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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어울리기

혼자 살아요

by 기차는 달려가고

젊었을 때는 친구들이 많았고 어울리기도 잘했다.

겉으로 쉽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까다로우시고 예민하신지라.

사실은 울끈불끈,

쟤는 왜 저래!

맘에 들지 않는 것도 많아서 흥분도 잘하시고, 분개도 잘하셨다.


속은 좁은 데다 인간에 대한 기대치는 높으니.

걸핏하면 이게 싫네, 저게 맘에 안 드네, 핏대를 올렸지.

스스로도 성찰은 한다고 했지만 내 언행의 부끄러움은 오래 갖지 않았다.

나는 나중에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거니까,

오늘의 모자람은 곧 사라질 것이다! 하면서.



미숙하고 서툴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인간에 대한 성의가 있었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싫다고는 했지만.

속상해하면서도 행동의 이면을 알려 들고 심리 구조를 파악하려 했다.

내 좁은 소견으로 이렇다, 저렇다, 단정해버렸지만 말이다.


어느 땐가부터 어떤 상황에도 화가 나지 않는다.

망연한 기분이 되기는 한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겼나 보지, 냉정하게 된다.

동시에 인간에 대한 성의도 없어졌다.

진실이 뭔지 알려 들지 않는다.

아름답지도 않고 시커멀게 뻔한 내면 구조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다.



나도 별난 사람이라 내 입장에서는 뚱딴지같은 말을 듣기도 한다.

다들 자기 잣대로 세상을 보니까 나에 대해서도 자기식대로 이해하고 판단하며,

그걸 또 내게 말하는 것이다.

솔직도 하시지.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미쿡 사람이 내게 와서 영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나는 전혀 못 알아들어.

그 사람이 화를 내.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귀먹었구나, 하는 거다.

난 한국말만 할 줄 알거든요, 중얼거리지만

그 미쿡 사람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내가 미쿡에서 태어나고 자란 교포일 거라고 봤대.

(무슨 근거로???)

나중에라도 아니구나, 순 한국사람이어서 영어를 못하는구나,

성의 없이 sorry, 라도 해준다면 다행인 거고.

많은 사람들은 내가 본 게 맞아!

분명히 영어 잘하는 한국계 미쿡사람인데 거짓말하는 거야,라고 생각해버리고.

절대 자기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

일부러 더 길길이 날뛸 수도 있다.



내가 그 미쿡 사람이 될 때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가끔은 사람들이 외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이 외부에 반사될 뿐이 아닌가, 싶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속담이 이래서 나왔겠지.


살아오면서 여러 경험을 하고 생각을 하면서 점점 인간의 다양성과 본질을 이해한다고 할까.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아도 이제는 그것이 그 사람의 본질이라고.

때로는 그 사람도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른 세상의, 다른 언어를 쓴다고 생각해버리면 내 마음은 평온함을 지킬 수 있다.

화나지 않는다.



거리를 두고 부딪치지 않을 만큼 멀찍이 떨어져서 진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닌 무난한 대화의 기술을 구사한다.

인터넷에서 그렇듯,

존재 전부로 만나는 친구가 아니라

존재의 극히 일부- 서로 의견과 취향이 그나마 통하는 한 부분만 함께 하는,

편집형 인간관계를 상상해본다.


따로 또 같이,

나라는 사람을 조각조각 나눈 뒤에 그 조각들을 각각 분류해서 계열을 정리한 뒤.

누구와는 1번 계열만.

또 다른 누구와는 2, 5번 계열을...


이미 그러고는 있지만,

쫌 슬퍼지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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