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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제주도, 바다

마음에 남은 풍경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밤에 제주공항에 내렸으니 제주 시내에서 잤다.

참 이상한 게 한 시간 비행이나 열 시간 비행이나,

비행기에서 내리면 무조건 쉬고 싶다.

다시 차를 타고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려면 막 고달픈 기분이 된다.



작년 12월 제주도에서 돌아갈 때.

숙소가 있는 남원에서 제주공항으로 가면서 제주도 동쪽 반원 바닷가를 지나는 201번 버스를 탔었다.

바닷가 마을마다 일일이 서는 이 버스 노선은,

시작부터 종점까지 줄곧 타면 장장 세 시간을 훌쩍 넘길 텐데.

남동쪽 표선을 지나 동쪽 끝 성산을 지나서,

새로이 뜨는 하도, 월정 같은 동북쪽 동네들을 지났다.

나는 중간중간 내려서 바다도 보고 밥도 먹고 카페에서 꼬박꼬박 졸기도 했었지.

그 경험이 참 좋아서 이번에는 제주도 해안가 서쪽 반원을 도는 202번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제주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가 있는 서귀포까지.

중간에 내리지도 않고 계속 버스 안에서,

세 시간 가까이 걸렸다.

미쳤음.


줄곧 버스에만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더해서 급제동과 급발진을 거듭하시는 기사분에,

고속버스도 아닌 시내버스.

창으로 들어오는 쨍한 볕까지 부실한 몸에 쏟아지니.

멀미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얼른 숙소에 들어가 눕고 싶다는 생각만 들어서 중간에 내리지 않았다.

애월 부근까지는 바닷가가 번잡해서 나는 심드렁,

울렁거리는 속을 참느라 몸을 숙이고 있었는데.

애월을 지나면 제주도는 점점 예전의 모습을 드러낸다.



제주도는 전통적인 범주와 외부 세력이 어색하게 양립한다는 느낌이다.

대립이나 조화보다는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기분.

제주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닌 내 소감이 그렇다.

제주도를 동서남북으로 네 등분한다면,

서남부 지역이 비교적 전통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듯 보인다.

물론 서남부 안쪽으로 들어가면 국제학교들이 모여있는 영어교육도시라는 별천지가 있긴 합니다만.


이를테면 오늘 내가 들른 제주도 서쪽 끝 한경면 고산을 보면.

어쩜 사진을 이렇게 못 찍는지.

죄송합니다.


이 지역은 외부 자본의 위세보다는 전통적인 지역 분위기가 짙다.

제주도 곳곳에 서울 사람들 땅이 그리 많다니 등기부를 보면 사정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원래의 자연 취락에 1970~80년 대에 재정비된 지역 분위기가 조촐하고 깔끔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였다.



여기서 북쪽으로 더 가면 내가 좋아하는 금능해변이 나온다.

제주도 바다는 대체로 짙은 파란색인데.

여기는 흰모래에 옥빛 바다, 하늘색, 짙은 파랗으로,

멀리 가면서 바닷물 색깔이 뚜렷하게 달라진다.

아, 이 사진은 금능 바다의 아름다움을 전혀 담지 못했다.

잘 찍은 다른 사진들을 찾아봐주세요.

사실은 얼마나 아기자기 예쁜데요!

물이 빠진 시간이라 파릇한 미역 조각들이 널린 하얀 모래밭을 한참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협재해수욕장까지 길이 이어져서 바다를 바라보며 걷기에 좋다.

나는 금능 바다가 좋아.

제일 좋아!

물이 빠져나가는 바다.


오늘은 여기까지.

에고 힘들어.


고산리의 다른 길.


고산에서,

바다에 들어가 있는 풍력발전기가 장관인 신창리까지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길이 있다.

그 사연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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