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북 2021 응모
러시아 문학을 공부한 저자는 이 책에서,
19세기 러시아, '이동 전람파' 화가들의 그림과 문학작품들을 풍부하게 인용하여.
러시아의 대자연과 역사, 풍습과 신앙과 일상생활.
무엇보다 먹고 일하고 사랑하며 땅에 몸을 붙이고 대대로 살아온 보통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들려준다.
머리말에서 '스탕달 신드롬'을 소개하며 저자는,
폭력과 탐욕에 희생된 아름다운 소녀를 담은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과,
그 비극의 인물을 그려낸 17세기 엘리자베타 시라니가 겪은 잔혹한 운명을 인용한다.
순간을 포착한 정지된 그림이 품고 있는 절절한 고통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고.
그래서 관람객은 순간 생명이 데인 듯 호흡이 가빠지고 의식이 아찔해지는 것이다.
단 한 장의 그림이 대하소설만큼이나 긴 이야기를 전해줄 때가 있다.
화가가 혼신의 힘을 다한 붓질 하나하나에 처절한 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가,
눈을 크게 뜨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그림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아픔을 토로하는 것이리라.
봄의 풍경으로 책은 시작된다.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춥고도(55쪽) 긴 일곱 달이 넘는 음산한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따뜻하고 화사한 봄이 왔으니,
그 기쁨이라니!
알렉산드르 푸쉬킨은 그의 시 ,
『예브게닌 오네긴』(1827년 작)에서 봄을 노래하기를.
봄, 봄, 사랑의 시기,
너란 현상은 얼마나 내게 힘겨운지,
얼마나 괴로운 흥분인지
내 마음에, 내 피 속에······
심장에 얼마나 낯선 쾌락인지······
기뻐하고 반짝이던 모든 것은,
지루하고 피곤해진다.
내게 눈보라와 거센 회오리를
겨울밤들의 길고 긴 어둠을 돌려 다오. (17,19쪽)
어둡고 혹독한 외로움을 숙명인 듯 견디다가 마침내 심장이 뛰고 마음이 들뜨는 운명적인 사랑을 만났는데.
믿을 수 없는 이 행복에 오히려 괴로워하여.
혹시 그 사랑이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차라리 아무도 사랑할 수 없었던 고독한 지난날로 되돌아가겠다고 주춤거리는.
두근두근 다가오는 사랑 앞에서 오히려 두려워하는 심정으로, 봄을 맞는 러시아 사람들의 벅찬 기쁨을 표현한다.
거리에는 아직 채 눈이 녹지 않았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봄의 기척이 기쁜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마슬레니차'라는 봄맞이 축제를 벌인다.
봄의 온기로 겨우내 딱딱하게 얼어있던 눈이 녹는 계절을 해빙기라 한다.
러시아에서 '해빙'의 의미가,
인간의 정치, 경제,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지배하고 통제하려
(27쪽) 했던,
스탈린 독재 정권의 종말을 상징하는 표현이 된 사정을 설명하면서.
강변을 품고 대지를 흐르는 눈 녹은 봄물들이 잔잔한 봄볕에 호응하여 겨울 눈 속에 갇혀 응어리졌던 더러운 것들을 조용히 씻어내고 있다.
(27쪽)고, 이사크 레비탄의 서정적인 그림 《봄》을 해설한다.
짧은 봄과 작물을 키워내는 소중한 여름,
그리고 아까운 가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면.
다시 무서운 겨울이 온다.
화려하게 차려진 제사상에 올려진 제물처럼
자연은 파랗게 떨고 있었다.
구름을 몰고 온 북녘 바람이
불어오자 숲이 운다. 드디어
겨울 마녀가 찾아왔다
- A. 푸시킨 《예브게닌 오네긴》 중에서 (55쪽)
평화로운 전원의 한때, 꽃을 안은 소녀의 싱그러움과 밭에서 일하고, 모여서 차를 마시고, 강에서 노를 젓는 러시아 일상을 담은 풍경들이 소개되고.
왕과 여왕과 왕자와 귀족들도.
미녀와 술 주정뱅이, 평생 벗어나지 못하는 고된 노동과 너덜너덜한 심정.
화려하지만 슬픈 결혼식.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나 자신의 죽음을 앞둔 비장하거나 막막한 시간들.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과 술동이가 굴러다니는 왁자지껄 한 날들도 그림에 담겼다.
앞에서 읽은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불우한 처지의 어린아이들에게 도제라는 명목으로 굶주림 속에서 호된 노동을 시키는 사례들을 알 수 있었다.
반세기가 지난 시점 러시아에서도 같은 경우가 빈번한가 보았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과과정을 받을 시간에 많은 어린아이들이 도제라는 명목으로 위험한 노동현장에서 혹사당했다.
블라디미르 마콥스키의 그림 《만남》에는,
도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여덟, 아홉 살짜리 아들을 빵 한쪽 들고 찾아온 어머니의 애잔한 모습이 보인다.(160쪽)
안톤 체호프의 1886년 단편소설 '반카'도 제화공에게 맡겨진 아홉 살짜리 도제의 안타까운 이야기라고 한다.
추위를 막지 못할 남루한 차림으로 지친 어린아이들이 물동이가 담긴 썰매를 힘겹게 끌고 간다.
그 춥고 배고프고 눈물조차 말라버린 고통이 화폭 바깥으로 그대로 전해져서,
십자가의 무게에 쓰러지는 예수의 형상이 겹쳐지더라면, 지나친 감상일까.
바실리 페로프의 그림 《트로이카》는,
도스토옙스키의 "어린아이의 눈물 속에 담긴 세상의 불의"(《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제5편 Pro와 Contra)란 주제를 심화시킨 그림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 카라마조프는 “나는 어른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말도 하지 않겠어. 그들은 선악과를 먹었으니까 빌어먹을 악마가 그들을 죄다 잡아가든 말든 될 대로 되라지만, 하지만 아이들, 아이들은”이라고 순수한 아이들의 고통에 대해 토로한다. 이반(카라마조프가의 맏형)은 이 장에서 여러 종류의 아이들의 학대에 대해 논하면서 세상의 부조리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역설하고 있다. 그의 서사시 <대심문관의 전설>도 비열하고 나약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권위, 기적, 빵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160,162,163쪽)
책에는 일랴 레핀의 그림도 여러 점 소개되고 있다.
갑작스럽게 고향으로 귀환한 한 혁명가와 그를 맞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묘사한(218쪽) 그림 《기다리지 않았다》도 있고.
아들을 쇠 지팡이로 내려쳐 죽음에 이르게 한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도 있다.
그림 《볼가 강의 인부들》에서 우리들은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 도제들의 앞날과,
라오서의 소설 <낙타 샹즈>를 떠올리게 된다.
볼가 강에서 인부들이 예인망을 끌고 가는 모습을 포착한 이 그림은,
화가가 네바 강을 유람선을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벗어났을 때.
호화로운 저택들과 별장들,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인, 다양한 색깔의 양산, 제복을 입은 대학생,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자 (228쪽)가 즐비한 강변에서.
더러운 누더기를 걸친.,. 바지선을 끄는 인부들,
"가축을 대신해서 사람이 배를 끄는"
(228쪽) 모습에 충격을 받고.
진짜 인부들이 있는 볼가 강으로 가서 예인망을 끄는 인부들과 친분을 나누면서.
3년에 걸쳐 그려낸 대작이라고 한다.
저자가 앞서 인용한 도스토옢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몇 구절을 더 읽어보자.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빵과 자유, 권력’의 문제는 도스토옢스키의 “대심문관의 전설”에서 철저히 파헤쳐진다. 이 이야기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의 ‘제5편 Pro와 Contra’에 삽입된 이반 카라마조프의 서사시다. “대심문관의 전설”은...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다. 카라마조프 가문의 삼 형제들 중에서 지성을 대표하는 이반이 동생 알료사에게 이야기해주는 형식으로 쓰인 이 글에서 아흔 살의 대심문관은 밤에 감옥으로 예수를 찾아와 ‘빵과 자유’에 대한 장광설을 쏟아낸다. 대심문관은 마태복음 4장 1~13절을 예로 들며 예수를 몰아세운다.... 예수가...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신랄히 비판한다. “민중이 원하는 것은 결국 빵이지, 자유가 아니다. ······인간은 반역자로 창조되었고,
······
이 나약한 반역자들의 양심을 영원토록 정복하고 사로잡을 수 있는 힘, 그들의 행복을 위한 지상의 유일한 세 가지 힘”은 바로 “기적, 신비, 권위”라고 역설한다. 예수는 “인간을 기적의 노예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자유로운 믿음을 갈망해서” 기적을 거부했지만, 인간은 예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저급하게 창조되었다”며 대심문관은 그런 인간들을 대신해 “선택의 고통과 선악의 인식을 대신해주는 것이고 그 대신 빵을 배분해주는 수난자”라고 한다. 그 모든 역설이 끝나고 반박을 해보라는 대심문관에게 예수는 핏기 없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
도스토옙스키는 이반의 글을 통해 평생을 고민한 모든 문제들을 다 토로하였고, 결국 ‘사랑’의 예수를 보여주었다.
(225, 226쪽)
불의하고 잔인한 이기심이 압도하는 암울한 시대에 울분과 좌절을 느끼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회에 대한 울분은 순간으로 그치고.
고달프고 답답한 나의 범주에서 더 이상 사고의 범위를 확대하지 못한 채 소소한 나의 이익에 집착하면서 살아가지.
그러나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서 우리라는 차원으로 눈을 돌려 더 크고 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대한 혼자만의 고민에서 출발했지만,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모색하며 행동한다.
인간과 자신의 선의에 대해 믿음을 가진 낙관적인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이상향을 꿈꾸면서 개인적인 욕심을 다스릴 줄 알고.
이기적이고 욕망에만 충실할 뿐인 자신을 포함, 인간성에 비관적인 사람들은 어차피 세상은 불의하고 모순 투성이니, 무슨 짓을 하든 내 손에 쥔 힘이 최고다, 하면서,..
양심이고 도덕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걸, 내 눈에 보이고 내 손에 잡히는 일신의 영화나 대대손손 누릴고 말지- 그렇게 황금탑을 쌓는 데 혈안이네.
러시아 사람들의 절절한 삶을 담은 그린 '이동 전람파' 화가들은,
19세기 후반 러시아 미술계의 엘리트들로서 자신들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을 거부하고 고통받는 민중들 속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단지 보기 좋기만 한 그림이 아니라.
인간과 세상을 깊이 관찰하고.
고된 노동을 도맡은 사람들이 극한의 생활 조건에서 살아가야 하는 무자비한 현실에 마음 아파하면서.
진실을 위해, 화폭에 진실을 담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힘을 모았다.
때로는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무력함으로, 생각만큼 담기지 않는 화폭에 좌절도 했겠지.
그럼에도 이들은 담담하게 현실을 담아낸 그림을 그렸고, 이 그림들을 러시아 전역에 순회 전시하면서.
러시아 사람들이 겪어내는 진짜 삶과 러시아의 자연과 역사를 보여주면서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냈다..
그렇게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내는, 빛나는 시간을 살아냈단다.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옳은 것에 헌신한 화가들 뒤에는 이들을 물질적으로 적극 지원했던 트레티야코프 같은 후원자들이 있었으니.
여러 암울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러시아는 지성과 격조 있는 인간미가 뿜어 나오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페레드비쥬니키(이동하는 자들)’로 불리던 러시아의 ‘이동 전람파’는 1870년대부터 1923년까지 약 48회에 걸쳐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키예프, 하리코프, 카잔, 오데사 등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자신들의 그림을 전시하였다. 이 그룹에는 이반 크람스코이(1837~1887), 니콜라이 게(1831~1894), 일랴 레핀(1844~ 1900), 바실리 수리코프(1848~1916), 이사크 레비탄(1860~1900) 등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이상주의적인 미학과 전통적인 회화 규범을 거부하고, 일반 민중의 삶 속에 드러난 ‘민중적 요소들’을 화폭에 옮기려고 하였다. 이동 전람파 화가들은 그 당시 러시아의 잡계급 인텔리겐차들(우스펜스키, 도스토옢스키, 가르신, 오스트로프스키, 체호프 등)과 교류하면서 비판적 사실주의의 영향도 받게 된다. 러시아 자연의 아름다움과 민중의 생명력에 새롭게 눈뜨면서, 그것을 화폭에 옮겨 러시아 민중에게 보여주려고 하였다.
1880년대 후반의 러시아가 알렉산드르 Ⅱ세(1861년 농노제 폐지를 단행하여 ‘차르-해방자’로 불렸지만 1881년 ‘인민의 의지’ 당 요원들에 의해 피살되었다.) 이후 이어진 ‘반개혁’의 시기였던 점을 고려하면, 민중의 삶을 그대로 그린 사실주의적 경향의 그림들이 러시아 곳곳에서 전시된다는 것 자체가 귀족 사회와 전제 군주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었고 민중에겐 자신들의 처지를 다시금 각성하게 되는 계기였을 것이다.
(240쪽)
♤ 외국어 표기는 지은이의 표기를 그대로 따라서
일반적인 표기와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