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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버스에서

마음에 남은 풍경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작년부터 제주도 여행에서 많이 걷거나 버스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

제주도 버스 시스템은 여행자에게 편리한 점이 있다.


가격이 싸다.

일반버스는 현금 1,200원, 카드로는 1,150원이다.

카드로 계산하면 내려서 30분 이내에 다른 노선으로 환승이 되고.

갈아타든 계속 한 버스를 타든 아무리 긴 거리여도 추가 요금이 없다.

(급행, 공항리무진은 요금이 더 나갑니다.)


버스 노선이 꽤 많다.

섬의 동쪽과 서쪽으로 바닷가를 빙 도는 일주노선이나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남북 노선은 자주 있고.

연계해서 유명 관광지로 가는 지역 버스 노선도 있기는 하다.

배차 간격이 길지.

인터넷 검색으로 버스들의 출도착 시간까지 다 알아내기는 쉽지 않으므로 요건 좀 미리미리 상세하게 찾아두어야 한다.


또 다른 장점으로,

버스 정류장 표시판에 버스 정차 시간이 일일이 표시되어 있고.

버스 안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그 정류장에서 이용할 수 있는 환승 버스 번호와,

버스 진행 방향 앞 여러 정거장을 미리 표시해준다는 점이다.

지역이 낯선 여행자에게 매우 유용한 기능이다.


문제는 시내에서는 버스 노선이 꼬여있기도 해서 같은 구역을 빙빙 돈다는 느낌이 있다.

장소를 공부해서 대략적인 지리를 익혀두면 버스 배차 시간이나 승차 시간을 고려할 때,

버스 환승 대신 차라리 좀 걷는 편이 나을 때가 있다.



지도로 단순하게라도 살펴보아서 도시 윤곽을 파악하고.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숙소 위치와 도시의 동서남북을 알아두면.

운전을 하든, 버스를 타든, 걷든,

인터넷 지도로 길 찾기가 훨씬 쉬워진다.

제주시내의 경우,

관광지는 북쪽 바닷가 부근 오래된 제주시내에 대부분 모여 있고.

서귀포도 구시가지는 작다.

바다를 따라 구 시가지 옆으로 서귀포 신시가지와 중문 관광단지가 길게 늘어서 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다니던 어느 날.

버스터미널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버스에 미리 올라 뒷문 바로 앞좌석에 앉아있었을 때였다.

이어서 할머니 세 분이 버스에 오르셨고.

한 분은 내 옆자리에,

두 분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앞뒤로 자리를 잡으셨다.

세 분은 곧바로 열띤 대화를 시작하셨는데.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리기에 내 귀에 해석되기로,

젊어서부터 친분이 있는 세 분은 시내에서 열린 어느 잔치에서 오랜만에 만난 거였다.

그래서 한 분은 마스크를 벗고 잔칫집에서 싸준 음식을 꺼내 드시다 출발 전 승객들을 둘러보던 기사분께 딱 걸렸음.


억양과 어휘가 낯설지만 한 사람에 관해 길게 얘기를 나누어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는데.

두 할머니는 그 사람을 젊을 때부터 서로 알고 지냈고.

한 분은 얘기만 들어왔지 그분과 직접 알지는 못한다.



다음은 내가 재구성한 세 할머니들 대화 내용.

사투리는 내 맘대로 전국 짬뽕입니당~


얘기만 들어오던 할머니:

그 냥반이 젊었을 때 그리 놀았다믄서?

옆자리 할머니:

놀다마다. 아니 글쎄 청바지 입고 다녔잖아!

먹다 걸린 할머니:

춤은 또 얼마나 멋들어지게 췄는데.

얘기만 들어오던 할머니:

여자들도 많았겠네.

세 할머니 갑자기 몸을 숙여 얼굴을 모으시더니 작은 목소리로 쑤근쑤근 하심.


청바지 입고 멋들어지게 춤을 잘 추어 여성분들 마음을 들썩이게 했던 그 양반도,

이제 늙어서 알아볼 수가 없게 됐더라고.

우리가 언제 이리 늙었누.

오늘 당장 저세상으로 떠나도 할 말 없네.

그렇게 한 마디씩 의견을 밝히시다,

세월이 쏜살같다는 감회를 마지막으로 한 분이 버스를 내리셨고.

버스에 남은 두 분은 일시에 침묵 모드로.



청바지를 입어서 아낙들을 놀래키다니.

그 시절 제주도는 어떤 곳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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