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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n 06. 2021

다소 별난 미국 여행자

활자로 읽는 인물들

[기차를 타고 아메리카의 일상을 관찰하다],  돈 왓슨 저, 정회성 옮김, 휴머니스트, 2013, 03.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읽었으니 꽤 오래전 일이다.

파일에서 책의 내용을 일부 옮겨 적은 것을 찾았다.

다시 읽어보니 책 내용어렴풋이 떠오르네.


저자 돈 왓슨은 1947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생했다. 역사학을 전공했고 책 쓸 당시에는 주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 저자가 미국을 깊숙이 여행하고 쓴 책이다.

이미 미국에 심도 있는 식견이 있었던 저자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미국 대륙을 폭넓게 둘러보면서.

미국사회, 경제, 정치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했다.

분량도 많고 쉽게 읽힐 내용도 아닌데 파도가 밀려오는 듯 글이 힘이 있고.

여행자로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미국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보여주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통찰한다.



책이 담고 있는 방대한 내용을 모두 다룰 수는 없으니,

종교와 계급 문제에 관한 부분살펴보자.


먼저 미국 사람들은 미국이 ‘명백한 운명’을 받았다고 믿는단다.

옮긴이가 ‘명백한 운명’에 관해 설명하기를,


1945년 언론인 존 오설리번이 사스의 병합을 다룬 평론에서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19세기 중반에서 후반의 미국의 팽창기에 유행한 이론으로, 미국은 북미 전역을 정치ㆍ사회ㆍ경제적으로 지배하고 개발할 신의 명령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20쪽)



저자는 미국을 이렇게 여행했다.


나는 기차가 주는 친숙함을 좋아한다. 다른 승객과의 친밀한 교류는 물론이고, 창밖의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의 뒤뜰, 현관, 빨랫줄, 채마밭, 바비큐 시설, 개를 비롯한 반려동물 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누리는 것도 좋아한다. 손수 운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또한 마음에 든다. 공항에 가지 않아도 되는 데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 주머니를 다 비워 보여줄 필요도, 구두까지 벗을 필요도 없어서 기차를 좋아한다. 나는 특히 어둠이 깔린 들녘,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달리는 야간열차를 좋아한다. 기적을 울리며 구부러진 선로를 따라 달리는 열차의 어둠을 뚫는 빛, 그것은 당신을 향해 내뿜는 빛이기도 하다.

  나는 시카고에서 사우스웨스트 치프 호에 올랐다. 그리고 이 책에 기록된 여정을 마칠 때쯤 시카고 역으로 돌아왔다. 나는 딱딱한 나무껍질 속에 작은 홈을 파는 한 마리 좀벌레처럼, 기차 여행이 공화국인 미국을 헤집어보는 한 가지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22,23쪽) 


미국에 다시 온 나는 될 수 있는 한 모든 암트랙 노선을 이용해서 여행할 작정이었다. 나는 미국인들에게 노새 등에 탄 만큼만 지면과 떨어져서 당신네 나라를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도는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암트랙은 이미 철도의 그림자가 되어버렸다.(27쪽)   



저자는 먼저 미국을 소개한다.


미국이란 실험실에서 그 어느 나라와도 견줄 수 없는 천재적이면서도 세련된 부의 문명이 탄생했다. 전례 없는 다양성의 나라, 발명의 나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힘을 가진 나라가 탄생했다. 그 실험실에서는 폭력, 신성모독, 의와 부정, 군국주의도 탄생했다. 미합중국은 인류의 자유와 기회의 호민관으로서 이타심이 강한 나라다. 하지만 이 위대한 이타주의 나라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데다 약자를 괴롭히는 불량배이자 위선자이고 철저한 속물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미 합중국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면을 총망라해서 보여주는 나라인 것이다. 이 나라는 그 근원과 발전에 대한 종교적 신념과 함께 종종 혼란을 야기하는 원시적이고 미개한 요소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미국은 영웅들의 땅이지만, 미국이 나아가는 길에는 악마도 출현한다..... 지구 상에 출현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신성한 정복과 점령할 권리라는 명분을 내세운 ‘명백한 운명’을 신봉해온 나라가 미국이다. (30,31쪽)



책의 내용 중 종교 부분이 흥미로웠다.

미국에서 기독교란 어떤 의미일까.


미합중국에서 종교는 거의 모든 것의 최전방에 있다. 대법관을 지명하기 위해 맨 처음 의견을 구하는 대상이 바로 종교 지도자들이고, 지명자에게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관한 것이다. 허리케인에도 팬케이크 반죽기에도 하나님이 임하시는 나라가 미국이다.(57,58쪽)

 

그런데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국민이라고는 하지만 가끔 자신의 적들을 경시하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군인이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무자비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적어도 방송 해설가 같은 언론 종사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일정 수의 적을 죽였다고 미군에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놀랄 수밖에 없다. 그들의 말은 십자군 전쟁이나 로마 시절의 옛 문명에서 들려오는, 또는 알카에다로부터 들려오는 것처럼 들린다. 민간인 사망자와 부상자를 언급하지 않고 전쟁을 논한다든지, 미국의 내로라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미국이 다른 나라를 침공함으로써 비롯된 내부의 싸움에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듯이 말하는 것도 우리에게는 충격적이다.

  자신의 감정과 고통, 동정, 사랑, 원만한 해결 등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방송 전파가 분주하고, 일요일마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여주려는 이들로 교회가 꽉 차는 나라의 국민인 만큼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지 부시 시니어는 ‘사막의 폭풍 작전’을 전개하기 전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함께 기도했다. 그러나 단지 미국의 군대를 위해서만 기도했지, 아무것도 모른 채 곧 전멸될 징집병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들의 주님이 사랑하라고 충고한 적들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교도들을 용서할 마음은 없으면서도 아이다호주의 음탕한 남편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했다. (349,350쪽)



자유와 평등을 내세우지만 사실 미국은 엄청난 계급주의 국가이다.


민주주의의 부패, 부의 편중, 매체의 독점 등에 의해 미국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평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런 불평은 희망과 부패라는 낱말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오래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강력하게 들끓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에서는 상위 1퍼센트가 절반이 넘는 부를 차지했고, 상위 20퍼센트가 그 나머지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대사수의 미국 사람은 부당하다며 불평을 할까? 불평을 하기는커녕 그런 엄청난 부자들에게 세금을 감면해준 대통령이 연임할 수 있도록 표를 몰아주었다. (364쪽)


 미국은 끝없는 가능성과 모순, 그리고 온갖 난관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 어떤 사회적 또는 정치적 분석에 정복되지 않는 원시적인 힘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말했듯이 ‘많은 신화가 퍼져 있는 깊숙한 대륙, 셔먼의 군대 행진과 브리검 영의 일부다처와 신정국가체제의 대륙, 서부의 금광과 노을 너머로 들소 떼가 있는 대륙, 에드거 앨런 포의 불안한 미로와 월트 휘트먼의 멋진 목소리를 지닌 대륙’의 모습이다. 미국인들은 사실이 아닌 것을 믿고 그런 자신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투표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순수 이성을 발휘하는 것만큼이나 그들의 역사와 일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히 현실에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365쪽)



종교나 계급 문제에 관해 미국의 엘리트들은 진정 관심이 있는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용은 하지만 해결 의지는 없어 보인다.


... 나는 그 방송을 들으면서 불행이나 실패에 대한 대책도 없이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질병, 범죄, 마약은 물론 온갖 종류의 사회적 약탈에 시달리며 정년도 보장받지 못하고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조건에서 일하며 착취와 괴롭힘과 모욕을 당하고 있다.

  미국 사회 상위 10퍼센트의 순자산 평균은 100만 달러를 훨씬 넘지만, 하위 20퍼센트는 그 수치가 8,000달러도 채 안 된다. 현재 그 차이는 린든 존슨 대통령이 빈곤과의 전쟁을 벌였던 40년 전보다 더 크다. 게다가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더 짧아졌고, 유아 사망률은 홍콩보다 더 높다.(384쪽)


《워킹 푸어》에서 데이비드 K. 쉬플러는 천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그리고 그들을 고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초상을 장황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평론가들은 이 책에 대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고 평했다. 물론 미국이라고 해서 양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양심을 발휘할 장치가 없을 뿐이다.(386쪽)


쉬플러의 책에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는 언론에서 근로 빈곤층 또는 비근로 빈곤층에 관해 논할 때 가끔 사용되는 일반적인 말이다. 그러나 빈곤층을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표현하는 데는 약간의 어패가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식당, 가게, 호텔 등 어디에서나 그런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도, 번화한 주택단지 공원에서도 그들을 볼 수 있고, 고급 아파트 단지의 입구에서도 다른 사람의 아이를 돌보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아무 데서나 보인다. 고급 승용차의 운전석에서도, 암트랙 열차의 창가에서도 보인다. 트레일러 주차장에서, 부당한 수수료를 챙기며 월급날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곳에서, 전당포에서, 보석 감정소에서, 그리고 불티나게 팔리는 진통제 판매대에서도 그들을 볼 수 있다. 비슷한 정도의 ‘선진국’서 온 사람들은 미국의 어디에나 근로 빈곤층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불편해하면서 당황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으로 생각한다....   

... 미국은 선진국이지만, 미국에서 ‘선진’이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명왕성에 우주선을 쏘아 올린다고 해서 선진국은 아니다.... 이 나라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오히려 ‘발달이 덜 된’ 분야다.... 유럽은 이미 발달된 사회지만 미국에는 미개척지가 수두룩하다. 미개척 사회에서는 아무리 추하고 모욕적인 일일지라도 그런 일에 사람을 고용하거나 노예처럼 소유하고도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권리가 별다른 제약 없이 행사된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는 신의 섭리로 그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며, 그들이 죽거나 더 나은 일을 찾아 떠나면 또 어딘가에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386~388쪽) 


“아무도 그것에 관해 섣불리 말하려 하지 않지만, 계급은 흑인 문제를 포함해서 현대의 미국이 안고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민감한 주제예요.”  

  미국인들은 인종 문제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계급 구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만큼 인종 문제는 미국인들에게 굉장히 민감한 것이다. 그것은 미국인들이 느끼는 근본적인 불안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399쪽)

  


마지막으로 미국에서의 자유란 무엇일까?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자유라는 케케묵은 말을 귀 따가울 정도로 자주 듣는다.... 우리가 아는 자유와 미국인들이 아는 자유는 그 개념이 다르다.... 이 나라에서 자유는 그 자체가 신성불가침이다. 자유는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게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자유는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 미국의 자유가 전적으로 옳지만은 않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460,461쪽)


만약 당신이 미국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거리 풍경을 바라보거나 카페나 기차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많은 미국인이 구멍을 찾을 수 없는 연극무대의 얇은 막 뒤쪽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리라. 그 구멍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존재하기는 하니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언젠가 당신도 온갖 난관을 극복한 유명인사들 틈에 낄 수 있을 것이다....(461,462쪽)


~라는 희망에 속고 있다는 말이겠지.

'자유와 성공'은 역사상 극히 일부의 미국 사람에게만 현실이 될 수 있었다.

그 외의 전부는 습관처럼 떠들 뿐이다.

그들의 하나님이 그러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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