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와 차례에 관한 내 생각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이제 끝을 보이는구나.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서 올해도 가을이 다가온다.


더위가 끝나면 한 해가 다 간 기분.

여기에 추석이 여름의 종지부를 쾅! 찍으면.

올해는 글렀군, 하는 울적함으로 마음은 다가올 새해에 홀랑 기울어진다.

이미 반이 넘게 지나간 올해는 포기하고,

슬그머니, 새해에는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를 또 가져보는 것이다.



추석이 다가오면 명절 치를 생각으로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오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생활인이 되면 명절은 휴식이나 축제의 즐거움보다 비용 지출과 인간관계라는 의무감이 크게 다가오지.

가족의 범위가 부모와 자식만으로 축소된 현실에서,

배우자의 원가족은 부담스럽고.

더해서 가족 간에 갈등까지 있다면 명절은 쉽지 않은 자리이다.

더해서 차례상 차리는 비용과 노동이 더해지니...


기일에 지내는 제사와 명절 아침에 지내는 차례는 엄연히 다른 것인데,

흔히들 통틀어 제사라고 부르더라.

제사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을 기억해서 고인을 기리는 행사이고.

차례는 한 해의 시작인 설날에는 조상들께 한 해가 시작되는 인사를 올리고.

추석은 봄, 여름 열심히 일해서 얻은 결실을 조상들께 보여드리며 무사히 지냈다고 보고하는 행사로 나는 이해한다.


조상을 잘 모셔야 복이 온다, 는 주장도 일부 있나 본대.

내가 보기에 그건 제사의 이유를 설득하려는 지극히 단순화한 표현이고.

본질은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을 떠올리고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제사와 차례라는 형식의 본질이 아닐까?



조선시대에는 양반이나 차례와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먹고살기에 허덕이면 지나간 시절까지 떠올릴 여력이 없다.

부모님의 은덕에 감사하는 마음이야 누구나 있겠지만,

상황이 너무 어려울 때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행사까지 치르기는 힘들지.

그래서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가 기아에서 벗어나면서 제사와 차례가 모든 가정에 일반화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반 세기에 걸친 식민지와 전쟁의 시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살아가고 억울하게 죽어야 했나?

역사의 트라우마를 개개인의 가슴에 품고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두가 몸부림쳤다.

그래서 밥이라도 먹고살게 되었을 때,

지독한 배고픔과 고단한 노동으로 고생하다 죽어간 부모를 떠올렸겠지.

내가 차린 제사상에 부모의 영혼이라도 찾아와 이 밥을 드실 수 있다면,

마음에 깊이 박힌 괴로움이 다소 위로받는 기분이었겠다.


굶주리고, 병들고, 속수무책 죽어가고.

전쟁터에 끌려가 총탄에 쓰러지고, 얻어맞고.

가난으로 천대받으며 살다 간 부모의 기억이 생생한데.

그 덕에 살아남아 좋은 세상을 살게 된 자식이 흰쌀밥에 고기반찬을 배불리 먹는다면,

그 마음이 편했겠나?


제사와 차례에 공을 들인 것은 우리 부모 세대의 집단 치유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예법, 저런 예법 끌어다 나라 전체가 제사와 차례에 몰두하던 시절.

산해진미로 쌓아 올린 제사상으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상처를 어루만지고.

괜찮다, 괜찮다, 네 잘못은 아니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설움을 다스렸겠지.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이제는 거창한 제사상과 차례상의 효능은 다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보다 간소하고 정감 있는 방식으로 부모를 추억하겠고.

사회적으로는 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이루려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제사의 본질이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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