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악재라면,
서울 지하철 3호선 역 중의 하나로 알거나.
서울 중서부 지역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통일로에 있는 경사가 있는 고개-정도로는 알 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경사가 꽤 되지만 원래 무악재는 훨씬 더 가파르고 높았다.
내 기억에 있는 1960년대 무악재는 우리가 탄 자동차가 뒤집어지지 않을까,
어린 마음을 졸일 정도로 좁고 가파른 고개였다.
인왕산과 안산 사이에 있는 무악재는,
원래의 고개를 많이 깎고 길을 넓혀서 지금의 도로가 되었다.
도로 양쪽으로 남아있는,
산을 깎은 흔적인 높은 절벽을 보면 예전의 고개 높이를 짐작할 수 있겠지.
그래서 전차가 무악재 아래에 있는 영천까지 다녔던 기억이다.(맞나? 내 기억은 그런데)
그러니까 평지인 지금 독립문 부근.
조선시대 한양,
즉 서울 사대문 안과 그 주변인 성저십리는 대체로 언덕과 산이 많은 지형이다.
경복궁에서 세종로를 거쳐 시청에 이르는 지역은 내 어릴 때도 평평했었지만.
당장 서대문 쪽만 나와도 인왕산, 안산으로 이어지는 산지였고.
남쪽으로는 남산 줄기가 놓여있었지.
그 산들과 개천들 사이에 휘어지고 굽어진 좁은 길이 나고.
언덕들에 집들이 얹혀있는 강북의 지형이 내게는 익숙하다.
서울, 이라 할 때 아련한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런 원래의 지형은 대로와 아파트 단지와 고층 건물군으로 개발되면서 크게 변형되었다.
언덕들은 깎아서 평평하게 만들고,
주택가부터 비스듬히 경사지면서 구불구불 물이 흐르던 개천들은 복개하거나 직선으로 정돈해 제방을 쌓았다.
대단지 아파트들이 지어지면서는 웬만한 언덕은 평평하게 뭉개고.
높은 산은 꼭대기만 시민공원으로 남기고 절벽처럼 잘라버렸다.
광화문 뒤편인 사직동도 작은 언덕들이 오르락내리락하던 곳이었는데,
그 언덕들을 뚝뚝 잘라 평지로 만들었으니 일부만 벼랑처럼 남았다.
경희궁은 사연이 많은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그곳에 세워진 서울고등학교가 이전하면서 경희궁으로 돌아왔는데.
원래보다 넓이도 무척 축소되었고 건물들도 극히 일부만 복원되었다.
그래서 텅 빈 느낌이다.
서울의 다른 궁궐보다 대접이 좀 소홀하다 싶은데,
그래서 나는 좋다.
건물 뒤로 가면 언덕이 있고 자연스러운 작은 숲이 있다.
그곳을 걷다 보면 서울 강북 도심의 원래 지형을 짐작할 수 있다.
오르락내리락, 울퉁불퉁 언덕이 있는 땅.
손이 많이 가긴 했지만 창덕궁 후원도 그렇고,
비교적 자연스러운 창경궁도 그렇다.
서울의 지형은,
그렇게 작은 구릉들과 가파른 고개들과 주변을 둘러싼 높은 산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그 사이사이 개천이 흐르는 곳에 좁게 평지가 펼쳐졌지.
일제강점기 시절의 서울 중심가를 꼼꼼하게 그려낸 박태원 소설을 읽으면 내 어릴 적 서울 풍경이 떠오른다.
1960년대 서울은 지금의 서울보다 그 시기의 경성과 더 비슷했다.
한적한 경희궁이 주는 독특한 느낌이 있다.
가보시라 권한다.
건물들 뒤편,
원래 서울의 지형을 알아볼 수 있는 그 숲도.
아, 더는 사라지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