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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Feb 09. 2021

길을 떠나야 하는!

활자로 만난 인물들

[에도의 여행자들], 다카하시 치하야 지음,

순희 역, 효형출판



제목은 '여행자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책을 읽고 나면 이동자들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자발적인 여행자들만이 아니고,

조선통신사라든가 업무로 출장하는 사례다.

처음에 책이 나왔을 때는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거의 20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저자가 풍기는 자국 자부심이 좀 넘친 싶기도 하네.


그래도 책은 흥미진진하다.

당시 여행용품이나 차림에 대한 삽화가 간략한 지도와 함께 첨부된 점도 좋았다.

시코쿠 순례자들의 행색을 떠올리면서 에도 시대의 여행자들따라가 보자.



여행이 일상화된 지금도 여행을 떠나는 일은 결코 수월하지 않다.

하물며 산다는 게 곧 자식을 낳고 목숨을 이어가행위에 국한되었이백 년, 삼백 년 전에.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말고는 여분의 시간과 돈을 마련하기가 어려웠을 그 시절에.

일반 서민들로서는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만도 예사롭지는 않았을 터.


그, 러, 나...

익숙한 일상을 훌쩍 떠나고 싶고.

산 너머 저편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져있는지 몹시 궁금하고.

바람결에 따라 들리는 저어기 어딘가에 있다는 무지개를 꼭 고 싶다는 욕망이 불쑥불쑥 치밀어 올라서.

기필코 내 꼭 세상을 돌아보고 말겠네,

길을 떠났던 무모한 사람들이 있었다.

조그만 바랑 하나 둘러메고 너덜너덜.

동서남북을 걷고 걷고 또 걸어서.



전국을 방랑하면서 시를 남긴 조선시대 김삿갓처럼.

일본에도 미지의 세계를 찾아 여행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마쓰오 바쇼는 17세기 후반 일본의 시인이었는데,

"고요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첨벙"

는 하이쿠가 국민시로 유명하다.


그는 말년에 걸어서 수차례 여행을 이어가며 많은 시를 남겼다.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며 다닌다"

여행자들의 마음이 이런 거겠지?



도망자도 있었다.

1836년에 비단 가격 폭락으로 바쿠후 직할령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

봉기가 진압되면서 주도자 중 한 명인 마흔 살의 효스케는 관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몰래 마을로 들어와 아내와 형식적으로 이혼하고 얼마간의 돈을 지니고 길을 떠난다.

길고 긴 이동의 세월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돈을 내고 숙식하면서 사원을 순례했다.

당시에도 전국 각지 절을 찾아다니면서 기도하는 서민들이 많아서 특별한 변장 없이 농부 행색으로 순례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에는 지역 사람들의 호의로 남의 집에 신세를 지기도 하고,

순례자들을 위한 무료 숙소를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농민들에게 주산을 가르치면서 전국을 방랑했는데.

나중에는 에도에 서당을 열고 몰래 아내도 불렀다고.

바쿠후 말기, 행정력이 약화되면서 효스케는 수십 년의 방랑 세월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도망자의 이런 행적을 우리가 알 수 있는 이유는 효스케가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맨몸으로 도주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매일 자신의 행적을 일일이 기록하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에도시대에 전국적으로 길이 정비되고 숙박 체계가 마련되었다.

 일반 사람들계를 들어 평소에 돈을 모아 유명 사찰에 기도 가거나,

영산에 오르는 단체 여행 붐이 일었다고 하는데.

돈 없이 무턱대고 순례길에 오른 용감한 처자들이 있었다.

1803년 봄.

이즈모 간도 군의 지이미야 마을 다섯 처녀들은 두 달 동안 사이코쿠의 관음 사원을 참배하겠다고,

관에 신청서를 내어 허가를 받아 길을 떠난다.


걷고, 얻어먹고, 헛간에서 쪽잠을 자는 고생길이었다.

"아시다시피 다섯 명 모두 하루하루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가난한 농사꾼 출신이므로 여비는 없었습니다. 다만 길목마다 사람들이 베푸는 인심으로 여행을 계속해"(207,8쪽)

집 떠난 지 보름 만에 첫 사원에 들려 참배는 시작했는데.

얼마 뒤 차례차례 홍역에 걸려 모두 몸져눕게 되었다.

한 명은 사망에 이르고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르고 요양을 했다.


몸이 회복되자 남은 넷은 망자의 위패를 번갈아 가슴에 품고 순례를 계속해서.

여행을 떠난 지 다섯 달 가까이 지난 어느 날 저녁 무렵, 마을로 돌아왔다.

"저희들은 여비가 한 푼도 없었습니다. 화려한 도읍지는 처음부터 저희와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여겨 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210쪽)


지독한 고생을 무릅쓰고 죽음의 슬픔을 품은 이들을 계속 걷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허락받은 기간을 넘겨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관에서 문초를 받았고.

그래서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처자들의 마음속에는 걷고 걸었던 방랑의 시절이 깊이 새겨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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