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직접 해 먹으려면 도구들이 필요하다.
갖추려면 끝이 없고,
초보자들은 조리도구 한두 개를 이리저리 돌려쓰면서 집밥을 시작해보자.
그러다가 계속 밥을 해 먹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일회용품이나 너무 싼 제품 말고 품질이 어느 정도 되는 도구를 시간을 두고 하나씩 사 모으라 권하고 싶다.
지금은 임시라고,
잠깐 혼자 사는 거라고 대충 넘기지 말자.
어느 하루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한 나의 인생이니까.
밥은 보통 전기밥솥에 하더라.
그것도 괜찮은데 부엌이 좁다면 전기밥솥보다 먼저 냄비 하나를 사라고 권하고 싶다.
냄비가 자리도 적게 차지하고 세척도 쉽거든.
밥, 국, 찌개, 라면, 계란, 국수... 다양한 음식을 조리할 수 있다.
고구마를 찌고 감자를 삶는다.
밥이 남으면 냉동실에 넣었다가 데우면 되고.
찬밥으로 두었다 볶음밥을 만들어도, 끓는 물에 끓여먹어도 괜찮다.
크기 별로 냄비를 갖추면 좋겠지만 시작은 1리터 정도면 괜찮을 듯.
하나, 하나, 차츰차츰 늘려가면 된다.
혼자여도 프라이팬은 살 것 같다.
냄비가 있고 프라이팬이 있으면 괜찮은데,
냄비도 없다면 웍-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궁중팬이라 부르는 속 깊은 팬이 두루두루 쓰기에 좋다.
뚜껑만 따로 파는 게 있으니까 웍에 뚜껑을 덮으면 끓이고 찌고 삶는 냄비처럼 쓸 수 있고.
팬처럼 프라이, 볶음, 조림, 파스타 같은 음식을 하기에도 적당하다.
한동안 건강 문제로 집안일이 힘겨울 때 나는 거의 20cm 소형 웍과 작은 냄비 하나만 쓰기도 했다.
식성에 따라 조리도구도 달라진다.
국물음식을 좋아한다면 냄비가 자주 소용되겠고.
기름으로 볶거나 지지는 미각이라면 프라이팬이 더 쓰이겠지.
웍 하나로 식생활을 꾸려가다가 프라이팬은 하나 갖추면 좋다.
조리도구가 하나뿐일 때는 반찬 하나 만들면 얼른 덜어내고 설거지를 해야 다른 음식을 만들 수 있어서 성가시고.
또는 한 번에 딱 한 가지 음식만 만들 수밖에 없어서 옹색한데,
조리도구가 둘 만 되어도 훨씬 편해진다.
단, 부엌 사정에 따를 것.
밥상을 차릴 상과 접시, 밥그릇, 국그릇, 컵, 수저.
음식을 만들 때 냄비와 프라이팬.
물 끓이는 주전자.
칼과 국자, 주방용 가위, 도마, 집게 또는 조리용 젓가락, 국수를 건지거나 채소를 씻어서 물기를 빼는 데 쓰는 체는 필요하다.
또 쌀 같은 식재료를 씻고 담아두는,
때로는 무침 같은 음식을 하는 믹싱볼도 있어야지.
만들어놓은 반찬이나 손질한 식재료를 담아둘 밀폐용기도 여러 개 필요하다.
쟁반도 준비해서 음식이 담긴 그릇을 옮길 때 쓰도록.
음식 접시만 달랑 들기보다 쟁반을 쓰면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수저도 밥 먹는 수저와 조리용을 구분할 것을 권한다.
행주와 수세미도 물론 처음부터 갖추어야 할 품목.
여행 가서 수세미 없이 설거지할 상황이 있었는데 여분의 극세사 안경닦이를 수세미 대용으로 사용했었다.
의외로 괜찮더라.
전자제품 파는 곳에는 일인용 전기제품들이 꽤 다양하게 나와있다.
처음부터 쫙 일습으로 장만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집밥을 해 먹어 본 뒤에
'내가 살림을 잘할 만한 인재로구나' 믿음이 올 때, 그때 도구를 일습으로 장만하는 편이 좋겠다.
물건을 집에 들일 때는 차지하는 공간, 관리의 용이성과 용도를 꼭 확인할 것.
남들은 잘 써도 내게는 불필요한 제품들이 있거든.
우리 때는 학교 수업시간에,
가난하지만 서로 아끼는 시인 부부의 일화를 통해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는 구절을 배운 적이 있다.
가난한 시인 남편이 일하고 돌아오는 아내를 위해 저녁밥을 지으려는데 쌀도 조금뿐이고 반찬거리는 없었다.
남편은 남은 쌀로 밥 한 그릇 정성 들여 지어서,
따끈한 밥 한 그릇에 달랑 간장 한 종지 곁들이고는,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는 메모를 써두고 아내가 돌아올 시간에 집을 비웠다.
비록 걸인의 밥 같이 소박한 식사를 하더라도 왕후 같은 밥상차림을 하시라 말하고 싶다.
구운 김 한 봉지에, 계란 프라이만 있는 심심한 밥상이지만.
물기를 꼭 짠 물행주로 밥상을 깨끗이 닦고,
따끈한 보리차 한 컵 따르고,
뽀송뽀송 깔끔한 그릇에 음식을 곱게 담아서.
나만 쓰는 수저를 두어 밥상을 차려서.
그리고 서두르지 말고 꼭꼭 씹어 맛있게 밥을 먹자.
밥은 중요하다.
밥은 곧 생명이며 밥 먹는 시간은 귀중한 휴식이 아닌가.
밥을 먹은 뒤에는 만족감을 느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스스로 대접하자.
내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데!
부엌에서 칼과 불을 쓰다 보면 자잘한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바셀린 하나 부엌에 갖춰두면 칼에 베이거나 작은 화상을 입었을 때 금방 응급 처치할 수 있다.
혼자 모든 일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사고에 노출될 수도 있는 데다가, 모든 상황을 혼자 처리해야 하니 미리 비상시를 대비해두자.
밥을 해 먹으려면 시작 단계에 비용이 꽤 든다.
조리도구에 더해 양념과 기본적인 식재료를 갖추는데 돈이 들고 신경도 쓰이니.
아, 귀찮아, 그냥 편도나 먹자.
포기할지도 모르겠네.
사정만 허락된다면 꼭 밥을 직접 해보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