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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l 03. 2021

어긋난 인연

활자로 만난 인물들

[토란], 이현수의, 문이당, 2003.



오래전에 좋게 읽었던 소설이다.

리듬감 있는 문체에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꽤 좋게 읽었고.

그래서 몇 구절을 옮겨놓았었다.

전에 읽은 책들을 다시 끄집어 상기하는 중.



작가의 단편 모음집 첫머리에 수록된 《토란》은 31쪽 분량의 짧은 소설로,

화자는 며느리.

시간은 아들의 생일 저녁.

공간은 아들 네 집이다.


부엌에서 며느리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청주 딸네 집에 머물고 계시는 시어머니가 도착한다.

고부는 음식을 함께 준비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요리의 달인이며 요리가 종교인 시어머니,

신바람을 일으키며 요리하는,

먹는 사람을 황제로 여기며 온 힘과 시간과 정성을 요리에 다 쏟는.

맛뿐만 아니라 모양새까지 남달라서 손이 닿으면 밥상은 잘 정돈된 화원이 되는 그런 솜씨와 자세를 가진 분이시다.


지금은 마음이 맞지 않는 남편은 혼자 두고 딸네 집에서 살림을 봐주고 있다.

친정어머니가 이제는 부담스러운 딸.

혼자 있는 까다로운 시아버지가 버거운 며느리.

자식들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다시 합치려고 아들의 생일을 핑계로 시부모가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요리 솜씨만큼이 말솜씨도  현란한 시어머니남편인 화자의 시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     


속창시 빠진 인간(9쪽),  

빌어먹을 짓만 골라서 헌, 지 성질에 못 이겨 파르르 넘어가는 자발없는 사내(10쪽)

지 입 지 몸만 생각허는 인간(12쪽)

팔풍받이로 평생을 헐렝거리며 댕기는 (37쪽)


손 귀한 집에서 응석받이로 자라난 시아버지.

물려받은 재산은 차례차례 날리고.

이 일 저 일, 손 대봤지만 어느 것도 석 달을 넘기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여행을 즐기며 음악도 좋아하고 커피와 베레모로 멋은 부려야 하는 사람.

남 보기에 번듯해야 하고 궂은일은 절대 안 하는 대신 뜬구름은 잘 잡는...     

영원히 자신은 받을 것만 있는,

절대 누군가를 위해 자신도 힘들여 뭔가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는 사람.

인생은 즐거워야 할 뿐, 인생의 무거운 짐은 등에 지지 않는 사람.


그러 뒷감당은 고스란히 아내에게 떨어진다.

남편 일이 안 되는 도 아내 이다.

아내의 뛰어난 요리 솜씨는 오히려 허물이 된다.

아내는 무책임한 남편 때문에 시부모에 눌리고 여섯  시누이 등쌀에 시달리며 막막한 살림살이로 자식들을 키워야 했다.



내 속도 지지고 볶고, 도마질한 재료도 지지고 볶고 그렇게 밤새 지지고 볶(30쪽) 으면서 살아왔다.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강퍅함에 깊은 상처가 있다.

며느리는 첫 만남에서 부드러운 시아버지의 기억을, 광대뼈가 도드라진, 날 선 시어머니의 기억을 짙게 담았다.   


시어머니가 살아온 인생은 쓴맛이다.

시아버지가 식후 30분에 꼭 마셔야 하는 커피의 호들갑스러운 쓴맛이 아니라 진하고 은근한 취나물의 쓴맛이다.


... 한 시상 살며 인생사 이 굽이 저 굽이 넘노라면 절로 쓴맛이 입에 맞기 돼야. 밥맛이 떨어졌을 때도 글타. 단 게 땡길 줄 알쟈? 천만에. 쓴 걸 입에 물어야 밥이 넘어가는 벱이여. 원래 십 대나 이십 대는 단맛이 입에 맞고, 삼십 대와 사십 대는 신맛을 좋아하게 되어 있는 것이여. 오십 고개를 넘어야 취나물의 맛을 알기 돼야. 취나물의 씁쓰레한 맛이 우리네 인생살이 맛이거든. (27쪽)



취나물의 씁쓸한 맛이 남편과 손을 맞잡을 수 없었던 시어머니의 인생이었다면,

토란의 아린 맛은 불화한 시부모로 인해 지친 며느리의 처지일 것이다.


결혼 생활은 서로의 이해득실로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이고. 지속하는 것이 그만두는 것보다 손실이 크다면 그 끈은 끊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발 들여놓은 운명은 겪어낼 뿐,

이제 그만 마칠 수도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아니면 결혼에 대해 갖고 있는 허상만큼이나 다른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놓지도, 붙들지도 못한 채 증오와 원망으로 이어가는 상처뿐인 줄다리기가 되었는지도 모르지.    


결혼은 사랑과 보살핌.

책임과 의무와 협력이며 생계 문제가 바탕에 깔려있다.

하여 스스로 생계를 해결할 수 없다면 문제는 정말 복잡해진다.

지금은 갈등과 미움이 있어도 자식 때문에.

또 무력하고 막막한 노년에는 서로 의지가 되리라는 기대로 불화를 견디는 부부가 많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서로에 대한 연민과 동반자로서의 협동심과 배려심을 키울 수 없었던 부부는,

노년에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늙은 아내는 솜씨 좋은 밥상을 차릴 수 있는 자신의 부엌을 평생 갖지 못했고,

늙은 남편은 맛있는 밥상을 받을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늙은 아내는 이제는 부모의 부담에서 놓여나고 싶은 딸의 얄팍한 인정에,

늙은 남편은 더는 고래 싸움에 터질 새우등도 없는 지친 며느리의 내키지 않는 손길에 그들의 노년을 다시 기대야 한다.


왜!

이들은 부부로 만나게 되었는지.

운명인가?

이들은 어떻게 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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