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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y 27. 2021

매그레 반장

활자로 만난 인물들

조르주 심농, 추리소설들-매그레 반장 시리즈,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대부분 살인사건인 은 불만이지만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들을 즐겨 읽었다.

소설에는 인간들의 어긋난 사랑이 있고,

절제 없는 욕망이 있다.

가난과 불만과 분노와 불합리가.

무고한 사람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억울함,

범죄자들의 비열함 못지않은 심판자들의 어리석은 자만심이 있다.


허물 많은 인간의 속성들이 복잡하게 뒤엉킨 실타래에서 차분차분,

과학적 증거와 합리적인 추론으로 진짜 범인을 찾아내어 범죄 동기를 밝혀내는 소설 속 탐정은 얼마나 멋진가!

추리소설의 유명한 탐정들은 다들 한 재능과 뚜렷한 개성을 갖는데.

1903년 벨기에 태생의 작가 조르주 심농이 1930년 대에 쓴 파리 경찰청의 매그레 반장 시리즈도 참 재미있다.



매그레 시리즈를 읽다 보면 페이소스랄까,

한계 안에서 얽히고설킨 채 살아가는 부족한 인간에 대한 서글픔과 우울한 정서가 느껴진다.

매그레 반장은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갖는 사람이다.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하지만,

아는 것 하나 없이 사건을 오히려 엉뚱하게 몰아가는 상급자의 잘난 척에도.

범죄가 곧 살아가는 방식인 비열한 생존자들에게도.

모함에 빠진 선량한 시민을 매그레 반장은 특히 안쓰러워한다.


작가 조르주 심농은 열다섯에 학교를 그만두고 서점이나 신문사 같은 곳에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그레 시리즈는 파리를 중심으로 주로 서유럽 북부 지방을 지리적 배경으로 하는데.

책 앞면에는 고지도 풍의 파리 지도가 경찰청을 표시하고.

뒤면에는 서유럽 지도 위에 사건이 일어난 지점을 표기해서,

나처럼 지도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기호를 겨냥했다고 할까.


나는 작가의 개인사를 들추는 작가 연보에 매우 회의적이나

책에 붙어있는 연보는 흥미 있게 읽는 모순을 가졌다.

조르주 심농은 대륙을 넘나들며 많은 지역을 옮겨 다니며 살았더라.

86년 인생에 글도 참 많이 쓰셨.

여러 여성분들과 사랑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그런 다양한 경험과 호기심작품 속에 녹아있어서 소설은 종종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은 시대의 풍경화 같다.



중절모자를 쓰고 늘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부부 사이가 애틋한 매그레 반장의 사무실 풍경은 이렇다.


자기 책상 앞에 편안히 자리 잡고 앉은 매그레의 등 뒤에선 난로가 웅웅대고 있었고, 왼쪽에는 모슬린 천 같은 아침 안개로 덮인 창문이 있었으며, 앞쪽의 루이 필리프풍의 검은 대리석 벽난로 위에는 20년 전부터 정오를 가리키며 멈춰 서 있는 괘종시계가 보였다.([마제스틱 호텔의 지하] 중, 161쪽)


정의를 실현한다는 고위 관계자들은 사건의 진실보다는 권력의 크기에 더 좌우되는가 보다.

피해자의 남편은 아내가 피살당한 상황에서 다른 여자와 애정행각을 벌이면서 경찰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사 판사는 클라크는 건들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왜냐면 일개 경찰관 따위하고 맞붙어 싸우기에는  

분명히 너무도 고귀한 신사분이니까....([마제스틱 호텔의 지하] 중, 138쪽)


소설 속에 범죄의 단서와 복선은 아무 표정 없이 무심하게 늘어서 있다.

반장은 조심스럽게 모든 것들을 살피고 기억한다.

사건이 해결된 뒤에 독자들은 아, 감탄하면서 소설 앞부분,  자신이 무심히 지나쳤던 장면들로 되돌아가리라.



나는 유튜브에서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전반기 도시 풍경을 찍은 동영상들을 종종 본다.

색이 바래고 움직임이 어색한 동영상 속에는 치렁치렁하고 허리를 죄는 옷을 입은 여인들과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든 신사들이 걸어가고.

터덜터덜 전차와 마차가 석조건물들 앞을 지나간다.

조르주 심농이 매그레 시리즈에서 그린 1930년대 파리 풍경은 이렇다.


물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를 관찰해 보면 물고기가 별 이유 없이 한동안 꼼짝 않고 있다가, 어느 순간 지느러미를 하늘거려 조금 앞으로 가서는 또다시 그렇게 가만히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바스티유와 크레테유를 오가는 13번 전차의 막차 역시 그렇게 평온하게, 별 이유 없는 것처럼 카리에르 강둑을 따라  누런 불빛을 끌고 달려왔다. 전차는 한 도로 모퉁이, 녹색 가스등 근처에서 멈춰 서는 듯했다. 하지만 차장이 종을 흔들어 댔고, 전차는 멈추지 않고 정류장을 지나쳐 샤량통을 향해 달려갔다.

....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주점 두 곳에 불이 켜져 있었다. 한 곳에서는 사내 다섯이 카드를 치고 있었다. 한가하게, 아무 말 없이, 그중 셋은 선원이나 물길 안내인 모자를 쓰고 있었고, 함께 카드를 치는 주인장은 셔츠 바람이었다. ( [제1호 수문] 중, 7,8쪽)


작가는 작품을 쓰기 전 한때 선박 유람에 흥미가 있어서 배를 타고 프랑스의 운하와 강들을 유람했다고 한다.

그저 구경만 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작가의 소설 속에는 관련된 인물들의 세계와 풍경들이 세세하게 그려지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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