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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n 27. 2021

일어서다

활자로 만난 인물들

[레벌루션 No. 3], 가네시로 가즈키

김난주 옮김, 현대문학 북스,



작가는 일본에서 흔히 '자이니치(在日)' 불리는 한국계 일본인이다.

작가의 작품 여럿이 우리말로 번역되었는데,

자신이 일본 사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자이니치로 성장하면서 겪은,

일본 내 소수의 이야기를 흡인력 있는 문장과 경쾌한 필치로 녹여냈다.



작가의 작품들에는 "박순신"이라는 영웅이 등장한다.

대단한 독서가에 사회를 통찰하며 정의로운 '순신'은,

격투기에도 뛰어나서 부패한 기득권에 의해 궁지에 몰렸을 때 해결사 역할을 한다.

20세기 말~21세기 초 우리나라에 번역된 많은 일본 소설들은 대체로 지극히 사사롭고 소소한 이야기들이었는데.

이 작가의 소설들처럼 사회 구조를 통찰하는 드문 작품들도,

그 해결 단계에 가서는 판타지로 비약하는 경향이 보인다.

그만큼 일본 사회의 누적된 문제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일까.


단편 셋을 모아놓은 단편집 [레벌루션 No.3] 작가의 데뷔작으로,

동명의 소설과 '런, 보이스, 런', '이교도들의 춤' 세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은 연작소설처럼 하나의 소설로 읽어도 무방하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보자.


* 화자(미나가타 구마쿠즈)- 부모는 이혼, 모범생이었다가 중학교 때 방황했다. 지금은 대학 진학 준비

* 박순신- 재일 한국인, 독서광, 권투 등 격투기 천재

* 이타라시키 히로시- 오키나와 출신, 흑인 병사의 혼혈

* 이노우에- 학급 회장 

* 야마가타- 늘 재수 없는 어버리

* 아기(사토 다케시) 일본과 필리핀(조상 중 화교, 스페인 혼혈) 혼혈, 미남

* 가노야- 부친은 구 국철 근무, ‘일본 최고의 차량 기사', 민영화되면서 해고당하고 알코올 중독, 현재 교도소에. 

학교 다니면서 만화 제본소에서도 일한다.

* 닥터 몰로- 생물 선생 요네쿠라  

* 더 좀비스- 학생들 47명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신주쿠 구에 있다.

신주쿠 구에는 무슨 영문인지 유명한 인문계 고등학교만, 예를 들면 총리대신을 배출한 사립대학의 부속고등학교, 도쿄 대학 진학률이 어처구니없이 높은 데다 고급 관료를 줄줄이 배출하고 있는 도립고등학교, 게다가 지체 높은 집안의 자녀들이 다니시는 여자고등학교 등이 모여 있다.

우리 학교는 1963년에 역도산을 찌른 야쿠자,... 일부 마니아나 반가워할 유명 인사를 배출한 것을 마지막으로 총리대신도 고급 관료도 지체 높은 집안과도 전혀 무관하다. 그러니까 신주쿠 구에서 뭍의 고도처럼 유일하게 존재하는 전형적인 삼류 남자고등학교다.

무슨 악연인지 유명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대부분은 우리 학교에서 반경 2킬로미터 안에 있다. 놈들은 이웃사촌인 우리를 ‘좀비’라고 부른다.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좀비’라는 별명의 유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우리 학교의 평균 학력이 뇌사 판정에 버금가는 혈압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 요컨대 뇌사 상태인 우리는 학력 사회에서 ‘살아 있는 시체’에 가까운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쪽은 내 마음에 쏙 든다.  

‘죽여도 죽을 것 같지 않아서.’

시각을 바꿔 생각하면 우리는 영웅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질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면 〈레이더스〉의 인디아나 존스,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처럼.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 우리 학교 자체의 별명은 ‘쥐라기 공원’이라고 한다.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그런 우리들의 사소한 모험담이다.(11,12쪽)    


모두들 자기 이익에만 몰두한다.

교사도 예외는 아닌데 어디나 별난 사람은 있다.

우리들의 선생님.

그분의 말씀을 전해줄까?


근속 30년을 헤아리는 생물 선생 요네쿠라는 우리가 입학하기 훨씬 전부터 ‘닥터 몰로’라 불렸다. 그 이유는 매 수업마다 교과과정을 무시하고 유전을 운운하기 때문이었다. (22쪽)


“너희들, 세상을 바꿔보고 싶지 않나?”(23쪽)

  

“공부를 잘하는 놈들과 같은 판에서 싸워봐야 절대로 이길 승산이 없다. 게다가 잘 못하는 것을 억지로 계속할 필요도 없다.”

학급 회장인 이노우에가 반론을 펼쳤다.

“그래도 세상을 지배하는 건 공부를 잘하는 인간들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 인간들의 지배하에 있어야 한다는 건가요?”

“너희들이 공부 잘하는 인간들의 세계에서 살려고 하는 한 그렇겠지.”

닥터 몰로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희들이 무엇이든 한 가지의 재능을 갖고 태어났을 것이다. 그 재능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서 그 재능의 세계에 살면 공부 잘하는 인간들의 세계는 자연히 소멸될 것이다.”

 (26쪽)

  


현실에서 부당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지.


“고졸하고 대졸이 같이 일하면, 고졸이 일을 더 잘해도 월급은 대졸이 많잖아. 그리고 같은 대졸이라도 대학에 따라서 출세 경쟁에서 차이가 나고. 일본 사람들은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교육받았으니까, 눈앞에 있는 차별이 보이지 않는 거야. 하기야 보이지 않는 척하고 있는지도 모르지.”(40쪽)

  

그래서 이런 꿈을 꾼다.

“너희들, 세상을 바꿔보고 싶지 않니?”    

“내가 납득할 수 없는 것을 바꾸고 싶어.”   


헤헤헤, 알 만 하군, 순신은, 늘 다수 측이 이기게 돼 있어,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아까 우리에게 굴복한 놈들은 머지않아 사회의 한가운데서 다른 형태로 우리들을 굴복시키고 승리를 거머쥐려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몇 번이나 패배의 쓴 맛을 보게 되리라. 하지만 그게 싫으면 이렇게 계속 달리면 된다. 간단하다. 놈들의 시스템에서 빠져나오면 된다.(127쪽)


모두들, 뛰어, 뛰어, 뛰어.....    



건강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데는 우리의 헌신이 필요하다. 

[이교도들의 춤]은 이 구절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리틀 중사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작별인사를 했어. 너는 고된 인생을 살지도 모르겠다, 상처 받아 좌절하는 일도 있겠지,라고 말이야, 그리고....”

우리는 세계와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느끼면서 히로시의 마지막 말에 귀 기울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춤추는 거야.”(274쪽)


작가는 복싱을 했다고 한다.

작가의 소설 중에 복싱을 잘 설명하는 구절이 있었다.

나를 지키면서 한 발, 한 발, 문제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거다.

아무 무기도 없이.

오직 나 자신으로.

쓰러질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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