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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pr 04. 2021

함께 하다.

활자로 만난 인물들

[우리가 알아야 할 인상주의 그림 50],

이네스 야넷 잉겔만 씀, 이정연 옮김, 세미콜론




인상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은 회화 사조가 아니었을까.

내 청소년기에,

그때는 덕수궁 석조전에서 큰 전시회가 열렸었는데.

인상파 전시회도 있었지 않나, 싶다.


예쁘고, 착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휴일 낮에, 덕수궁 정문에서 만나기로 하고는.

늦잠으로 무려 두 시간 가까이 늦은 나를 그 친구는 무던하게 기다려줬었다.

덕수궁 지날 때마다 부끄럽고 미안해^^

다른 인연들은 다 시간과 함께 흘려보냈는데.

그 친구는 보고 싶다.

샌프란시스코 갔을 때 신세 졌는데,

음식도 참 맛있게 하더라.

수경아, 잘 지내지?



책은 인상주의 사조가 출현하게 된 배경과 특성, 화가들에 관한 저자의 해설로 시작해서.

인상주의 그림들을 도판으로 보여주고 각 그림과 화가를 설명한다.   

  

저자는,

19세기 말 프랑스를 위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표현 방법을 열었던 회화 사조를 인상주의 범주로 평가하면서.

마네, 모네, 드가, 세잔,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레, 카유보트, 베르트 모리조, 쇠라, 시냐크, 메리 커셋, 고흐, 고갱, 로트레크, 리베르만, 코린트, 슬레포크트-  18인 화가와 그림들을 설명한다.     

한국어 번역이 유려하지는 않고 그림 인쇄 상태도 좋지는 않지만. 

워낙 유명한 그림들이라 어쩐지 친숙하다는~



19세기 중반기까지,

유럽 화단은 ‘신고전주의’라는 화풍이 왕권과 귀족의 비호 아래 회화의 전형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역사 속 인물이나 미녀, 성서 속 이야기, 신화 같은 정형화된 소재를,    

고전적인 건축을 배경으로 세심하게 연출된 무대 같은 질서 정연한 구성으로 말끔하게 붓질한 그림들.     

그때 화가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상상의 장면을 정밀하게 그려내는 숙련가였는데.                 


틀에 박힌 이런 그림들에 반발하는 화가들이 나타났으니.

들라크루아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다양한 색채와 자유로운 붓질을 실험했고,     

리얼리즘을 열었다는 쿠르베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진 자연과 인간을 묘사했다.     

카미유 코로와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역사화 같은 그림들에 비해 전혀 대접받지 못하던 풍경화를 집중적으로 그렸으며.

샤를 도비니와 외젠 부댕은 야외에 나가 직접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입만 놀리는 자칭 비평가들은 이들의 시도에 조롱을 퍼부었으니.

자신들의 머릿속에 요지부동 자리 잡고 있는 틀을 벗어났다는 당혹감에서 온 분노였으리.    


인상주의자들의 선두주자이며 리더로 일컬어지는 마네는,     

“내 눈으로 본 것을 그리지, 다른 사람들이 보라고 하는 것을 그리진 않겠다”(13쪽)고 선언한다.     

드가는,

“회화란 무엇보다도 그리고 우선적으로 예술적인 환상의 산물이다. 그것은 절대로 순수한 자연의 모사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상상력은 오로지 화면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 다시 말해 완전히 본질적인 것만을 포함하고 있다.”(61쪽)

           

즉, ‘나’라는 독자적인 개인이 주체가 되어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게 느껴진 것-

그러니까 나의 시선과 나의 순수한 감정을 내 방식대로 화폭에 담겠다는 의지와,     

또 그림이 반드시 무언가를 그대로 재현할 필요는 없다- 는 기존의 틀을 깨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생각으로.

이 생각이 '인상주의자’라는 일군의 화가들을 묶어주는 원칙이 되었다.

‘인상주의자‘라고 불렸던 화가들은

출신도, 그림의 소재도, 그림 그리는 방법도, 살아가는 방식도 모두 달랐는데.   

서로 격려하고 영향은 주고받았지만,

어디까지나 인상주의자들은 자신만의 스타일과 소재를 추구했던 개성 있고 독자적인 화가들이었다.     


        

인상주의는 근대화의 소산이라고 다.     

근대에 들어와서 사람들의 세계관을 지배해왔던 ‘신’이 물러나고,    

비로소 인간, 개인이 행동의 주체가 될 수 있었으니.     

기술 발전과 경제적 풍요, 교육의 확대, 중산계층의 발달에 더해서.

금속 재질 튜브에 든 휴대용 물감이 발명되고,

기차나 도로망을 해 화가들은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으며.     

왕과 귀족이라는 절대 권력이 약화되고 시민계급의 성장으로,

그림을 감상하고 구입할 수 있는 계층이 확대되었다.


이런 제반 여건들이 인상주의 화가들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들 근대인의 생활과 느낌을 화폭에 담아냈다는-     

근대화는 인상주의를 낳은 배경이면서 동시에 근대의 정신과 생활을 반영했다.         


햇살 가득한 들판, 증기 기관차에서 내뿜는 수증기로 가득한 기차역, 남녀들의 뱃놀이, 흥겨운 무도회, 푸른 공원, 아름다운 의복을 입은 여인들, 도시의 거리 풍경, 중년 신사의  시선을 받는 무용수, 노래하는 가수, 다림질하는 세탁부, 술집의 한 때, 파란 바다, 그리고 고흐의 해바라기, 모네의 해돋이...     

빛에 반짝이는 이파리들, 인체의 리드미컬한 움직임, 안갯속 국회의사당.     

일상의 풍경들이다.           



책에는 마네와 모네의 그림들이 많이 실려 있는데,     

아르장퇴유 시절, 모네는 단란한 가정생활을 했던 것 같다.     

모네가 아내와 아이를 그린 그림있는데,

이 시기에 동료 화가들이 모네의 집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가족을 그리는 모네.

자신의 스타일로 또 이 가족을 그린 르누아르의 그림도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함께 했던 예술과 일상생활이 상상되는 부분이다.       


부유한 집안 덕에 물질적인 고생은 하지 않은 화가도 있지만.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개척자, 비주류가 그렇듯,     

관람객들과 접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팔리지 않는 그림을 그리느라 비참한 궁핍 속에서.

내면의 불안감과 주변 사람들의 몰이해를 겪어야 했다.     

기존 화단에 이해관계를 가진 비평가들은 집요하게 인격적, 예술적 인신공격들을 쏟아냈고.

발목을 잡는 심리적, 물질적 어려움 속에서,

이들은 꿋꿋이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며 자신만의 방식을 발전시켜 나갔으니.     

살아내 마침내 성공이라는 보답을 누린 화가들도 있지만, 고흐처럼 사후에야 인정받은 화가들도 있다.     


“시간과 숙고는 조금씩 보는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21쪽) -세잔의 말씀  



한 사람의 삶이 갖는 의미는 재물의 양이나 지위의 높이, 소비하는 부귀영화의 질이 아니라.    

살아가는 하루하루 고민하고 회의하면서도 자신의 진심에 따라 어렵게 내딛는 행로의 진정성이라고 생각다면,

성공하지 못한 자들의 합리화일까.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이들은 인내심을 갖고 외롭고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겠지.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인생을 바쳐 추구하고자 하는 어떤 것을 지녔고.     

그 추구하는 바를 함께 토론하고 돕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이해와 공감을 나누며 동행할 수 있는 동지들이 있었다는 점이,

(물론 경쟁과 다툼도 있었지만)

진심, 진심 눈물 나게 부러움.



아, 아, 아,

뜻 맞는 친구들이 있어서 좋겠다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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