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차는 달려가고 Feb 18. 2021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활자로 만난 인물들

[마씨 집안 자녀교육기], 쑤퉁 지음,

현선 옮김, 아고라



쑤퉁은 1963년, 중국에서 출생한 소설가이다.

같은 이름의 작품집에 수록된 [마씨 집안 자녀교육기]는,

묘사가 생생하고 문장에 리듬감이 있어서

마치 희극이나 익살스러운 뮤지컬을 보는 듯, 입체적이다.     


맹인인 마헝다 노인과 아들 마쥔, 다섯 살배기 손자 마솨이,     

그리고 이혼한 며느리 장비리- 넷이 주요 등장인물이고.    

이들이 살고 있는 참죽나무 거리와 이들 집.

마쥔의 일터인 술집 인터내셔널 오션시티를 오가면서

인물들은 투덕투덕 엽기적인 대련을 벌이고.

참견 많은 이웃들은 마 씨 일가를 기웃기웃, 왁자지껄 코러스를 부른다.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 사랑과 행복, 다정함을 구하지만.

절대 질 수 없다, 는 오기로 무장한 이들 일방적이고 거칠고 공격적이.     

자신은 진심이라면서 실제 자신의 언행은 돌아보지 않고.

상대방의 행동은 삐딱하게 해석하지.        

넷은 다 당신 때문이라고 서로를 탓하겠지만.

내 보기에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대단한 실력자들이시다.

주먹으로, 말로 퍽퍽 폭탄을 날리는 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볼까?

           

마헝다 노인은 아들 마쥔을 너무너무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믿는다.     

노인의 모든 레이더는 오로지 아들에게 향해 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나이 먹은 아들에게 여전히 호통치고 야단치고 저주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아들의 생각이나 마음을 알아보려는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 같은 건,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마쥔은 출근 전에 화장실에 .

매일, 매번 아들은 화장실에서 늙은 아버지의 이런 악다구니를 듣는다.                     

“왜 출근해서 변소에 가지 않는 게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줌을 누더니, 대체 뭘 먹고 그리 많이 싸는 게냐? 안 나오면 안 싸면 그만이지 그걸 싸겠다고 용을 써? 일부러 시간을 낭비하려고 작정을 했구나! 시간은 금이라지 않더냐! 너도 내 나이가 되면 알 거다. 시간을 변소에서 낭비하다니, 네놈은 싹수가 노랗다!” (19쪽)        

 

종종 말도 안 되는 생떼도 다.               

“쬐끄만 까만 달걀 놈아! 네놈도 다 들었지? 이놈이 나를 포악하게 만든 거다. 좋다! 오늘 네놈 죽고 나 죽고 우리 부자가 다 죽어보자!” (41쪽)                   

하이고... 마헝다 영감님...

동네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우렁우렁 한 목청으로 아들에게 늘 모진 소리를 퍼붓는 아버지.

아들 마쥔은 말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때리고 욕하는 아버지에게 신물 나도록 당해왔지만 그렇다고 익숙해지거나 무감각해지는 건 결코 아니다.     

괴로움은 크지만 온 힘을 다해 참아내는 거다.     


           

마쥔의 전처 장비리도 만만찮다.

노름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욕도 잘하며 억지라면 일등.

돈을 잃게 생기면 보통 하는 말은 이렇다.


"돈이 없어 환장을 했어? 잠깐 외상 하는 것도 안 돼? 내 돈 받으면 리자청보다 부자가 될 것 같나? 천쓰옌, 내가 애먼 소리를 하는 게 아냐. 이 똥구멍을 판 손톱도 핥을 위인아."(12쪽)


그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꼬맹이 아들이라고 다를 리가.

벌써 명성을 날린다.

자신의 슬픔과 허약함을 감추기 위해 더 사납게 굴고,

큰 소리를 내고, 더 억지를 쓰는 사람들.

소설은 시종 우스꽝스러운 해학과 유쾌한 스웩으로 리듬을 타는데,

드러내지 못하는 인물들의 진심만큼이나 내용은 비극적이다.



처음 읽고는 아, 뭐 이런 엽기적인- 싶었다.     

중국 문학에서 흔히 보이듯, 보통 사람들의 어리석고 거친 언행들이 상당히 과격하고 과장되고 희화화되어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상황이 비일비재하니 소설이 특별히 과장되었다고 보이지는 않는구나.


우리나라도 참으로 힘든 시련기를 거쳐오면서

허약한 사람들은 자신을 더 거칠고 사납게 무장해왔다.

약해 보이면 짓밟히는 야수의 세계에서,

서로를 밟고 일어나는 험한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은.

때로는 종교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사이비에 기대고.

돈이라는 물신을 숭배하고.

떼거리 지어 악을 행하고.

거짓과 사기와 과대포장으로 생존경쟁이라는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왔던 것이다.

물론 바르게 살아가려는 대다수는 그럼에도 자신을 지켜내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주변 환경에 물든다.



중국의 근현대사는 참혹하다.

중국 현대사의 결정적인 폭력적인 두 사건- 문화혁명과 시장경제 도입이라는 혼란기를 살아내야 했던 중국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험하고 굴곡 많은 사회적 변동과 혼란에 시달렸다.


말과 실천이 다른 전제적 권력, 심한 경제적 불평등.

부당한 힘이 상식을 뒤엎는 부조리한 사회 분위기와

전쟁과 내란 같은 물리적 위험.

시장경제를 도입한 이후 급성장한 경제적 과실이 공정한 룰 없이 약싹 빠른 일부에게만 쏠리는 상황 속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 구도에 내던져졌다.           



어느 정도 합의된 가치관 속에서 공정한 사회 체제가 마련되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사람들은 평온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과 다른 이들과 공존하려는 너그러운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는데.     

쉴 새 없이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밀어닥치고, 절대적으로 부족한 물질적 조건과 앞이 안 보이는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힘을 가진 이의 변덕에 비위 맞추며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고투를 해야 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골똘히 생각하고 해결책을 강구하기보다.

당장의 힘에 빌붙거나 회피하거나 그저 견딜 뿐,     

불안하고 이기적이며 방어적인- 위축된 심리 상태가 되기 쉬울 터.     

불안정하고 기만적인 사회에서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순순하게 말하고 듣고 믿고 행동하기보다는 지레짐작하고 선수치고 넘겨짚고 불신하고- 뭐 이런 공격적인 언행이 몸에 배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랑받고 싶은 상대와의 관계도 더 어렵게 만들어버리지.     

내가 아끼고 위안하고 또 위로를 받고 싶은 그런 사람과의 관계까지 말이다.         


사회가 건강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구성원이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바로 내가 행복해야겠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길을 떠나야 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