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다이도지 신스케의 반생』
브런치 북 2021 응모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집> 중 『다이도지 신스케의 반생- 어느 정신적 풍경화』, 송태욱 옮김, 서커스
다이도지 신스케(大導寺信輔)가 태어난 곳은 혼조(本所)의 에코인(回向院) 근처였다.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 중 아름다운 거리는 하나도 없었다. 아름다운 집 역시 하나도 없었다. 특히 그의 집 주변에는 움막을 짓거나 목욕통을 만드는 목공소며 막과자를 파는 가게며 고물상뿐이었다. 그런 집들에 면한 길도 진창 아닌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그 길의 막다른 곳은 오타케구라(お竹倉)의 큰 도랑이었다. 수초가 떠 있는 큰 도랑은 늘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물론 이런 동네에 우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620, 621쪽)
에도 시대가 끝나고 일본제국의 수도 도쿄가 휙휙 날아가던 19세기 말.
날로 성장하는 근대도시 도쿄에서,
에도시대의 활기를 잃고 쇠락해가는, 스미다강 건너 아랫동네 혼조에 한 소년이 자라고 있었다.
몸과 어울리지 않게 머리가 크고 쓸데없이 눈만 빛나는 병약한 소년이었다. 게다가 안색이 안 좋은 그 소년은,
(634쪽)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마음속 괴로움을 품고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친부모의 자식으로 설지 못한다는 어둠은 떨칠 수 없는 고통으로 소년의 마음을 짓누른다.
조금이라도 약점을 보일 경우 친구는 곧바로 그의 비밀을 간파해버릴 것이다.
(625쪽)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또 사실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이 단편은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개인사를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의 정신병으로, 태어나서 곧 외가에서 키워진 작가는,
어머니 사망 후 정식으로 외삼촌 부부에게 입양되어 외가의 성(姓)을 따르게 된다.
어머니처럼 정신병이 발발할까, 하는 두려움과
자신을 키워주는 외삼촌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늘 짓눌렸다는 작가는,
같은 단편집에 수록된 짧은 소설 『점귀부(点鬼簿)』를 이렇게 시작한다.
나의 어머니는 광인이었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어머니다운 친밀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머리를 끈으로 묶지 않고 빗에 감아 틀어 올리고 늘 시바의 친가에 혼자 앉아 긴 곰방대로 뻐끔뻐끔 담배를 피웠다. 얼굴도 작지만 몸집도 작았다. 또 얼굴은 어쩐 일인지 전혀 생기가 없는 잿빛이었다.....
이런 나는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아본 적이 전혀 없다.
(646, 647쪽)
그렇게 아픔을 품고 자라는 소년은 특별히 섬세한 정서와 명석한 두뇌로 주변을 민감하게 감지하는데.
소년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도 순수하지도 않다.
신스케의 집은 가난했다. 하지만 그들의 가난은 쪽방에 잡거 하는 하류 계층의 빈곤이 아니었다. 겉모습을 꾸미기 위해 고통을 받아야 하는 중하층 계급의 빈곤이었다. 퇴직한 관리였던 그의 아버지는 저금에서 나오는 약간의 이자를 제외하면 1년에 5백 엔의 연금으로 하녀를 포함한 다섯 가족의 입에 풀칠을 해야 했다. 그 때문에 물론 몹시 절약해야 했다. 그들은 현관과 다섯 칸짜리 집, 게다가 조그만 뜰이 있는 솟을대문 집에서 살았다. 하지만 누구도 새 옷 같은 건 좀처럼 짓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상 손님에게 내놓을 수 없는 질 나쁜 술로 저녁 반주를 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어머니 역시 하오리 속에 기운 자리투성이의 오비를 감추고 있었다, 신스케도, 아니 신스케는 아직도 니스 냄새가 나는 그의 책상을 기억하고 있다. 책상은 낡은 것을 샀지만 겉에 바른 녹색 나사지도, 은색으로 빛난 서랍의 쇠장식도 얼핏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사실 나사지도 얇고 서랍도 제대로 열린 적이 없었다. 이것은 그의 책상이라기보다는 그의 집의 상징이었다. 겉만은 늘 꾸며야 하는 집안 생활의 상징이었다. (627쪽)
어른들의 복잡한 심경을 알 리 없는 결벽한 소년은, 빠듯한 살림살이보다 쇠락한 형편에서 드러나는 부모의 위선과 거짓을 미워하고.
그렇게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은 죄의식이 되어 마음에 괴로움을 더한다.
유별나게 뛰어나서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좁은 동네를 벗어나 도쿄의 중심부에 다가가는 소년은,
입신양명의 시대.
강력한 권위로 학생들 위에 군림하며 오직 성공을 향한 주입식 교육을 퍼붓는 교사들의 태도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
학교를 미워하지만 드러나게 반항하거나 뛰쳐나갈 수도 없는 처지.
소년에게 교사는 거부하기 어려운 힘의 표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교육상의 책임’. 특히 학생을 처벌하는 권리는 저절로 그들을 폭군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편견을 학생의 마음에 접종하기 위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았다. (633쪽)
상급학교로 갈수록 신식의 높은 동네에서 온 동급생들이 많아진다.
아직은 단단하지 못해서 반짝이는 모든 것에 흔들리는 청소년 시기에...
부유해 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집안을 가진 동급생들을 의식하면서.
소년은 누구보다 뛰어난 자신의 재능과 초라한 자신의 처지 사이에서 흔들리고
예민하고 내성적인 소년은 그들에게서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을 느낀다.
신스케에게는 학교 역시 어두운 기억만 남아 있다. 그는 대학 재학 중에 필기도 하지 않고 출석한 두세 개의 강의를 제외하면, 학교의 어떤 수업에서도 흥미를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몇몇 학교를 통과하는 것은 간신히 빈곤을 탈출하는 단 하나의 구명대였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에 신스케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적어도 분명하게는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빈곤의 위협은 흐린 하늘처럼 신스케의 마음을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그는 대학이나 고등학교에 다닐 때 몇 번이고 자퇴를 계획했다. 하지만 빈곤의 위협은 그때마다 어둑어둑한 미래를 보여주며 함부로 그것을 실행할 수 없게 했다. 그는 물론 학교를 미워했다. 특히 구속이 많은 중학교를 미워했다.
(631, 632쪽)
하지만 그에게도 다소의 행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들도 신스케에게는 흐린 하늘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빛이었다. 증오는 어떤 감정보다도 그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630쪽)
어쩌다 새어 나오는 햇빛이 비출 뿐인 늘 흐린 하늘 같은 기분이었다지만.
사실 소년 신스케는 그 가운데에서 차곡차곡 자신을 키워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소년은 세심하게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이를 충분히 느낄 줄 아는 섬세한 감각이 있었다.
슬픔이 스며든 처연한 아름다움이더라도.
초라한 풍경 속에서도 소년만이 찾아낼 수 있는 아름다움의 지점이 있었다.
때때로 소년의 마음을 벅차게 하는 아름다움과 감동이 뾰족뾰족 솟구치는 미움을 부드럽게 보듬어주었겠지.
분노와 좌절감으로 스스로를 상하다가도,
순간순간 따사로운 햇빛처럼 와닿는 아름다움이 날카롭게 베인 상처를 치유해주었으리라.
철들고 난 이후의 신스케는 늘 혼조의 거리를 사랑했다. 가로수도 없는 혼조의 거리는 항상 모래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신스케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 것은 역시 혼조의 거리였다. 그는 너저분한 거리에서 막과자를 먹으며 자란 소년이었다...... 혼조의 거리는 비록 자연이 부족했다고 해도 꽃을 피운 지붕의 풀이나 웅덩이에 비친 봄날의 구름에서 뭔가 애처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런 아름다움 때문에 어느새 자연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에 점차 그의 눈을 뜨게 한 것은 혼조의 거리만이 아니었다. 책도, 그가 초등학교 시절 몇 번이나 열심히 읽은 도쿠토미 로카의 『자연과 인생』이나 러보크의 『자연미론』 번역본도 물론 그를 개발시켰다. 하지만 자연을 보는 그의 눈에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은 확실히 혼조의 거리였다. 집도 수목도 거리도 묘하게 초라한 거리였다. (621, 622쪽)
소년은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았다.
순수하고 투명한 거울처럼 소년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을 샅샅이 훑으면서,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밉고 추하고 악한 것조차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의 그런 것들을 탓할 줄도 알았다,
구니키다 돗포를 모방한 ‘자신의 거짓 없는 기록(自ら欺かざるの記‘),(628쪽)을 쓰면서.
자강술(自强術)의 도구(633쪽)로 삼았다.
변명하지 않는다.
아프더라도 똑바로 응시한다.
아닌 척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는다.
강인한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똑바로 들여다볼 줄 알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
그럼으로써 그 허물이 무럭무럭 자라 자신을 잡아먹는 괴물로 횡포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토로하는 소년의 거짓 없는 기록은 자신을 바르게 성장시키는 발판이 되었다.
무엇보다 소년을 행복하게 해 준 책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읽기 시작한 책은 소년을 사로잡았다.
그 정열은 30년간 끊임없이 그를 지배했다. 그는 종종 책을 읽으며 밤을 새운 일을 기억하고 있다. 아니, 책상 앞, 전차 안, 화장실, 때로는 길거리에서도 열심히 책을 읽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책 안에서 몇 번이나 웃고 울었다. 그것은 이른바 전신(轉身)이었다. 책 속의 인물로 변하는 일이었다. 그는 인도의 석가모니처럼 무수한 전생에서 빠져나왔다. 이반 카라마조프를, 햄릿을, 안드레이 공작을, 돈 후안을, 메피스토펠레스를, 여우 라이네케를. (636, 637쪽)
책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책 속의 온갖 슬픔과 기쁨, 좌절과 용기, 죄와 벌과 선행과 고통과 희열에 공감하면서.
소년은 책이라는 세계를 탐험하여 현실 세상을 알아가고 인간을 이해했으며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어간다.
이런 신스케는 또 당연히 책에서 온갖 것을 배웠다. 적어도 책에서 힘입은 바가 전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실제로 그는 인생을 알기 위해 거리와 행인을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행인을 바라보기 위해 책 속의 인생을 알려고 했다. 그것은 어쩌면 인생을 아는 데 멀리 돌아가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리의 행인은 그에게 단지 행인에 불과했다. 그들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랑을, 그들의 증오를, 그들의 허영심을 알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수밖에 없었다. 책을, 특히 세기말 유럽이 낳은 소설과 희곡을. 그는 그 차가운 빛 속애서 드디어 그 앞에 전개되는 인간 희극을 발견했다. 아니 어쩌면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 그 자신의 영혼도 발견했다. 그것은 인생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혼조의 거리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하지만 자연을 보는 그의 눈에 다소의 예리함을 더한 것은 역시 몇 권의 애독서, 그중에서도 특히 겐로쿠 시대의 하이카이였다. 그는 그것들을 읽었기 때문에 “도읍에 가까운 산의 모양”을, “울금 밭의 가을바람”을, “앞바다에 내리는 초겨울 비에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돛”을, “어둠 속을 날아가는 해오라기 소리”를, 혼조의 거리가 가르쳐주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신스케에게 ‘책에서 현실’로는 항상 진리였다. 그는 반생 동안 몇 명의 여자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 한 사람 여성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적어도 책에서 배운 것 외에 여성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는 햇빛을 투과시킨 귀나 볼에 떨어진 속눈썹의 그림자를 고티에나 발자크나 톨스토이에게서 배웠다. 그 때문에 지금도 신스케에게 여자는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만약 그것들에서 배우지 않았다면 그는 어쩌면 여자 대신 암컷만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637, 638, 639쪽)
특별히 민감한 감각과 이면을 꿰뚫는 명석함에 더해 결벽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곳곳에 가려져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이 되어 남모르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현상의 이면을 또렷이 볼 수 있고,
표면 바깥으로는 희미할 뿐인 참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 듣지 않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혼자 알아냈다는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감받거나 이해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뜻일 터.
명료하게 보이는 것, 분명하게 들리는 것을 외롭게 고민하여 진실을 파악하면서.
그러나 이 모든 인식을 침묵 속에 가두고.
세상의 부조리와 불합리, 인간의 허물과 거짓에 홀로 조용히 애끓어할 밖에.
일본이 그나마 자유와 민주체제를 향한 움직임이 있었다는 다이쇼 시대가 끝나고 군국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는 시점에,
작가는 “몽롱한 불안”이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