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노매드 세계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인문학자 공원국의 <유목 문명기행>, 공원국 지음, 위즈덤하우스



지은이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사와 경제학, 인류학을 공부하고.

오랫동안 역사의 현장을 발로 뛰고, 관련 서적들을 번역하고, 직접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이른바 재야학자의 길을 는 분이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다루는 유목 문명은 우리나라 사학계에서 눈에 띄는 분야도 아니고.

사학과를 나왔다 도 아는 내용이 별로 없는 분야인데.

지은이는 학문의 여러 분야를 통괄하며 그 외롭고 어려운 길을 굳세게 가고 있다.


책을 여러 권 내셨는데 그 책들에서는 인류가 본격적으로 기록하기 전의 세상-

들판을 달리고, 활을 쏘고, 양 떼를 몰고, 생명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면서.

먹고살 곳을 찾아 유러시아의 너른 대륙을 헤매었던 사람들의 세상을,

작고 희미한 조각들에 의지해 상상하고, 유추하고, 발견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현재에 갇혀 있는 나의 좁은 시야와 공간이 확 트이는 느낌이랄까.

지은이가 쓴 책들을 읽으면 확실히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넓어질 것이다.

이 짧은 글로는 책의 깊이를 다룰 수가 없다.

인상 깊은 구절 몇만 소개해야겠다.



지금도 이슬람교에는 형상화한 신의 모습이 없다.

기독교가 천사들과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높이 솟아오른 교회를 채우는 반면

이슬람에서는 아름답고 정교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텅 빈 사원을 장식한다.

그들의 조상이 지녔던 신에 대한 인식은 이러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그들은 하늘 전체를 제우스(아후라 마즈다)라고 부른다.”라고 기록했다. 이어서 페르시아인에 관한 더욱 놀랄 만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내가 아는 한, 그들은 신상이나 신전이나 제단을 세우는 것을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그런 행동을 하는 이들을 바보라고 비난한다. 그들은 우리 그리스인과 달리 신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류가 도달한 가장 추상적인 신 개념이 그때 이미 존재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라와 지중해 세계 전체가 따르고 있던 철의 교리는 신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형상만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인은 신을 지상의 어떤 존재와도 연결 짓지 않았다. 대신 눈에 보이지 않으며 시간을 초월해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거대한 공간인 하늘과 결합했을 뿐이다. 그렇게 탄생한 신이 바로 ‘주(아후라) 지혜(마즈다)’다 지혜는 인간의 능력 중 가장 추상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으로, 특정한 장소에 가둘 수 없는 유용한 정신 활동의 총칭이다. 또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진리다.

(91, 92쪽)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인간 사회에는 정의가 있고 자연계에는 고유의 질서가 있다고 믿는다. 그 배후에는, 무어라 특정할 수 없지만, 정의와 질서 자체인 신적 존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후라 마즈다가 바로 그러한 존재다.

......

사실 그들은 끊임없이 움직였으므로 신전이나 신상을 만들 수 없었다. 대신 텅 빈 하늘을 보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주에 편재하는 신을 창조했다.

(98, 99쪽)



서로가 경계를 긋고 자신의 터전을 선언한다.

그 경계에서 분쟁이 일어난다.

서기전 한나라가 건국했을 때 흉노는 그들을 도발했고,

한고조, 즉 유방은 대군을 이끌고 이들을 토벌하러 나섰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흉노에 의해 한나라군은 포위당했고,

우여곡절을 거쳐 화친 조약이 이루어졌다.

평화가 지속되는 동안 두 나라 모두 번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무제의 등장과 함께 상황은 일변했다. 흉노는 기존의 화친 정책을 그대로 이어나가 단 한 번도 도발하지 않았지만, 조언자였던 할머니 두 태후가 사망하고 자신의 나이도 차자 한무제는 본성을 드러냈다. 마침 선대가 쌓아놓은 식량이 차고 넘칠 정도로 비축되어 있었다.

(128쪽)

길고 긴 전쟁 끝에 두 나라 모두 멸망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전쟁은 상대만 멸하는 게 아니다.

제왕이 전쟁으로 승부욕을 불태우는 동안 백성들은 죽어나간다.


기억해야 할 바는 한무제가 타자화한 대상은 흉노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죽인 적의 수십 배에 달하는 백성을 학살했다. 그에 비하면 진시황의 폭정은 새털처럼 가벼울 정도다. 사서는 “천하 호구의 반이 줄었다.”라고 묘사한다. 백성을 철저히 남으로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많이 죽일 수 있을까.

《한서》 <형법지>에는 한무제의 체계적 살인 메커니즘이 잘 기록되어 있다.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전사자와 불구자가 생기고 이들을 떠안은 가구는 가난해진다. 이어 말을 비롯한 군수 물자를 대느라 국고가 비고, 이를 보충하고자 세목이 늘어나 다른 백성까지 가난해진다. 가난해진 이들은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데, 황제는 오히려 형법을 강화해 범죄자를 양산한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생긴 범죄자들에게 속죄금을 받고 풀어주며 국고를 채우는 것이다. 이처럼 빈곤과 범죄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가운데 황제의 사치가 극에 달하니, 백성은 죽거나, 숨거나, 흉노의 땅으로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무제가 단순히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죽인 사람들도 한 번에 수만 명을 헤아렸다.

그런데 강력한 진나라조차 만리장성을 쌓고 남월과 싸우다가 겨우 열몇 해 만에 망했는데, 한무제는 어떻게 수십 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그 기술을 나는 ‘이중 타자화’라 부른다.

(131쪽)


저자가 말하는 ‘이중 타자화’는 다음과 같다.


* ‘타자(흉노)’를 치고 있으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힘을 합쳐야 한다.

* 동시에 싸움에서 이길 때까지 백성 또한 타자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독재자들이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내우외환의 본질인데, 외적을 구실로 내부 착취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일례로 곽기병은 남는 음식조차 나누지 않는 등 부하들을 전혀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한무제에게 백성이 철저히 남이었듯, 곽거병에게 부하들은 흉노와 마찬가지로 남이었던 셈이다.

정치는 피아가 흑백으로 완전히 갈라지는 것을 예방함으로써 갈등을 조절하는 예술이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지면 화해가 따른다. 정치가 부재해 화해가 배제된 상황에서 한무제는 만리장성 안에 백성을 가두고 마음대로 학살할 수 있었다.

(132쪽)



19세기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지도자였던 타탕카 이요타케(앉은 황소)는 1882년 어느 미국인 기자에 이렇게 역설했다고 한다.


위대한 신령이 여기에 우리를 둘 때 이 땅을 주었으므로, 이 땅은 우리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오가며 우리 땅에서 우리 방식대로 살았다. 그러나 백인들은, 다른 땅에서 와서는, 우리가 자신의 생각대로 살기를 강요한다. 이것은 불공평하다. 우리는 백인들에게 우리 방식대로 살라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백인들은 양식을 얻고자 땅을 파는 것을 좋아하지만, 우리는 조상들이 그랬듯 들소 사냥을 더 좋아한다. 백인들은 한 곳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지만, 우리는 사냥터를 따라 여기저기로 티피를 옮기고자 한다. 백인들의 삶은 노예의 것이다. 그들은 마을이나 농장에 갇힌 사람들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유로운 삶이다. 집이든 철도든 옷이든 음식이든, 나는 백인들이 가진 것 중에 트인 벌판을 옮겨 다니며 나름의 방식대로 사는 우리의 권리만큼 좋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왜 당신들의 병사에게 피를 흘려야 하는가?

(64, 65쪽)



안전한 일상이라는 현실의 벽에 갇혀서 디지털 노매드를 꿈꾸는 오늘,

길을 나서기 전에 노매드의 허허로운 자세를 익히는 입문 과정을 먼저 마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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