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재를 마치고

엄마 잘 가요...

by 기차는 달려가고

원래 49재가 불교에서 유래된 의식이니

'49재'에는 불교의 세계관을 담은 배경 이야기가 있다.

나는 장례식으로만 어머니와 작별을 할 수 없어서 종교와 상관없이 '49재'라는 시간을 빌렸다.

사와 생으로 어머니와 딸의 세계는 갈렸지만 60년의 세월이 어찌 하루아침에 정리될 수 있을까.


우리 모녀처럼 특히 밀착되어 살아온 관계에 있어서 이별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어머니도 이승을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이 인연이 이승을 떠나는 어머니의 발에 휘감기는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60년 동안 모녀가 함께 해온 밥상.

40년 동안은 어머니가 온갖 정성으로 딸의 밥상을 챙기셨고.

20년은 딸이 어머니 밥상을 성의껏 챙겼다.

어머니가 잘 드실 만한 음식을 살폈고.

좋은 보면 어머니를 떠올렸다.

몸이 아파 일어나기 어려울 때도 몸을 일으켜 어머니 식사는 차리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승에 남은 딸은 이제 일상에서 어머니의 밥상을 다시 차릴 일이 없게 되었다.


아마 49재가 아니었다면 혼자 자신의 아침을 챙기는 딸의 마음은 참으로 처연했을 것 같다.

늘 먼저 준비했던 어머니 식사를 건너뛰고 자신의 밥만 차리는 일이 자연스러울 리가.



49재라는 이름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어머니 방 커튼을 걷고,

영정에 인사하고,

간소한 아침 식사를 올리고 절을 한다.

어느 날은 편안한 기분으로 어머니 좋은 곳으로 가시라 기도할 수 있었지만.

많은 날, 당신의 마지막에 겪어야 했던 고통이 떠올라 마음이 무척 괴로웠다.

그 누구도 고통 없는 삶은 없으며,

내게 주어진 고통은 그 의미를 생각하며 기꺼이 받아들이겠지만.


어머니가 마지막 몇 년 동안 겪었던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은 딸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49재의 마지막쯤에 나는

어머니는 이승에 주어진 자신의 고통의 몫을 온전히 다 하느라

비교적 편안했던 인생의 마무리를 미처 다 쓰지 못한 고통의 몫에 할애하셨나 보다,

그렇게 해석해버렸다.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딸 역시 자신 몫의 고통을 겪어냈던 거겠지.



'49재'를 끝내는 날부터 딸은 지독하게 아팠다.

이미 어머니 간병으로 건강이 몹시 나빠진 상태였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그동안 간신히 버텨왔던 몸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해가 뜨는지, 밤이 왔는지.

하루가 갔는지, 이틀이 지났는지.

휴대폰의 날짜를 보면서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와중에 정신이 잠깐씩 들 때면,

외환위기로 어머니와 내게 온 인생의 위기에서.

어머니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어찌어찌 그 시간을 살아왔구나.

내 평생 잘한 일이구나.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하지 않아 참 다행이다, 싶었다.

아버지, 내가 그래도 자식 노릇은 했지?



이제 어머니는 아버지가 계신 저승으로 떠났다.

딸은 이승에서 딸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없이 살아가는 시작이다.


아주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