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변해가네.

by 기차는 달려가고

수저가 무겁다-로 시작되었다.

벌써 오래전, 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이 우리 집 재정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뒤 수습하느라 무척이나 힘들었던 오랜 시간,

어머니는 오른손을 떨기 시작하셨다.

손을 떠는 것 외엔 통증이나 다른 문제는 없어, 기초적인 검사로 파킨슨병일 가능성은 낮다, 는 의사 소견에 기대어 손 떨림은 엄마 혼자 감당하는 문제로 넘겨버렸다.

어머니 몸의 불편함에 계속 관심을 쏟을 경황이 아니어서 노화려니,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몇 년 뒤 어머니는 수저가 무겁다고 하셨고, 옻칠한 나무 수저를 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해서 중병으로 가속되는 신체의 무력화는 인간의 자율성을 빼앗고.

건강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생존 활동의 모든 것을 불편하게 한다.


통증과 함께 자유자재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은 마음을 나약하게 하고 정신을 뒤흔든다.

마음은 움직이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병든 노인의 입장을,

아직은 튼튼하게 머리의 지시에 따라 제대로 작동되는 몸을 가진 젊은 자식들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팔순이 가까워 올 무렵부터 어머니는 당신의 옷이나 신발을 살 때마다 이제 죽을 때까지 이걸로 된다, 더 살 필요 없어- 라는 말씀을 번번이 하셨다.(그러고 또 사면서 또 똑같은 말씀)

하지만 건강할 때 쓰던 물건은 신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몸 상태의 변화에 따라 필요한 새로운 물건은 계속 생긴다.

지금 몸의 여기저기가 제 기능을 못 하는 어머니는 딸에게 당신이 겪는 신체의 불편함을 수시로 토로해 오셨다.


옻칠 수저는 신체의 변화에 따라 여러 도구들이 선택되고 교체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은 빙수 숟가락과 주먹으로 쥐기 좋은 큰 포크가 임무를 맡고 있다.

과일 드실 때는 크고 가벼운 플라스틱 포크를 쓰신다.

밥그릇, 반찬 그릇은 옴폭한 형태여야 그릇 벽을 이용해 음식을 떠올릴 수 있다.

컵은 무게와 형태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움직임이 불규칙한 데다 손에 힘이 없고 세밀한 동작이 안 되기 때문에 컵이 무겁거나 손잡이가 작으면 손에 잡기가 어렵다.

손 움직임이 투박하니 바닥이 좁고 긴 컵은 넘어뜨리기 쉽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야 하는 병이나 그릇의 뚜껑은 열지 못 한다.



암으로 투병한 지난 6 년 동안 어머니 키는 10cm가 넘게 줄고 체중은 더 줄었는데 옷 사이즈는 줄지 않는다.

몸에 치이지 않으면서 당신을 감싸줄 수 있는 가볍고 커다란 옷을 찾으시기 때문이다.

신발(휠체어에 기대시는 지금은 외출 시 발에 걸칠 뿐이지만)은 발을 조이지 않아야 하고,

크면 질질 끌리고, 신고 벗기 편하고 가벼운. 그러면서도 보기 좋은 것을 찾아오라는 거의 불가능한 미션!

병은 몸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서인지 사지 부분, 부분이 차다.

양말이 짧은 것은 발목이 시리고 발을 맵시 있게 감싸는 목이 긴 양말은 발목을 조인다.

어머니는 발목이 늘어난 헌 양말을 찾으신다.

드는 가방은 무거워 오래전에 포기하셨다.

한동안은 목에 거는 헝겊 지갑을 쓰시다, 그마저도 서랍에 처박혔다.

인생은 빈 손!


신체 변화의 여파는 생활 전반에 걸친다.

쇠약한 몸은, 가볍다 해도 부피가 큰 솜털 이불을 이겨낼 수 없어,

한겨울에도 얇은 차렵이불을 덮을 수밖에 없고(따라서 실내 온도를 높일 수밖에).

두터운 옷은 무겁다며 겨울 외출은 싫어하신다.

집에서는 얇은 면 티에 가벼운 7부 바지를 입고(긴 바지는 다리에 칭칭 감겨서).

그것으로 모자랄 때는 예전에 외출복으로 입으시던 캐시미어 카디건을 걸치신다.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모든 것을 맞출 것 같지만 어머니는 병원 생활을 몹시 힘들어하신다.

환자복 하의는 여러 겹 고무줄을 박았는데

큰 사이즈는 줄줄 내려오고

맞는 사이즈는 닿는 살이 아프다.

허리 조임이 끈으로 된 환자복 하의를 찾으시지만... 없, 다!

(비용과 관리 문제 때문인 듯)

환자복 상의는 무거워 못 입으시고(두 겹 면으로 튼튼하게 만든 거라 절대 가볍지 않고 수 없이 빨아대니 감촉은 뻣뻣하다).

시멘트 벽이 내뿜는 냉기에 몸이 시려서(병실 실내 온도는 적당하지만) 침대 난간을 이불로 감싸야한다.

무엇보다, 병원에서 침대 말고는 환자가 쉴 곳이 마땅치 않다.

링거를 꽂고 종일 침대에 누워있거나 검사실로 이리저리 실려 다니다 보면

기분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입맛은 더 떨어진다.

건강 상태가 몹시 나빴을 때 몇 번 기저귀를 쓰셨는데 성인용 기저귀는 허리에 부담이 된다고 하신다.

(사용하지 않은 새 것을 들어봐도 가볍지는 않다)

보행보조기와 휠체어에 의존하시는 어머니는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에서 고스란히 몸에 전해지는 진동에 고통스러워하신다.

집에서 잘 쓰시는 침대도 몸이 아플 때는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라는데, 모두 아픈 당신 몸이 문제이니 참으시욧!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지금 병원에 누워계시는 많은 환자들이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불편 사항을 견디고 계실 것이다.

현재 노인 세대는 엄청난 사회 변화에 기를 쓰고 적응해 오신 분들이지만.

이 첨단의 시대, 그분들 세대가 살아온 세계는 사라져 버렸다.

물건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모바일 쇼핑, 해외 직구가 일반화되고, 무슨, 무슨 페이라는 단어의 내용조차 채 이해가 안 되는 사회 환경 속에서,

노인들이 스스로 물건을 고르고 사는 건 더 어려워졌다.

노인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물건을 스스로 구매할 수 있는 선택권도 잃고 있다.



밖의 음식을 거의 안 드시는 어머니라 당연히 병원 음식도 안 드신다.

입원할 때마다 음식을 집에서 해 나른다.

한 번은 병원에 장조림을 가져갔는.

어머니는 장조림에 들어간 채소(대파, 무, 양파)와 장조림 간장만 드시니

무르게 푹 익힌 고기는 같은 병실에 계신 할머니께 드렸다.

혼자 사시는 그 할머니도 병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자식들이 가져온 짭짤한 밑반찬과 김치로 냉장고가 꽉 찼지만.

모두 마다하시고 우리가 드린 장조림만 맛있게 드셨다.

이를 알고 할머니 가족이 장조림을 해왔는데, 할머니는 딱딱해 못 먹겠다고 되돌려 보내셨다.

(같이 살지 않으면서 부모의 신체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식들은 당황했던 것 같다.

아무 거나 잘 드시던 어머니가?

반찬 투정을? 싶었겠지만.


자식들이 집을 떠나 학교에 다니고 가족을 이루고 사회에 나가 생존 기반을 마련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동안.

할아버지 가신 뒤 오도막이 혼자 남은 할머니는 예전에 잘 드시던 음식도 삼킬 수 없을 만큼 늙고 병들어 있었던 거다.

떨어져 사는 자식들이 부모의 일상을 얼마나 깊이 지켜보고 세심하게 살필 수 있을까?

가족이기는 하되 더 이상 한 솥밥을 먹는 식구가 아닌

자식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자신의 생활에 매몰될 수밖에 없으니.

자식들 뒤편, 관심 범위 저쪽에서 혼자 늙어가며 몸도 마음도 차츰 무너져 내려온 부모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여력은 없을 것이다.



부모 또한 손님처럼 왔다 가는 자식들이 안간힘을 쓰며 세상을 헤쳐 가는 모습에 더는 도울 수 없는 당신의 무력함이 안타까울 뿐.

당신까지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힘든 사정, 아픈 몸은 뒤로 미뤄놓고.

괜찮다, 괜찮아, 맛있는 음식은 자식, 손주들 앞으로 밀어주었겠지.


자식에게 부모는 어린 자식들을 품고 가정을 이끌어가던 젊고 당당한 모습이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

여전히 부모는 어른이고, 알아서 잘 사시겠지, 막연히 생각한다.

아직은 팔팔한 장년의 자식은 자신들이 알맹이까지 빼먹어 곧 바스라 질 껍데기만 남은 늙은 부모에게

세상살이 힘들다고 넋두리까지 해대지만.

자기 마음이 괴로워 부모에게 던지고 간 비수 같은 언행을 자식은 곧 잊어버려도.

자식이 아무 데나 던져놓은 칼날에 부모는 깊은 자상을 입어 잠을 못 이루며 오래도록 괴로워한다.


그러다 부모가 자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시점에 직면하게 되면,

자식들은 왜 부모까지 나를 힘들게 하는 거냐고 또 운명을 원망하겠지.


살아간다는 건 그리 산뜻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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