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북 2021 응모
나는 한낮의 기차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겨울이었고, 그 절정인 12월 말이었으며, 게다가 기차는 북방의 레닌그라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창밖은 빠르게 어두워져 갔다. 모스크바 근교 역사들의 환한 불빛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던진 것처럼 다만 뒤로 흘러가고, 눈 덮인 교외의 플랫폼에는 깜빡이는 가로등들이 타오르는 띠 하나로 이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31쪽)
아마 1970년대가 끝나갈 즈음의 어느 겨울날 오후,
모스크바에서 레닌그라드(현재 지명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점차 어두워가는 시간.
스쳐가는 풍경을 향하던 시선은 객실 내부로 옮겨지다가,
화자의 손에 들고 있는 낡은 책에서 멈춘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예프스카야가 쓴 일기를 엮은 오래된 책.
화자가 이모에게서 빌렸던 낡은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 부부가 결혼하고 반년쯤 뒤인 1867년 봄부터 시작된 독일 여행 시기를 담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기차는 어두워져서 레닌그라드에 도착했고.
화자는 어머니의 오랜 친구인 길랴 아주머니 댁으로 간다.
두런두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길랴 아주머니가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
화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도시에서 대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자취를 찾아다닌다.
- 이런 시간과 장소의 틀 안에서,
안나의 일기를 손에 든 화자는 100년도 훨씬 전 도스토예프스키 부부의 행적을 (상상 속에서) 따라간다.
1926년, 구 소련 민스크에서 출생한 유대계 레오니드 치프킨은 모스크바 의학연구소에 근무하는 의학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의 침공으로,
종전 뒤에는 스탈린의 반유대인 정책으로,
이후에도 독재정권 하에서 박해받는 유대계라는 혈통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살아야 했으니.
작가는 당국의 주목을 피하기 위해 공개적인 문학 활동을 하지 않고,
연구소에서 유능한 의학자로서의 업무를 마친 뒤 집에 돌아와 남몰래 글을 썼다.
오랫동안 자료를 모으고 구상하고 준비하여,
특히 개인적으로 핍박받던 1977년에서 1980년 사이에 쓰인 이 소설은 작가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소련에서는 도저히 출판할 상황이 아니었으니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당국 몰래 원고를 미국으로 보냈고.
1981년 3월, 러시아 이민자들의 잡지에 소설 첫회 분이 실린 일주일 뒤,
작가는 심장마비로 고단했던 생을 마쳤다.
책에는 소설에 앞서 수전 손탁의 길고 열렬한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서문을 아니었다면 나는 아름답고 투명한 문장을 가진 영롱한 이 소설에 다른 소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작가는 본인의 생각은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드러낼 뿐이어서.
작가를 모른 채 소설을 읽었더라면 나는 이 소설을 단지,
도스토예프스키와 그 작품들에 대한 오마주로 읽었을 수도 있었겠지.
서문을 통해 소련 당국의 박해 속에서 살아간 작가의 이력을 알게 된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인간 도스토예프스키의 고난에 작가의 삶을 대입하게 되었는데.
자기 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이 아가씨는 마치 짐나지움 학생처럼 보였다. 청순하고 맑은 얼굴의 여자는 바쁘게 오느라 뺨에 홍조까지 띠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한 집에서 영원히 함께 살 그의 아내가 된다는 사실이 그는 믿기지 않았다.
(92,93쪽)
대작가를 흠모한 어린 아내와 굴곡 많은 삶을 살아온 중년의 남편.
독촉받는 채무들과 밀린 원고와 흡혈귀 같은 주변 인물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서 떠나 남편이 편안하게 글만 쓸 수 있도록,
어린 아내는 친정어머니의 물건을 저당 잡혀 가까스로 여비를 마련했다.
그렇게 떠난 독일 여행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이미 도박에 빠져있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마지막 동전 한 닢까지 긁어서 빈번하게 도박장을 들락거렸고.
시베리아 유형과 문단에서의 소외감-
살아오면서 견뎌야 했던 지독한 비굴함과 치욕의 길고 깊은 고통은,
이 예민한 대작가의 영혼과 마음을 이미 갈기갈기 난자하였기에...
남편은 걸핏하면 분노를 터트리고
종종 악몽에 시달리며 시시때때로 발작을 일으킨다.
그는 침대 끝에 누운 채 온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일어나 앉고 싶지만 그를 침대에 결박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밧줄에 의해 방해받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얼굴은 새파랗고, 입에서는 거품이 끓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떨어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서 그를 침대 가운데로 옮겼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입술의 거품과 이마에 맺힌 땀을 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조용히 누워 있었다. 결국 보이지 않는 밧줄이 이긴 셈이어서, 그는 일어나 앉지 못한 것이다.
(53쪽)
남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헌신하는 착한 아내.
아내가 깊숙이 숨긴 마지막 동전 한 닢까지 탈탈 털어낸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장으로 달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소설에서 이렇게 그려진다.
요컨대 그는 검은색의 베를린 프록코트와 바지를 입은 채 기묘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길게 늘인 검은 타이즈를 신고, 검은 실크 모자를 쓰고, 흰 장갑을 낀 피에로가 되었다. 그는 약혼반지와 옷과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가죽 모자를 교묘하게 위로 던져 올리고는, 허공에서 절묘하게 그것들을 낚아채면서 저글링을 하는데. 때로는 여기에 자기의 검은 실크 모자를 끼워 넣기도 했다.
(163쪽)
하지만 그가 공중에 던지는 물건들은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자기 실크 모자를 위로 던지면, 그것은 허공에서 문득 사라져 버리고, 베를린 양복으로 변한 타이즈 역시 허공 어딘가에서 문득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164쪽)
불쑥불쑥 충동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며.
그런 자신을 혐오하고.
그 혐오감은 마음에 분노를 일으키다가 방향을 틀어 바깥으로 터져 나온다.
이따금 비에 젖은 서양자두나 포도, 자두를 들고 돌아오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사 온 것을 등 뒤에 숨기고는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걸 즐겼다. 물론 이런 일보다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녀를 천사라고 부르면서,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며 용서를 비는 일이 더 자주 있었다. 그러면 그녀는 옷을 깁다 말고 한숨을 쉬면서 말없이 서랍장으로 다가가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돈을 내어주었는데, 이럴 때 그녀가 기침을 하거나 재채기라도 하면, 그는 그녀에게 마구 화를 내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것은 그녀의 돈이며, 그녀 어머니의 돈인 것을 잘 안다, 그녀가 불평하지도 않고 순순히 그에게 돈을 내주는 것은 바로 그 선량함으로 그를 억압하려는 의도다, 등등. 하지만 그는 다시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는 그가 그녀의 돈을 훔쳤으며, 그녀가 자신을 혐오해야 마땅하다고 말하고는, 하지만 아직 자기를 더 혐오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 어느 때는 혀가 빠질 만큼 열심히 해진 옷가지를 깁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그녀에 대한 감동과 연민에 사로잡혀서 그녀의 손과 치맛자락에 키스를 퍼붓고, 다시 진심을 다해 무릎을 꿇기도 했다.
(156, 157쪽)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무지 치유되지 않아 자신을 옥죄고 활활 불태우는 아물지 않는 고통에서,
죄인이 되어 군중들의 온갖 조롱을 받으며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그리스도의 외로운 고난을 떠올리고.
작가 레오니드 치프킨은 도스토예프스키의 깊은 상처에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권력의 핍박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을 돌아보는 듯하다.
철조망 같은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는 팔꿈치를 무릎에 기댄 채 생각에 잠긴 자세로 혼자 계단에 앉아 있었다. 길고 가느다란 마디를 가진 그의 손은 생기 없이 아래로 내려뜨려져 있었다. 군중들 가운데에는 불그스레한 뺨과 주먹코의 속물스러운 얼굴을 가진 아주 무례한 자 하나가, 그 털이 숭숭 난 짧은 손가락으로 예수를 가리키고 있었다. 계단에 앉아 있는 그리스도를 향해서 몽둥이와 돌들이 날아들고, 누군가는 이미 구타당한 흔적이 있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깊고 외로운 명상에 잠긴 표정이었으며, 그를 둘러싼 군중들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예의 그 낯익은 사람들의 비웃음과 합쳐진 이 웃음소리는, 이제 떨어지는 돌과 얼음덩이의 소음과 여러 번 반복되는 메아리에 의해 겨우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위험한 비탈을 무릅쓰고 점점 더 높이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152쪽)
그렇게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사랑하고,
이 대작가를 짓누른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그토록 대작가를 절절이 흠모하면서.
소설에서 딱 한 번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작가는 묻는다.
왜!
당신마저!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은 자주, 익명의 고리대금업자나 소상인이나 좀스러운 사기꾼들로 묘사되거나, 심지어는 제대로 묘사조차 되지 않은 채 그저 유대인이라고만 이름 붙여지기도 했다. 또 유대인은 가장 저급하고 속물적인 인간성을 지닌 자의 대명사처럼 쓰였다.
..... 내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소설에서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 그토록 예민한 사람이,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거의 미친 듯이 설파하던 사람이, 잎새 하나와 풀잎 하나하나에 환희에 찬 송가를 바치던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수천 년간 쫓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옹호도 변호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18, 219, 220쪽)
소설에는 당시 미국에 망명 중이던 작가 솔체니친과,
러시아 내에서 반체제 활동을 하던 사하로프 박사가 잠시 등장한다.
그리고 주점에 앉아 술잔을 들이켜는 평범한 러시아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조롱받는 장면도.
자유와 정당성이 상실된 억압된 독재 체제 하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대응 방식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상황과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겠지.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정면으로 부딪치는 사람이 있겠고.
겉으로는 묵묵히 굴욕을 견뎌내지만 사실은 이를 악물고 완벽한 고발장을 작성하는 레오니드 치프킨도 있다.
시베리아 수용소의 죄수 도스토예프스키가 목격했던,
억울한 태형을 미동도 하지 않고 견디던 죄수가 보여준 침묵과 인간적인 품위를.
도스토예프스키 또한 술 취한 권력의 폭력에 조금도 무너지지 않고 싶어 했다.
레오니드 치프킨 역시 오직 자존감으로,
정당한 이유 없이 자신을 낭떠러지로 차 버리는 권력의 거친 발길질을 견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교는 얼큰히 취한 채 위병 한 명을 대동하고는 막사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그는 그날따라 몸이 아파 작업에 나가지 못한 죄수를 발견한다. 죄수는 등에 노란 다이아몬드 표식이 박힌 거뭇한 회색 수인복을 입고 판자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는 온 목청을 다해서 고함을 질렀다.
"기립! 이리 와!”
이 시베리아의 죄수가, 바로 지금, 엘베 강변 위에 그림처럼 솟아 있는 레스토랑을 나와서 밤나무 길을 걷고 있는 이 사람인 것이다. 그는 그때 수용소에서, 마치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혹은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사태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는 초소에서 태형을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벌 받던 그 사람은 미동도 않고 누워 매를 맞고는, 등과 엉덩이에 생긴 핏자국을 내버려 둔 채, 말없이 일어서서 꼼꼼히 죄수복을 챙겨 입더니, 그 옆에 서 있는 간수 장교 크리브초프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초소를 떠났다. 그 사람처럼 그도, 그렇게 침묵하며, 품위를 지키며 초소를 떠날 수 있을까.
(40, 41쪽)
상당히 완벽주의자였다는 작가는,
아마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보석을 세공하듯.
자신을 핍박하는 세상을 등 뒤로 하고 원고지 앞에 앉아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고통스러운 내면에 들어가,
증오심으로 자꾸 흐트러지려는 자신의 마음까지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