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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l 11. 2021

미국의 확장

활자로 만난 인물들

[나의 안토니아], 윌라 캐더, 윤명옥 옮김, 디오네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은 인터뷰에서,

미국 작가 윌라 캐더의 소설 《나의 안토니아》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는 보지 않으나 영화 관련 기사들은 꽤 열심히 읽는 편인 나는,

영화 <미나리>가 실제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는 모르지만, 미국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윌라 캐더의 소설 [나의 안토니아]는 19세기 후반,

대륙의 동부인구가 주로 집중되어있던 미국이,

명실상부 북미 대륙 전체로 뻗어나가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1873년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네브래스카 조부모 집에서 성장했는데.

조부모는 이미 네브래스카에 기반을 잡아 커다란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웃들인 이민자들이 개척지를 얻기 위해 맨몸으로 네브래스카에 와서,

도전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성공하는 실제 이야기들을 작가는 꼼꼼히 기록한다.

소설에서 작가는 네브래스카 평원의 아름다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자연.

그리고 개척 이민자들의 고생스러운 삶과 자손들의 행방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살아보려고 또는 궁지에 몰린 구대륙에서의 삶을 탈출하여.

독일, 보헤미아, 러시아, 프랑스, 폴란드, 스칸디나비아 같은 고향을 떠나 배를 타고 '물 건너온' 이민자들.

'우리는 네브래스카의 블랙호크로 가요'라는, 영어 한 마디만 되뇌며 덜컹거리는 기차의 3등석을 타고 대륙을 횡단한다.

어도 못하믿었던 친지에게 속아 가진 돈을 털렸다. 

맨몸으로 해보지 않은 농사일에 도전하는 이민자들.

땅굴이나 토담집에 몸을 의탁하며 살을 에는 추위와 찌는 듯한 더위를 견디고,

답이 보이지 않는 배고픔으로 점점 비굴해간다.

끝내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목숨을 내던지지.


아들들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를 도와 소떼를 몰거나 농사일을 하고.

성장기 맏딸들은 집을 떠나 읍내에서 식모살이를 하거나 작은 사업체에서 고용살이를 한다.

그래서 받은 돈은 고스란히 지독한 사채업자 주머니들어가고.



대서양을 건넌 이민자들이 최종적으로 닿은 곳은 이미 발전한 화려하고 번영한 동부 대도시가 아니었다.

미국인들의 손길이 닿지  대륙의 서부, 그냥 땅일 뿐인 곳이었다.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미국 영토라 선언한 곳.

땅만 있으면 부족하다.

사람을 채워 넣자- 해서 넓은 땅을 미끼로 흔들어 가난한 이민자들을 불러들였다.


미국의 막대한 부와 상관없이 이민자들은 원시적인 궁핍을 겪으면서,

태곳적부터 그러했듯 땅에 씨를 뿌리고 농작물을 수확하고 가축을 기르고 자식들을 키워낸다.      


소설을 읽다 보면 선조가 먼저 미국인이 된 덕에 백인 중산층으로 자리 잡은 작가의 시각이 보인다.

위크 부부의 잔인한 일화라든가 안토니아 아버지의 유약함과 부드러움에 대한 후한 평가.

반면 수 차 언급되는 안토니아 어머니의 점잖지 못하고 비굴해 보이는 물질적인 욕심은,

생존이 절박한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어린 화자 시선이라는 점을 감안해야겠다.     



두툼한 분량만큼 소설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민자들의 고혈을 뽑는 사채업자인 위크 커터와 그 부인.

지구 위 어디에 있든 크리스마스 때는 고국에 있는 어머니께 편지를 쓰는 방랑 노동자.

중년의 나이에 아내에게 떠밀리듯 익숙한 땅과 삶의 방식을 떠나서,

질서와 평안이 사라진 이민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문화적 세련미와 예술적 소양을 가진 안토니아의 아버지...


읍에 사는 탄탄한 중산층 가족들이 있고.

질서와 무법 사이를 아슬아슬 건너뛰는 허황된 남자도 있다. 

앞서가는 생각과 평범한 재능을 지닌 일단의 젊은 시인들과 화가들을 후원하는 부유한 젊은 부인도 등장하지.


당시 사회를 그려볼 수 있는 풍속도 보인다.

가을의 타작마당.

추운 겨울을 외투 없이 나야 하는 아이들.

겨울이면 강에서 스케이트를 지치고,

여름날 공터에는 춤 교습 천막이 차려진다. 

들뜬 처녀 총각들과

읍내에 소문을 몰고 다니는 세 명의 '메리'들과

타고나기를 남자의 눈길을 끌어야만 는 독신녀.

결혼 선물로는 은도금 그릇 세트.

호텔에서는 맹인의 음악회가 열린다.

무엇보다 집안을 돕는 시골 처녀들의 도시 식모살이는 우리에게도 멀지 않은 과거의 기억이다.     


소설은 등장인물 대부분의 성공담으로 이어진다.

특히 역경을 딛고 열 명이 넘는 아이들과 대지의 작물을 키워내는 안토니아의 강인한 삶은

내면의 생명력과 인간미를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물질적인 성공만 이룬 다른 인물들과 다른 진정한 성공이라고 작가는 평가한다.

한여름날 넘쳐흐르던 낭만은 겨울의 혹독함을 견디고 비로소 알맹이를 품은 참된 삶의 단계에 접어들 수 있었.

가난과 고통에 굴하지 않고 시련을 겪어내며 끝내는 삶의 환희를 품고야 마는 이 시절의 이런 얘기는,

참으로 건강한 성공담이었을 것이다.

번영하는 미국이 자랑해 마지않던 American Dream.



전에 읽은 [산파 일기]는 이 소설보다 한 세기 앞선 개척지를 배경으로 했다.

미국 북동부 지역이었다.

이 소설은 서부로 이주해서 5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 싼값에 넓은 땅을 불하했던 1862년 "자작농지법"의 시행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1869년에 미 대륙을 동서로 관통하는 대륙 철도의 완성으로,

서부로 향하는 이민자들이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현재의 미국 지도에서는 네브래스카보다 훨씬 서쪽,

태평양 쪽이 서부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읽은 [위대한 개츠비]에서 시카고를 서부라 일컫던 주인공들을 떠올리면,

네브래스카가 당시 얼마나 아득한 서쪽으로 멀리 가야 했던 곳인 짐작되겠지.


대륙철도 완공 이전에 서부로 갔던 사람들은 마차를 타고  "오레곤 트레일"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겪어야 .

대륙철도 완공에는 혼란하고 극빈한 청나라 말의 중국을 떠나 계약 노동자로 미국에 실려온 중국인 노동자들의 처절한 노동이 있어서 가능했을걸.

지금 최강대국 미국에는 부유함은 맛도 못 보고 뼈를 깎는 노동만 하다가 스러져간  가엾은 희생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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