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겠다- 부석사

마음에 남은 풍경

by 기차는 달려가고

♤ 부석사에 오르면서


버스는 부석사 아래 동네에서 멈춘다.

내가 기사분께 부석사 입구에 내려주세요, 부탁했을 때.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던 할머니는 마지막 승객으로 힘겹게 버스에서 내려오시면서.

저 길로 쭈욱 가면 절이 나와,

두리번거리는 내게 알려주시네.


나는 몸놀림이 편치 않은 할머니를 부축했고.

어렵사리 버스를 빠져나오신 할머니께서는,

수술해서 나아진 거야, 다리 아파서 몇 달을 옴짝 못했어,

손을 흔들며 저쪽으로 느릿느릿 걸어가셨다.



잠 못 자고 새벽부터 나왔지,

평소보다 아침밥을 빨리, 많이 먹어서인지.

낮 기온이 급속히 올라가는 데다 햇빛을 받는 자리에서 버스를 타고 온 나는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

집을 나올 때는 해뜨기 전이어서 맨투맨 티와 얇은 티셔츠,

이렇게 두 개를 겹쳐 입고.

겉에는 두툼한 기모 후드를 덧입었는데.

난방으로 훈훈한 기차 안에서는 후드를 벗었고.

풍기역에 내릴 무렵에는 배낭에 넣어온 카디건을 걸쳤었다.

부석사로 오는 버스 안에서는 카디건까지 벗어서 배낭이 뚱뚱해졌는데.


일주문을 지나 절집으로 걸어가는 중에 몸이 무겁고 걸음이 힘들어서 땀방울이 찔찔.

더워서 땀이 나는 건지,

몸이 안 좋아 땀이 나는지 모름.

티를 하나 벗어야 하나 기온차가 정말 심하네,

속으로 꿍얼거렸는데.

늘 그렇듯 생각만 바쁘지 몸은 움직이지는 않는 나는,

그냥 두 개의 티셔츠를 계속 입고 다녔다.



천천히 걸었다.

앞서 가던 사람도,

뒤에서 오던 사람도 모두 훨씬 앞으로 가버려서 길에는 나 혼자.

조용한 길에는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물이 오르는 나뭇가지들은 고요히 흔들리고.

봄꽃이 피어 있고,

새는 명랑하게 날아가고.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 가고.

참 아름다웠다.


몇 걸음 걷다가 쉬고.

또 몇 걸음 걷다가 서고.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평화롭네.

부처님 말씀은 모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어 올라가노라면.

시끄러웠던 머릿속도,

사납게 널을 뛰던 마음속도,

말갛게 비워지면서 편안해지는 상태가 그저 좋았다.



절은 가팔랐다.

계단 오르기가 겁이 나 빙 돌아가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어느 절이나 경사가 있는 산을 깎아 터를 만들어 높낮이가 크지만

부석사는 특히 가파르다고 느꼈다.

오던 길을 뒤돌아보면 와,

툭 트인 시야에 탄성이 절로 나오고.

(나의 엉터리 사진은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그 옛날 옛적에,

지도도, 자동차도, 드론도, 심지어는 등산화도 없이.

심심산골,

이 자리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우리는 지나간 시간의 실제 삶과 가치관을 잘못 상상하는 게 아닐까.




♤ 기도


무량수전은 아름답다.

담백하고 수수하면서 기품이 있다.

서릿발 같은 엄격함이 아니라 든든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절도가 있다.

들어가 보면 다른 대웅전들과는 구조가 좀 다른데.

지나치게 커다랗고 번쩍거리는 부처님은 좀 어색했...




법당 구석, 기둥 뒤에 방석을 내리고.

절을 올리며 기도를 드린다.


90년 전 이 세상에 온 아가가,

89년 가까이 착하게 살다 돌아갔습니다.

편히 쉬게 해 주세요.


어머니 생신이 다가오고 있었다.

볕 좋은 자리에서 지극히 평화로우시길.



고용한 절집.

마당에 활짝 활짝 핀 적목련, 백목련은 꽃잎을 떨어뜨리고.

돌계단 귀퉁이에 작디작은 보라 꽃,

생명의 본분이란 이런 것이다, 내게 알려주네.




붉은 목련, 흰 목련



오랫동안 맑은 마음을 얻으려 여러 스님들이 수행을 해왔던 그윽한 절에서,

나는 한두 시간이라도 머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절에는 일반 사람들이 앉거나,

하다못해 서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는 계절에는 다를지도 모르지.



서늘한 법당에 몇 분 앉아 있은 덕인지

부처님의 가호인지.

몸이 다소 가뿐해져서 절을 걸어 내려오며

마음은 즐거워졌다.


이제,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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