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입는다.

일상 속에서

by 기차는 달려가고

한 3,40 십 년 전쯤.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패션 테러리스트들이 많았다.

그 시절에 패션 분야 종사자라든가 서구 패션을 찬양하는 분들이 걸핏했던 말 중에는.

서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청바지를 입고 젊게 사는데,

우리나라 어른들은 너무 칙칙하고 고지식하게 옷을 입는다, 는 비판이 있었다.


나이 드니 이제 알겠다.

서양 노인들이 특별해서 젊은 옷을 입었던 게 아니라,

그냥 젊었을 때 입었던 옷차림을 계속 입을 뿐이라는 것을.



지금 노인들 대다수는 모양 신경 쓰면서 옷 차려입고 살았던 세대가 아니다.

단벌의 옷으로 살아가는 부모를 보며 아무렇게나 물려받은 헌 옷을 입고 자라고.

성장기 6년, 시커먼 교복만 입다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나와서도 계절마다 옷 한 벌로 청춘을 보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제법 돈을 번 뒤에도 집 장만하고 아이들 교육에 쓰느라,

자기 치장에 돈을 소비할 여력이 없었다.

아니 관심을 둘 여유도 없었겠지.



패션 감각은 기본적인 미적 안목을 키운 바탕에 이런저런 스타일의 옷을 직접 입어보면서,

자기 스타일을 찾아내고 키우는 거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재물이 넉넉하지만 미적인 안목은 꽝이어서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더라.

돈을 퍼부어서 이른바 '부티'를 낼 수는 있겠지만.


가끔 성공한 인사들 집이라면서 상업적인 터치가 강한,

집주인의 분위기와 어긋나는 민망한 장면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어쩌겠는가.

열심히 살았으나 얻는 것도 있고 얻지 못하는 것도 있지.

괜히 있어 보이겠다고 장사 속에 홀랑 넘어가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청소와 정리에나 신경 썼으면 오히려 삶의 자취가 묻어나는 자연스러움이라도 있었을 텐데.


지나가는 행인이 뭐라 겠어요.

단, 안목이 없으니 고가 사치품에 쓸데없이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문득 수십 년째 같은 스타일을 입어대는 내 모습을 깨닫고 옷에 관해 잠깐 생각이 들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옷을 참 잘 입는다.

체격이나 외모도 좋아졌지만,

무엇보다 사회 전체적으로 미적 감각이 정말 좋아졌다.

예전에는 '관'이 개입되면 무조건 촌스러웠는데,

박물관 기념품부터, 거리나 관공서의 각종 사인들까지 너무나 예뻐서 종종 놀란다.

연예인들 옷과 화장, 인터넷에서 보이는 디자인들까지.

한 세대만에 환골탈태라니,

성장 속도가 놀랍다.


뿌듯, 뿌듯해서 배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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