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읍이 속하는 영주시는 인구 10만 정도로,
부석사 말고도 갈만 한 곳이 있다.
하지만 뚜벅이로,
하루에 여러 곳을 다니려면 버스 시간에 맞추느라 마음이 조급해질 수 있거든.
그건 싫여...
부석사에서 소수서원을 지나.
풍기를 거쳐 구불구불 영주 시내로 가는 버스는,
한적한 농촌 풍경을 지나간다.
흔들리는 버스에는 한참 동안 나 혼자였는데,
풍기역 가까이 와서 (쯥, 거시기하게 알려진) 동양대학부터 청년들이 타기 시작하더니,
버스에는 계속 승객들이 올라탄다.
강을 지나고 버스는 건물들이 줄잇는 거리로 들어선다.
오?
이름 들어본 시장 간판이 보이네.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얼른 튀어나와 버스를 내린다.
우리나라가,
이, 삼십 년 전과 판이하게 달라진 부분이 상당히 많지만.
그중에서 공중화장실과 시장이 깨끗해진 점은 감격스럽다.
지금은 어딜 가나 시장 통로에 덮개가 있고,
쓰레기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상인들도 친절하고, 물건들은 잘 정돈되어 있지.
예전에는 바닥이 질척 질척,
온갖 쓰레기들이 썩어가는 냄새에.
앙칼진 고성과 골라골라, 호객의 콜라보.
더해서 물건에 눈길이라도 한번 주면 옷을 잡아당기며 거의 강매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이제는 재래시장에 손님이 없다.
구부정 노인이 된 상인들과 비어있는 가게들은 재래시장의 전국적인 현상이다.
번화가에 있는 시장은 큰 편이었다.
뒤쪽은 비었지만 중앙통로에 있는 가게들은 깔끔하게 물건을 진열해두었다.
음식을 만들면서 파는 가게가 여럿 있었는데
포장판매만 하지 먹을 수 있는 좌석은 없던걸.
풍기역 앞 과일가게 사과가 서울보다 훨씬 싸길래
역시 사과의 고장이구나, 했었는데.
영주 시장에서는 그렇지 않아, 힝...
제사음식을 많이 취급한다더니 정말 문어 전문, 떡집, 튀김과 전집이 여럿 있었다.
정선 시장에서 배추전을 먹은 적이 있는데.
그곳 배추전은 간식으로 먹을 만한, 작고 연한 배추 이파리로 지진 것이었다.
영주 시장 배추전은 큰 이파리 두 장으로 넓고 번듯하게 지져낸 것이어서 제수용인가 싶더군.
전집에서 파는 튀김도 흔한 분식점 튀김이 아니라
제상에 올리는지, 굵직하고 큼직한 것이었다.
신기, 신기.
시내로 들어오다가 유명한 봉화유기 가게도 보았는데.
시장에서 제사음식을 판다는 건,
보수적인 이 지역이 제사를 여전히 중시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동시에 제사에 쓰는 음식을,
예전과 달리 집에서 만들지 않고 사서 올린다고 봐도 되겠지.
아무리 붙들어도 세상은 흘러간다.
시장을 구경하면서 나는 활기를 찾았다.
먼저 기차역을 확인해놓고 그 뒤에 일정을 정하자.
길을 물어서 역 방향으로 걷는다.
내가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쪽 소도시들도 적지 않게 다녔다.
몇 년의 시간 간격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소도시들은 쇠락해가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새 건물이, 고층 아파트들이 올라가고 있어도.
제때제때 돌보지 못해
오래되어 낡고, 허름해지는 지역이 적지 않고.
시대와 빈부가 뒤죽박죽으로 얽힌 도시는 산만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영주는 전혀 그렇지 않더라.
풍기처럼 지극히 실용적인,
지은 지 그리 오래지 않은 삼, 사층 건물들이 빈틈없이 거리에 도열해있었다.
평일 낮, 시내는 대체로 한가하고 번화가에도 빈 가게는 있더라만.
풍요롭다-까지는 아니라도,
비슷한 인구 규모를 가진 다른 지역처럼 무너져가고 있다, 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오래지 않은 시점에 도시가 건설된 듯한 느낌.
그냥 요새 도시.
재미있는걸.
영주역 부근 흔한 거리 풍경
역에 와서 영주역을 오가는 중앙선, 충북선, 경북선, 영동선을 확인하고.
이름만 들어본 분천이니 춘양, 점촌이니 예천 같은 곳들을 가보고 싶다고 불쑥불쑥 충동이 일렁였지만.
아니면 무섬마을은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결론은 서울 퇴근시간을 피해 저녁에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기로.
역 대기실에서 한참 쉬다가.
내 맘대로 일일 영주시민이 되어 거리로 나가
화장품 가게에도 들어가고.
마트를 돌며 샅샅이 가격 비교도 하고.
카페에도 좀 앉아있고,
작은 시장도 들렀다 하면서 영주 시내를 구경했다.
도시는 어지럽지 않았고.
교차로에 화단을 꾸며놓은 옛날식 조경이 보여 반가웠는데.
그 화단 이름이 '꽃동산'인지,
교차로는 '꽃동산 회전교차로'.
그곳에 있는 농협지점은 '꽃동산 지점'이더라.
정다워^^
꽃동산 회전교차로
그래서 꽃동산 지점
음, 그런데 내가 지나온 거리에는 쉴 곳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개들 소도시에 공원이 없으면 유적이 남아 있어서,
감영이라든가 향교, 관아 자리가 작은 공원 역할을 하는데.
신기하게 영주 시내는 순전히 21세기 도시,
사각의 건물만 줄줄이 늘어선 건조한 도시였다.
날이 저물 무렵 기차역 플랫폼으로 나왔다.
따가운 봄볕이 사라지면서 선선해졌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흔한 플랫폼 풍경
기차가 들어온다.
영주 안녕~~~
곧 다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