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팬데믹이 이렇게 오래갈 줄은 누구도 몰랐겠지.
벌써 1년 넘게 사회 전체가 전염병에 시달리면서 외출이나 모임이 어려운 상황이니.
모두가 지치고 피곤한 분위기다.
나야 예전에도 자가격리 상태에서 살기는 했지만,
그때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이었잖아요, 엉엉.
휴대폰만이 내 친구.
점점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늘어난다.
아주 오래전 옛날부터,
사람은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이를 표현하면서 공감을 구하는 존재였다.
바위에 그림을 그리고 돌을 쪼아서 자신 안의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고 뒷날까지 남겼다.
시를 짓고 노래를 불렀다.
시와 노래는 이리저리 바람처럼 세상을 옮겨 다니면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널리 널리, 오랫동안 전해졌다.
그리고 시와 노래에 몸짓과 이야기를 더해서 연극을 했다.
문자를 몰라도 말은 할 수 있으니까.
근대기에 들어 다수의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교육이 행해지고 문자 해독률이 높아지면서,
소설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하고 싶은 말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참 많았던 시절이었나 보다.
사람들은 끈기 있게 길고 장대한 사람과 세상 이야기를 읽어냈다.
그 이야기의 선상에서 기술이 뒷받침되어 영화가 등장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동안 소설과 영화는 불가분 한 형제였다.
나는 늘 신기술에 뒤늦게 동참하는 사람이라.
얼마 전에야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확실히 지금은 유튜브가 대세로 보인다.
정지된 사진의 힘이 있지만.
고대부터 이어지는 그림과 조각과 시와 노래와 연극.
소설과 영화도 자신의 힘을 계속 기르고 발전하면서 존재감을 갖겠지만.
지금은 동영상으로 소통하는 유튜브가 전면에 나섰다고 보는 게 맞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구독자 100만을 꿈꾸면서 크리에이터라는 타이틀에 뛰어든다.
이전의 블로거들이 대거 유튜버로 전신하는 느낌이다.
블로그에는 끄적끄적, 오늘 살아온 자질구레한 행적에 사진 몇 장 더하면 포스팅 하나가 되었는데.
그래서 적당한 카메라 하나, 급히 익힌 엉성한 편집 기술, 대수롭지 않은 자신의 일상으로 감히 따박따박 유튜브 수입을 탐낸다.
내가 주로 보는 영상이 세계 여러 지역을 보여주는 분야라 그런지.
고해상도의 영상,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설명,
늘어지지 않는 편집과 명확한 발음이라는 전문가적인 수준이 되어야 시선을 붙들 수 있더라.
누구나 뛰어들 수는 있지만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는 대단히 어려운 시장이다.
뚜렷하고 진솔한, 무엇보다 절박하고 정직한 '할 말'이 있어야 한다.
대충 대수롭지 않은 일상과 주변 풍경을 어지럽게 찍어서는.
그것을 지루하고 장황하게 대략 편집해서.
그럼에도 발전 없는 엇비슷한 콘텐츠를 계속 올리며 구독과 좋아요! 를 갈구하는 이들이 있더라.
언젠가는 지구가 코로나 19에서 벗어나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광명을 찾았다고 환호성을 올리면서 기뻐하겠는데.
그렇다고 이전의 세상으로 되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세상이 변해도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전달하려는 마음은 여전하겠지만.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게 되겠지.
유튜브가 언제까지 대세일지,
어떻게 발전할지 가늠은 되지 않는데.
무언가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기 이전에 표현해야 할 절박함과 고심 어린 생각을 거쳐서.
자신만의 고유한 창의적인 내용을 먼저 키워야 한다.
성의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마음속에서 스스로 자란 절실한 진실이 있어서.
드러내고 나누려는 정직한 이 '진실'이 선행조건이지,
표현 방법은 부차적인 도구이다.
유튜브는 단지 수입을 가져다줄 수도 있는,
이것의 한 표현 방식일 뿐.
언제나 중요한 것은 자신이라는 존재. 내면에서 비롯하여 스스로 자라나고 아프게 결실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