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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an 21. 2021

내 인생을 살아낼 테야!

활자로 만난 인물들

[카불의 책장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지금은 소식이 뜸하지만 한때 아프가니스탄은 매일 뉴스에 보도되는 분쟁지역이었다.

쿠데타와 기나긴 전쟁, 폭발과 총격, 죽음과 암살이 일상적이었던 곳.

마약의 주요 공급지이기도 하고.

왕조와 공산주의 정권,  

무자헤딘과 탈레반.

또 러시아와 미국 같은 외세들이 휘저어놓은 곳.

우리가 갈 수 없는 땅의 사람들을 만나보자.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종군한 작가가 2002년에 발표한  [카불의 책장수]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가정을 비롯해 아프가니스탄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고 있다.

처음 읽었을 때도 울화통이 터져서 끝까지 읽느라 힘들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읽는 내내 평정심을 지킬 수가 없었다.



화약 냄새 자욱한 전쟁의 폐허를 떠나 2001년 11월 작가가 카불에 도착했을 때.

책으로 둘러싸인 책방에서 아프가니스탄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

품위 있는 책방 주인과 문학과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작가는 상쾌한 기분이 된다.

그러면서 아프가니스탄 가정을 들여다보고 싶다, 는 생각이 떠올랐고.

남녀 구분이 확실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서양 여자인 작가는 일종의 '양성적'(12쪽)인 존재라서.

책장수는 흔쾌히 작가가 자신의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한다.


부지런하며 대담하고 수완도 있는 50대 책장수,

어릴 때부터 장사를 하면서 많은 고초를 겪어왔.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 그의 사업은 모처럼 호기를 맞았고.

그는 사업에 자신의 역량을 쏟아부으면서 집안 남자들도 총동원하고 있다.

전쟁으로 망가진 방 넷 아파트에서 책장수는  아내와 아이들, 어머니와 결혼하지 않은 그의 남동생과  자매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 셋과 딸을 낳은, 연상의 첫째 부인.

아장아장 딸을 낳았으며 아직 10대인 둘째 부인.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이동한다.

작가가 생활수준이 높은 서구 출신이고 그 입장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점을 상기하자.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이 매우 위험하고 궁핍해서 살아내기가 힘든 곳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인권이니 자유니 개인의 꿈, 같은 추상적인 가치는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절대 명제 앞에서 가볍게 묵살되는 곳이다.



아프가니스탄이 한창 뉴스에 보도될 때,

녹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누런 흙먼지가 날리는 척박한 땅에서.

하늘색 치렁치렁한 부르카로 온 몸을 뒤덮은 여인들이 걸어가는 사진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작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입장을 체험해 보기 위해서,

자신을 남의 시선이나 위험에서 가리기 위해 외출할 때 부르카를 착용했다.

그 소감은 이러하다.


부르카가 얼마나 머리를 죄고 두통을 일으키는지, 그물망을 통해 내다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부르카 안이 얼마나 밀폐된 공간인지, 얼마나 공기가 부족한지, 얼마나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하는지, 나는 몸소 체험했다. 발이 안 보이기 때문에 걸으면서 항상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고, 먼지는 어떻게나 달라붙고, 더럽고, 거치적거리는지.(13쪽)



불안정하폭력이 일상적인 빈곤한 사회는 쉽게 약육강식이 되어버린,

약자에게가혹함이 가중된다.

더구나 여자는 나가서 돈을 벌 고.

제멋대로 정한 규범이니 도덕으로 여성들을 칭칭 묶어두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열한 살에 나이 많은 남편에게 시집와 자식 열셋을 낳은 어머니.

둘째 딸은  어머니의 지지를 받으며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교사가 되어 수학과 생물을 가르쳤고 애절한 사랑도 해보았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고 피난을 가고 탈레반이 학교를 닫아버려 일터를 잃고 말았다.

어머니는 나이가 많아진 둘째 딸을 아이가 열이나 있고 쉰 살이 넘은 홀아비에게 100달러를 받고 시집보내고.

몸과 마음이 불편한 셋째 딸은 언니 결혼에  선물조차 받지 못한 채 홀아비에게 시집을 다.


그곳 여자들의 처지는 이렇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자가 사랑을 갈망하는 행위는 금기 사항이다.... 사랑은 중죄를 저지른 것으로 해석되어 죽음으로 처벌받기까지 한다. 감히 규율을 어긴 자는 잔인한 최후를 맞는다. 죄지은 남녀 중 한쪽만을 처벌해야 한다면 처벌받는 쪽은 언제나 여자다.

무엇보다도 젊은 여자들은 교환이나 매매의 대상이다. 결혼은 집안과 집안 사이, 혹은 집안 내에서의 계약이다. 성사 여부는 그 결혼으로 집안에 어떤 이득이 생기느냐에  달려 있다. (59쪽)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해바라기가 꽃의 방향을 바꾸듯.

책장수 집안사람들은 제맘대로 인 독재자 가장에게 휘둘리면서 가장의 비위를 맞춘.


남편이 어머니와 누이들의 반대에도 둘째 부인을 얻기로 하자 스무 날을 울었던 첫째 부인.

어린 둘째 부인에 대한 남편의 편애는 체념했지만,

남들에게까 버림받은 여자로 보이 견딜 수 없.

그래서 남들에게 자신의 병 때문에 자기가 나서서 남편에게 둘째 부인을 얻어준 양,

둘째 부인과 매우 잘 지낸다고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가난한 집안의 딸로,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 온 둘째 부인은,

남편이 자기를 해주고 궁핍하지 않은 살림살이 그럭저럭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니까 사는 게 이런 거려니, 받아들이는 거겠지.



책장수의 막내 여동생은 내가 손을 꼬옥 잡고 안아주고 싶은 인물이다.

작가가 집에 온 날 자신보다 열 살도 더 많은 작가에게 그녀는,

"당신은 내 아기예요. 내가 잘 돌봐줄게요."(9쪽)라고 말했던 레일라.


열아홉 살 레일라는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집안일 대부분을 혼자 해낸다.

늙은 어머니를 살뜰하게 보살피고.

학교 대신 일터로 내모는 아버지로 인해 불만이 터져나갈 듯한 조카들에게 온갖 악다구니화풀이를 당한다.


새벽에 제일 먼저 일어나고, 밤에는 가장 늦게 잠드는 이가 레일라다. 식구들이 아직 코를 골 아대는 시간에 그녀는 거실 난로에 불을 지핀다. 다음에는 목욕탕 난로에 장작을 때서 요리와 빨래와 설거지할 물을 끓인다. 바깥이 아직 어둑할 때 레일라는 물병과 냄비에 물을 채운다. 이 시간에는 전기가 들어오는 법이 없지만, 이제는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일하는 것에 익숙하다.  때로는 작은 램프를 켜 두기도 한다. 다음에는 차를 끓인다. 집안 남자들이 일어나는 6시 30분까지는  차 마실 준비를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한 잔소리를 듣는다. 수돗물이 나오는 동안에는 계속 받아두어야 한다. 언제 끊길지 모르기 때문이다.(204쪽)


이런 이른 아침부터의 일과가 늦게 잠들 때까지 계속된다.

그래도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한다.

큰아들을 공부시키느라 다른 자식을 희생해가며 부모가 공을 들였지만,

그건 다 잊히고 며느리 즉 가장의 첫째 부인은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악을 써대곤 한다.


"딸들 데리고 그냥 없어져요."

"여긴 비좁다고요. 우리끼리만 살고 싶어요." (216쪽)



하녀보다 못한 처지에서 막내딸 레일라는 어머니를 지키고 집안의 모든 일을 묵묵히 해낸다.

몸을 사리거나 도망치려 들지도 않는다.

원망하지도 않고 넋두리하지도 않는다.

가혹한 운명의 시련을 씩씩하게 감당해낼 뿐이다.


이를테면 치사한 책장수는 어쩌다 과일을 사 와서는 둘째 부인과 쓰는 방의 찬장에 넣어 자물쇠를 채운다.

그리고는 이만 먹지.

어느 날 둘째 부인이 먹을 수 없게 말라비틀어져서 딱딱해진 오렌지를 부엌에 내놓았는데.


레일라는 오렌지를 맛볼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다. 만약 콩만 먹고살도록 저주받은 운명이라면, 콩만 먹으며 살 것이다.(217쪽)



마지막으로 결혼 잔치 분위기를 살펴볼까?

책장수의 큰아들이 '삼류 결혼식'이라고 악담한 둘째 딸네 결혼 잔치에 준비한 식품 분량은 다음과 같다.


쌀 150kg, 양고기 56kg,  송아지 고기 14kg, 감자 42kg, 양파 30kg, 시금치 50kg,  당근 35kg,  마늘 1kg,  건포도 8kg,  땅콩 2kg,  식용유 32kg,  설탕 14kg,  밀가루 2kg,  계란 20개,  녹차 2kg, 홍차 2kg,  사탕 14kg, 캐러멜 3kg에다가 각종 향신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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