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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쯤은

혼자 살아요

by 기차는 달려가고

드디어 쉬는 날!

하루하루는 지루하더니 일주일은 후딱 달아나버렸다.

불금이 아까와서 눈꺼풀을 비비며 뭉기적거리다 늦게 잠이 깼다.

유튜브를 보면서 천천히 밥을 먹고.

음악을 틀어놓고 창밖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차를 마셨지.

의자에 푹 파묻혀 멍~ 때리다가.


으라차차,

귀차니즘을 극복하자.

무거운 몸을 일으켜 후다닥 설거지를 하고.

밀린 빨래를 돌린다.

며칠 동안 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흐트러진 방을 정리했다.

내친김에 싹싹 집을 청소하고.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는 탁탁 털어서 반듯반듯 건조대에 널고.

땀 흘린 몸은 시원하게 샤워 한 방 때려주셨지요.

기분 상쾌합니다.

....

응, 그런데 또 졸리네.



달콤한 낮잠에서 깨어 개운한 기분으로 장바구니를 든다.

먹이를 구하러 가자.

내 오늘 냉장고를 꽉꽉 채우고 말리라.

울끈불끈 샘솟는 의욕.

장 볼 것들을 메모해서 대략적인 예산을 정한다.

그리하여,

낑낑 장을 봐 왔다.

무겁게 들고 온 장본 것들을 부엌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이걸로 끝이 아니지.


물 한 컵 시원하게 들이켜고.

지금까지는 프롤로그였습니다.

이제부터 본 막이 오른다.

당근, 오이, 파프리카, 양배추, 토마토...

당장 먹을 것들과 두고 먹을 것을 나누어 금방 먹을 것들은 물로 씻는다.

날 것으로 먹을 것들과 음식 재료로 쓸 것들을 각각 손질한다.

한번 먹을 만큼씩 나누어 밀폐용기에 담는다.


고기도 용도 별로 한번 먹을 만큼씩 나누어서 곧 반찬으로 만들 것은 냉장고에,

두고 먹을 것은 냉동실로.


생선이나 새우도 손질하고 나누어 각각 밀폐용기 또는 비닐봉지에 넣어 용도 별로 냉동실 또는 냉장실로 입주시킨다.



멸치와 무, 양파, 대파 이파리,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끓인다.

육수로는 된장찌개와 미역국을 한솥 끓이고,

어묵과 떡볶이도 만들 것이며.

수제비와 칼국수에도,

또 잔치국수를 말아먹을 수도 있다.

미역국은 하루 지나면 더 맛있어지지.

커다란 냄비에 끓여서 먹을 때마다 육수와 물을 조금씩 부어 끓여먹는다.


감자나 두부는 쉽게 상하기 때문에

나는 된장찌개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로만 빡빡하게 끓여둔다.

밥 먹을 때에, 딱 먹을 만큼만 덜어서 육수를 더 붓고 감자나 이파리 채소, 두부를 더 넣어 다시 끓인다.

된장찌개도 여러 번 끓일수록 맛이 더 좋아지는 신기한 음식.


한 냄비 끓여두고 며칠씩 먹기에는 카레도 좋다.

나는 채친 양파를 잔뜩 볶다가 소고기만 넣어 더 볶은 뒤 물에 갠 카레를 넣어 걸쭉하게 끓인다.

마지막에 매운 고추를 다져 넣으면 은근히 칼칼하면서 맛이 산뜻해지던걸.


김치찌개도 두고 먹기에 좋다.

참치 통조림을 넣거나.

두툼한 돼지고기를 넣거나.

둘 다 넣거나.

모처럼 플렉스 하는 날에는 소고기 차돌박이를 넣어보자!



제육볶음을 만든다.

설탕과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듬뿍, 간장도 조금, 식초를 고추장에 넣어서 간을 보면서 양념장을 만든다.

걸쭉한 양념이 달콤 매콤 약간 짭짤하면 된다.

양파를 굵게 채치고,

도톰하게 썬 돼지고기에 양념장을 조금씩 부어가며 고기를 골고루 버무린다.

양념이 충분해야 맛이 나거든.

양념이 지나치다, 싶으면 양파와 마늘, 꽈리고추나 표고버섯을 더 넣거나.


돼지고기와 오징어 또는 낙지를 함께 고추장 양념에 재워서 볶아먹기도 하는데.

나는 오징어, 낙지는 따로 양념에 재워두었다가

양념에 재운 돼지고기가 팬에서 어느 정도 익었을 때 양념이 된 오징어나 낙지를 넣는다.

갑각류, 어패류는 오래 익히면 질겨지더라.


소불고기는 달콤 짭짤한 양념을 전날에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먹을 때에 소고기를 양념에 버무려 얼른 굽는다.

소고기가 두툼해도 재우는데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오래 재우면 육즙이 빠지고 고기가 질겨지더라.


밑반찬 빠질 수 없지.

멸치볶음, 장조림, 우엉조림, 건새우볶음, 북어채 무침, 볶음 고추장 같은 거.

생선조림도 냉장고에서 이틀 정도는 괜찮다.

고등어조림, 삼치조림, 꽁치조림.

그 양념이 고추장이거나 간장이거나 또는 된장이거나.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그날의 양념을 고른다.

신김치를 넣은 칼칼한 생선조림은, 캬, 더할 나위가 없지.



꼬박 하루 바쁘게 몸을 움직인 덕분에 좀 늦은 시간,

푸짐한 저녁을 먹는다.

왕의 밥상.

신선의 기분이 되어서.

이 무슨 호강이란 말인지.

힘겹기만 하던 나날이 괜찮다, 싶어 보이고.

지금은 비록 캄캄한 수렁이지만,

차츰 나아지겠지 그러니 힘을 더 내자!

의욕이 퐁퐁 솟구친다.

배가 부르면 확실히 마음까지 긍정적이 된다.


오늘 내가 한 수고는 다음 한 주간,

내가 살아갈 힘이 되어주리라.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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