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답다는 것은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프랑스 추리소설을 읽는다.

모리스 르블랑이 쓴 [괴도신사 아르센 루팡]은 나 어릴 적에는 [괴도 루팡]이라는 동화책으로 번역되었었다.

아마 일본 서적을 요약, 번역한 것이었겠지.


1960년대 우리나라는 참으로 가난해서.

사무실 하나에 책상 두어 개 놓인 초라한 출판사는,

잉크를 찍은 펜으로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눌러쓰는 가난한 글쟁이에게 일본 서적을 던져주고.

글쟁이는 팔리지 않는 자기 글 대신 일본어로 번역된 서구 서적을 우리말로 옮겼다.

활자를 조판해서 인쇄하고 일일이 손으로 제본했고.

직업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세일즈맨이 되어서,

무거운 책과 광고지를 들고 집집마다 전집을 팔러 다녔다.

부모들은 아이들 교육이라면 기꺼이 과용했으니

할부로 동화책 수십 권 전집들을 사곤 했었지.


나도 대학교 때 학교 교정에 들어온 세일즈맨에게서 전집을 산 적이 있다.

폐간당한 [창작과 비평] 영인본으로 두툼한 책 수십 권이었는데 대학 내내 잘 읽었다.

나는 책값은 보통 아버지한테 따로 받았었는데,

이 책 할부금은 거의 내 용돈으로 충당했었네.

그 시절에 '창작과 비평'은 학생들 사이에서 꽤 믿음이 있었었는데.

이제는 지나버린 옛이야기가 됐으니,

씁쓸...



하려던 얘기로 돌아가서.

원본을 제대로 번역해 출판한 [괴도신사 아르센 루팡]을 어른이 되어 읽어보니.

늘 승리만 하는 루팡은 지나치게 완전체이고.

패배만 하는 가니마르 형사는 측은하더라.

노력은 모자람이 없는데 억울하겠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려고 배역을 이리 나누었겠지만,

현실에서 이런 배역을 살아야 한다면 운명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큰 나무는 커서 좋고.

작은 풀은 작은대로 사랑스럽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고맙고,

서늘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멋지다.


내 노력이 모자라서 나는 큰 나무가 될 수 없는 건가요?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은 풀이 묻는다면,

무슨 소리,

너는 너대로 충분히 아름답고 네 역할을 충분히 하는 걸!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데.

사람만은 어떤 이상형을 만들어놓고 그에 못 미치면

스스로를 다그치고 자책하는 것 같다.



예전에 오래 노력했다가 단번에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있었다.

성공의 여파가 몇 년은 가서 종종 매체를 통해 근황을 알 수 있었는데.

한번 성공하고는 그 뒤로 다른 진행이 없었던 몇 년 뒤에 TV에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원래 투박하고 촌스러운 외모여서,

성실해 보인다, 뱃심이 있어 보인다, 는 인상을 주었는데.

갑자기 아이돌 같은 옷을 입고 머리 모양을 한 것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것이야 계속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어울려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당황한 것은 원래의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이 뚝심 있어 보여서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기다움을 내다 버리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려는 그 심리가 궁금했다.

그 뒤에는 소식을 모르겠다.



물론 한 사람 안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가지 모습에 고정될 이유는 없지.

하지만 성숙되어간다는 의미는,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서 자신 안의 다채로운 요소를 더 조화롭고 풍부하게 발전시키는 게 아닐까.


하늘을 날아가던 작은 새가 어느 날 호랑이가 좋아 보인다고 갑자기 호랑이 탈을 쓰고 땅에서 걷기 시작하면,

호랑이가 될까...

아니, 왜 호랑이가 돼야 하나?

작은 새만으로도 충분한걸.



내가 한철을 살다가는 풀로 태어났는지,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나무의 새싹인지,

역할에 불만은 없지만 뭔지 모르는 게 문제다.

한해살이 풀이라면 풀답게 한 계절 신나게 살 것이고.

나무라면 나무답게 고난을 견디면서 성장을 기다릴 텐데.


이제는 씨앗을 남기고 마무리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봄이 올 때까지 죽음과 같은 겨울을 견뎌야 하는 건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한해살이 풀이 노력한다고 나무가 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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