는 매체들실태를 보자.


이처럼 말을 잘 듣는 특별 언론 전투부대를 만들어, 매호마다 사카르가 진행하는 사업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알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또한 거대 정치•문학 신문들과  

일괄 청부 조건으로 교섭을 벌였고, 거기에 일련의 호의적인 단평, 찬사로 가득 찬 기사를 싣게 했으며, 새로운 주식을 발행할 때마다 주식을 선물함으로써 그들의 협력을 확보했다. 게다가 그의 지시에 따라 《레스페랑스》는 일상적인 캠페인을 벌였는데, 그것은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과격한 캠페인이 아니라 설명과 토론으로 독자를 장악하고 정확하게 독자의 목을 조르는 완만한 캠페인이었다.(243쪽)



흠.

시간이 흘러도 인간사는 여지없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만큼 사랑이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