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살아남은 영국 귀족, 사라진 프랑스 귀족



서양에서 들어온 크리스마스다.

밥도 잘 먹고, 쉰나^^ 쉰나 ^^

캐럴을 연거푸 듣다 보니 저절로 서양을 떠올리게 되었네.


나는 사학과 출신이다.

문과대로 입학해서 2학년 올라갈 때 전공을 지원했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정원이나 성적 제한 없이 누구나 원하는 과에 진급할 수 있었다.

학년마다 영문과 학생 수가 제일 많았고,

철학과가 제일 적었다.


나는 고적 답사에 가고 싶어서 사학과를 선택했는데.

사학과를 나왔다 해서 역사 공부를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가방 들고 왔다 갔다만 했지.

그래도 졸업할 때 되니까 사학과 3년 동안 들은풍월이 있었던지,

인생 길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릴 때는 '짧고 굵게'에 끌렸었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가늘고 길게'를 결심한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가늘게 살 줄은 정말 몰랐었다.

그래서!

가늘게 갈 바에는 길게도 가야겠다고,

장수의 의지를 다지는 중이다, 요즘.

끙.



소설을 많이 읽었다.

특히 유럽 근대기 소설들을 많이 읽었다.

소설을 읽다가 그 시기가 궁금하면 역사책, 지리책을 찾았다.

동시대의 소설을 많이 읽다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어렴풋이 그 시대나 그 사회가 보이더라.

제대로 보는 건지 의문이긴 하다만.

다음에 쓰는 내용은 그렇게 소설들을 통해서 내가 대략 이해한 내용이다.


유럽 역사는 복잡하다.

수많은 전쟁, 교황권과 왕권, 귀족들의 영지 같은.

중앙집권 왕정인 우리나라와 다른 역사적, 사회적인 배경이 있다.

그중에서 나는 영국의 왕과 귀족은 아직 살아남고.

다른 나라, 특히 프랑스에서는 처참하게 귀족들이 절멸된,

그 차이가 궁금했다.

(귀족이 살아남아 좋다는 뜻이 아니다.

오래된 특권계급이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생존해내는 방식에 흥미가 끌리는 것이다.)



일일이 서술하기에는 너무 기니까 결론만 말씀드리면.

영국도 피를 본 과정은 있지만 대체로 기득권 세력인 귀족들이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지루한 협상과 타협을 통해 시민들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이 쥐고 있던 권력과 이권을 차례차례 내놓아간다.


지금 대부분의 귀족들은 비용이 많이 드는 거대한 '하우스'를 관리할 형편이 안 되어서,

팔거나 기부하거나 호텔로 운영하거나. 아니면 시민들에게 저택과 컬렉션을 개방하여 입장료 수입으로 유지,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상부터 살아온 화려한 본채는 구경거리로 내놓고.

귀족께서는 예전에 집사나 하인들이 살던 건물에 살면서 장화 신고 직접 정원을 돌보기도 한다고.

많은 걸 잃었지만 나름 즐겁게 살아가더라.



반면 프랑스 귀족들은 시민들의 개혁 요구를 무시하거나 단번에 거부하면서.

강대강 정면 대결.

피를 부르는 혁명과 반혁명이 되풀이된 끝에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외부 요인 말고 부패하고 무능하며 악행을 저지르면서,

귀족 스스로 내부에서 몰락한 요인도 중요하다.



두 나라의 판이한 역사적 진행에 대해 국민들의 기질적 차이라는 등,

역사학자들은 왈가왈부 원인을 찾는데.

내게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 협의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던.

그래도 변화하는 세상과 자신들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의지가 있었던 영국 귀족과.

무조건 내가 가졌던 기득권은 하나도 내놓지 않겠다는 일방통행 프랑스 귀족들의 차이가 인상적이었다.


영국 귀족들은 전원에 있는 영지에서 실제 거주했다.

전원생활은 영국인들에게 이상적인 생활 방식이어서.

일반인들도 부자가 되면 촌에 너른 땅을 사서 정원을 만들고 저택을 지어 전원생활을 했었다.


귀족 또는 (그 아래) 신사 계급은 봄, 여름, 가을에는 영지의 저택에 머물더라.

영지에 있어도 여행, 사냥이나 낚시, 파티, 교제로 바빴겠지만.

때때로 전원의 행복을 누리고 서재에는 책도 잔뜩 쌓아 두었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관리인을 통했지만) 대개 영지에서 농업을 경영하였고.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영지에 있는 주민들에게 관심은 있었다는 점이다.

최상의 경우에는 주민들의 어려움을 돌보는 사례도 있었다.

(반면 최악의 경우도 역시 존재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일반 사람들의 생활을 어렴풋이라도 짐작은 했겠지.

자신들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들은 당연히 지배계급이라는 생각을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만.

겨울에는 런던에 있는 집에서 자기들 무리끼리만 사교하고, 권력을 의논했다.


반면 프랑스 귀족들에게 영지는 수입처일 뿐,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 세금을 내는 주민들의 생활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고위급들은 왕의 궁정에 상주하면서 왕의 눈에 띄기만 바랐지.

영지는 파리 생활에서 실패했을 때.

좌절하고 궁지에 몰려 할 수 없이 돌아가는 마지막 보루로 보였다.

주민들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또는 지독하게 악랄한 경우가 있었다.

그들의 시선과 기준은 오로지 왕의 궁전에 꽂혀 있으니.

돈을 쓸 줄만 알지 벌 재주는 없는 이기적인 귀족들은,

파리의 사치한 사교 생활에 쓸 돈을 얻겠다고 고달픈 주민들을 달달 쥐어짰겠지.

그들에게 주민들은 살과 피가 있는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오직 수입원으로만 보였나 보다.



엄연히 상대방이 있고,

그들의 입장과 요구가 있는데.

일방적으로 자기들만의 논리, 자기들만의 이해관계에 빠져서는 상대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도 없고.

알아낼 지성이나 판단할 능력이 없으니.

자기들의 이해관계나 기대가 얼마나 세상의 흐름에서 동떨어져 있는지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사람들의 생각을 모르고,

자기들 부패한 이해관계의 웅덩이에 푹 빠져있는 탐욕과 몰염치 집단이,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있습니다.

아오,

이래서 역사를 알아야 한다.


멸망을 향해 달려드는 무뇌아들이시여.

막무가내로 폭주하고 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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