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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Apr 09. 2021

압착기에 짓눌려

활자로 만난 인물들

[취한 배], 다나카 히데미쓰, 유은경 옮김, 소화




[토성의 고리]에서 작가는,

소설가 콘래드의 아버지와 영국 외교관 로저 케이스먼트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불의한 상황에 부딪쳤을 때.

자신의 인생을 걸고 적극적으로 항거했다고 전한다.


불의한 권력 의해 불의한 일을 강요받을 때.

맞서 싸우다 박살 나거나.

도망치거나 회피하거나.

마지못해 받아들이거나.

그러다가 익숙해지면서 동조하거나.

드디어 출세할 기회가 왔도다! - 얼싸 좋아,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거나.

반응은 다양하겠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아무도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모두가 일제히 일제를 거부했다면 독립은 빨랐겠지만.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이 자유롭고 잘 살게 된 지금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이해득실이나 입장얼마나 제각각인데.

주권을 잃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의 처지는,

당장 먹고사는 것 말고는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사람이 거의 다 였을 테고.

자발적으로 일제 체제에 끼어들어 입신출세하려는 엘리트들이 적지 않았으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어정쩡한 입장에서,

그저 괴로워만 했던 사람도 었을 것이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일본인으로 1913년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고무회사에 취직해,

조선 경성지점에 발령받아 3년 정도 경성에서 근무한다.

조선에 오기 전 소설가로 데뷔했던 는,

일본으로 돌아가 1948년, 조선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취한 배]를 발표하고.

1949년, 전 해에 자살한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묘에서 고통스러웠던 인생스스로 마쳤다.


술을 마시지 않아 술에 의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이 소설을 읽은 뒤 술로 자신의 머리와 감각의 작동을 멈추려는 상황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하루하루 부끄럽비틀거리는 나날.

상황을 받아들일 수도, 뛰쳐나갈 용기도 없어 양쪽에서 돌아가는 압착기에 짓눌리는 처지가 되어 스스로를 망쳐가는 처지.

자신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지독히 혐오한다.


태어날 때부터 조선을 식민지로 하는 일본제국의 국민고,

일본 제국주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이던 시대에,

당시 작가가 식민지의 문제성을 지금 우리 시대처럼 인식했으리라고 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인의 입장에서도 당시 제는 몹시 억압적이고 부조리해서 살아가는 나날이 괴롭기만 하다.



내지인이라 불리며 식민지 땅에서 어정쩡하게 권력의 편에 속해 있는 일본인또한,

‘충군애국’과 ‘멸사봉공’, ‘분발하라’만을 외치는 군국주의의 압박과 날로 조여 오는 전쟁의 무게에 짓눌리며.

매국노, 비국민이라는 낙인과 잔인한 고문과 해고 위협의 채찍질을 받았던 것이다.


일본 패전 당시 한반도에 주재하던 군인, 거주민, 사업가 같은 일본인 수가 120만 정도였다고 추산하던데,

한 개인으로 보면 먹고살 방편을 찾아 내선일체 식민지로 이주한 생활인이지만.

조선에서 이들은 종주국 일본의 특별 국민으로서,

조선을 억누르고 착취한 식민지 건설의 첨병이었다.


이 소설은 1943년 9월, 문학자 회의를 배경으로 하여 조선과 일본의 실존 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매우 사실적인 소설다.

주인공 사카모토 고키치는 6년 전에 경성에 온 28세 소설가.

경성 근무 중 군에 차출되어 중국 전선에서 2년 동안 복무하고 다시 돌아왔다.

고키치는 일본의 회의에 참가했던 문학자들을 부산에서부터 맞아 접대하는 실무를 맡았고.

‘이상과 정의감을 잃어버린 청년’(348쪽)겪는  며칠을 통해 독자들은,

경성에서 펼쳐지는 광적인 일본 군국주의의 한 풍경을 지켜보게 된다.        



소설을 관통하는 정서는 무력감과 고통이다.

권력에 반하는 어떤 이의 제기도 용납되지 않는 암울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부당함을 묵인해야 하는 고통,

심지어는 그 부당함에 참여해야 하는 고통,

그런 고통을 견디기만 할 뿐 맞서서 반항할 수 없는 무력함과 부끄러움의 고통을 느낀다.

그럼에도 그 부당함의 세계를 단호히 저버리지 못하고 부당함 속에서라도 이뤄내고 싶은 무언가에 대한 미련에,

자신의 추악함을 잊으려 독한 술을 들이켜고 여자에게 탐닉하고.

그러면서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한 오라기 희망이라는 가장 지독한 고통이,

원고지 800매 분량의 소설 속에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고키치는 예전에 자신의 세계가 파괴되어 버렸음을 느꼈다. 악취가 나는 이투성이의 어두컴컴한 유치장 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그를 매도하며 그의 애정을 안 믿는, 지구의 사문위원회 석상에서. 술 냄새와 담배 연기와 여자 냄새가 소용돌이치고, 돈만이 힘을 갖는 유흥 장소에서. 그리고 회사에서. 군대에서. 전쟁터에서. 그가 가지고 있던 빈약한 사상과 윤리의 세계는 급속히 훼손되어 갔다. 그는 예전에 몽상하던 단 하나의 영원한 애인에 대한 기억마저 잃어버렸다. 그 누구도 사랑할 수가 없었다. 물론, 자기 자신이 제일 싫었다. 그리고, 자신의 찰나적인 육체의 만족만으로 그럭저럭 세월의 무거운 짐을 지탱하고 있었다.  죽어 버리면 된다. 이 위장과 생식기뿐인 괴물은. 그렇지만 뭔가 일어날 일을 기다리며, 고키치는 자신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의 고통이나 절망을 얼버무려 왔다. 기다리는 일만이 자신의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난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228, 229쪽)



고키치가 살아가는 현실은,

그들을 보호해야 마땅한 국가는 미쳐서 설치며 그 인민들을 살육의 현장으로 몰아넣고는, (195쪽)


단지 천황폐하와 전쟁을 위해. 막판의 군대, 벼슬아치, 재벌 등 기름진 일당들을 더욱 살 찌우기 위해, (358쪽)


 ‘여하 간에 천황 군대의 실력 앞에서는 미영 따위는 힘도 쓰지 못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차렷 자세) 우리 천황폐하의 대단한 권위와, 신풍적 기적 덕분이므로, (쉬어 자세) 여러분은 안심하고 끝까지 우리 일본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돌아가면 그렇게 국민에게 선전해 주시오’(414쪽)



일본인인 고키치는 조선 시인 노천심에게서 ‘지나친 꿈’을 가진 동류의식을 느끼는데,

그 지나친 꿈이란 드러나기로는 아마 문학자로서의 성공이겠지만.

그 내용은 이들과 함께 노천심이 외우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중 이반이 동생 알료샤에게 말하듯,

‘봄, 막 싹트기 시작한 생명력 강한 새싹’을,

‘자색이 감도는 파란 하늘’(293쪽)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순정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조선 시인 노천심은 시 《취한 배》를 썼다.


어느 날, 나는 태양을 향해서 배를 띄웠다. 물은 차갑고, 수초는 푸르렀고, 뱃머리는 파도를 가르며 나아간다. 물길은 갈라지며 흐려졌다. 한낮의 바랜 태양의 경련. 비말 하는 노를 멈춰라. 노래를 잊고 잔을 들자. 바람아 불어라. 배를 띄워라. 나는 길을 잃었다. 태양은 붉게 물들고, 노는 은백색으로 빛나고, 물은 한없이 푸르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오후. 나는 움직이지 않는 배에서 홀로 축배를 든다. 바람이여 불어라. 배여 달려라. 홀로 외로이 취하는 괴로움. 태양은 사라지고 죽은 달이 떠오른다. 노는 회색으로 가라앉고, 물은 저 멀리까지 온통 검다. 배는 비틀거린다. 목적도 없이, 나는 취한 배 안에서 죽을 때까지 잔에 얼굴을 파묻는다. (251, 252쪽)



명백한 사실도 권력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면 부인해야 하는,

진실과 정의는 사라지고,

힘의 크기만이 효력을 갖는 욕된 세상을 살아내려면 자신이 잘못 알았다고,

그동안 갖고 있던 믿음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스스로를 기만해야 다.     


고키치도 자신의 실존을 증명해 주는 것이, 오로지 자신의 위장과 생식기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두뇌는 그러한 본능을 위한 노예이며, 사랑이나 명성도 그것들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문학조차도 자신의 위장과 생식기에 만족을 주기 위함이었던가 하고 생각하니, 그는 비참한 기분이 들어 술을 들이켰다.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갈 데까지 가는 거다.... (179쪽)



소설은 한때 이상을 가졌고 그 이상이 갈가리 찢긴 지금도 부당함에의 감각은 살아 있지만.

그 부당함에 기대 살아남아야 한다는 선택 외에는 발 디딜 데 없는, 고키치의 고통과 슬픔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더불어 문단을 비롯한 조선인들의 사정과 식민지 조선을 야망의 발판으로 삼는 일본인들의 행태, 중국 전선의 풍경도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이를테면 민족주의자로 알려졌던 이광수는 헌병대에 붙잡혀 잔인한 고문을 받고 나서는 갑자기 광신적인 천황 주의자가 되어 모든 글을  ‘천황의 은혜를 받고’라든가, ‘천황께서 헌신이시어서’라는 식의 천황을 예찬하는 구로 장식하고.

몇몇 작가들은 절필했다.(소설에서 절필 작가로 인용된 인사들은 오류라고 한다)

일본 군국주의의 하수인이 된 조선인 문단 인사들 중에는 진심으로 일본 정신을 지향하는 자발적인 친일 주의자도 있지만,

악랄한 고문을 당해 불구가 된 뒤 전향한 사람. 

겉으로는 고분고분하지만 속은 알 수 없는 사람  다양한데.

배후에 있는 진짜 조선 문단의 실력자들은 몇몇 일본인들.

이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탐하는 야망가나 또는 골수 일본 주의자들로,

조선의 신문ㆍ잡지들을 자신들 마음대로 조종하고, 군부에 충성을 다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권력을 얻으려 다.     



다음은 고키치가 겪은 중국 전선의 참상 몇 장면이다.


 군 복무 중 포로인 소년병을 놓아준 혐의로, 딱 한 번 헌병대에 끌려갔었다. 피로 얼룩진 방, 벌거벗겨진 채 피투성이가 된 중국 청년, 곤봉에 채찍, 권총에 일본도. 그런 방안에 서 있으면, 저절로 부동자세가 떨리고, 입도 제대로 떨어지지 않을 만큼 무서웠다. (213쪽)


중국인 임신부의 배를 깊숙하게 찌른 일본 병사의 총검, 미군 포로를 매질하는 무식한 일본인 간수, 갈라진 두개골 위에 선홍빛의 지도를 걸쭉하게 그린 전사체, 터럭이고 손발톱이고 다 불에 타 버리고, 온몸이 물집투성이가 된 시체, (195,196쪽)


전쟁에서 끊임없이 공포에 떨면서, 벌레처럼 죽어가는 많은 양민들. 머리가 깨져 복숭아 빛 골을 질질 흘리는 어린아이. 2미터나 되는 자주 빛 대장을 길게 늘어뜨리고, 죽은 원숭이 새끼를 연상시키는 털 많은 사지를 오므린 태아의 시체와 자신의 음부까지 드러내 놓고 죽어 있는 임산부. 전쟁이라는 죽음의 시대 때문에, 엄숙해야 할 생명이 제일 경멸당하고 무시되고 있다. 침략자는커녕 자국의 야만적인 남자들에게조차, 버림받고 가장 먼저 굶어 죽는 전쟁고아들. 산달이 다된 임산부들. (444쪽) 



소설에는 조선인들의 처절한 생활상도 구체적으로 그려지는데.

폭력의 주체는 총독부, 군인, 헌병대, 경찰, 민간인 등 모든 일본인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어떤 조선인이라도 조선인이라고’.

“... 조선인은 절대 방심해선 안 될 걸세.”라고

자신들이 부당하게 억누르는 조선인들을 잠재적 반역자로 규정짓는다.     


하지만 바위에 내던져진 계란처럼 비참하게 짓이겨진다 해도 불의에 침몰되기를 끝내 거부하는 행동들은 있었으니.

어둡고 무표정한 조선인들이지만 일본 군대에 반전 유인물을 뿌리고,

화장실에는 불온한 낙서가 쓰여있다.



독재 권력과 부패는 꼭 붙어 다니는 동행자인가 보다.

자기편이 아니면 확실한 적으로 단정 짓는 전제 권력은, 자신들이 갖추지 못한 정당성 대신 이익이라는 당근과 생사여탈권이라는 채찍으로 자신의 발밑에 위-아래 일렬을 세우니. 

공공성이나 법, 원칙은 사라지고 윗선에 비위를 맞춰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기회주의만 날개를 달았다.


전쟁이 격화되어 민간에서는 물자가 귀해지고,

모든 정보가 차단되어 비밀과 거짓의 베일 뒤에 숨어버린 파쇼 정권이 전횡의 도를 더해갈수록,

기업과 관의 유착, 기업들 간의 불공정한 거래는 강화된다.

이익이 발생하는 모든 거래에는 돈과 술과 여자가 묶음으로 건네지고.

더 거칠고 교활하고 힘센 놈만이 살아남는 비리와 부패가 일반화된 일제 강점기 경성의 생생한 현장을 이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소설이 일제강점기의 조선 현실을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하는데.

잘 알려져 있지 않은지,

일본 고등계 형사한테 고문이라도 당한 양 헛소리 하는 한국인 목청은 왜 이리 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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