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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갔다 왔어요!

마음에 남은 풍경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해가 바뀌는 것에 특별한 감회는 없지만,

그래도 일정 기간을 시작하고 마무리한다는 기분은 있다.

어딘가 다녀와야겠다.


무리하기는 싫고.

그냥 슬렁슬렁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밥이나 잘 먹고 오자 싶었다.

지도를 살피다가 춘천-에 눈이 멈춘다.

놀러 다니느라 자동차를 타고 슝, 오가긴 했지만 도시를 알지는 못한다.



느긋하게 아침 먹고 10시 넘어 길에 나선다.

기차가 출발하고.

겨울, 도시, 철도역 풍경은 특히나 삭막하지.


춘천 가는 기차는 터널이 많다.

기차는 연신 터널을 지나 강을 따라 달리다 다시 캄캄한 터널로 이어지고.

철도와 산 사이에는 강이 흐른다.


한 시간이 채 안 걸려 남춘천역에 도착한다.

뭐 별다른 것 없는 도시 풍경.

시청, 도청 방향이라는 도로표지판 방향을 따라간다.

딱히 갈 곳도, 먹을 것도 생각하지 않았거든.


도시는 깔끔하고 한적하다.

길에는 두어 명 보일까.

널찍한 도로는 번잡하지 않다.

지난달에 다녀온 제주도에는 차는 많아도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없었는데

춘천에는 차가 별로 없지만 길마다 붉은 등을 켠 신호등이 꼬박꼬박 서있네.


원래는 산으로 둘러싸인 나지막한 도시였을 텐데.

21세기 춘천에는 사방으로 초고층 대단지 아파트들이 불쑥불쑥 솟아나 있었다.

내가 향하는 곳이 오래된 도심이었던 것 같다.

이 굵은 가로수들 좀 봐.


춘천에 오기 전에 맛집을 찾아봤었다.

예전에 왔을 때 닭갈비를 먹었는데 그게 내 평생 유일하게 먹은 닭갈비였다.

이상하게 닭갈비를 먹고 싶은 적이 없었다.

맛집들의 음식 사진을 보면서도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은 떠오르지 않더라.

갓 지진 뜨끈뜨끈한 감자전이나 먹을까?, 했는데.

지나면서 메밀전, 메밀총떡이라는 간판은 보았지만 감자전을 내세우는 식당은 안 보이더군.


내가 느끼기로는,

강원도-하면 우리는 으레 감자를 떠올리지만.

강원도 여기저기를 꽤 놀러 다닌 바,

강원도에는 메밀 우세지역과 감자 우세지역이 있는 것 같다.

맞나요?


하여간 길을 지나다 그냥 중국음식점으로 들어갔고.

요리와 만두를 맛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면서 꾸역꾸역 먹어서 위가 비명을 질렀다.

지방 식당이 서울보다 가격은 약간 저렴한데 양은 확실히 많다.

나름 번화가에 있는 꽤 넓은 식당이었는데

한창 식사 시간에 손님은 나 혼자여서 마음이 좋지 않더라.

그 뒤에 청년들 창업몰이라는 육림 고개를 찾아갔는데 많은 상점들이 비어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리저리 사람 없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북카페.

붉은빛을 내는 난로에는 주전자가 올라가 있고요.


작은 창과 쪽나무 천장.

그리고 내가 앉은, 등이 켜진 작은 나무 테이블.

한 시간 넘게 그림으로 그린 여행기를 보면서 잘 쉬었다.


카페가 있는 골목은 언덕배기 오래된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였다.

소박하고 깔끔한 곳.

지방 구도심에 가면 이런 마을들이 좀 보이더라.

오래 살아온 나이 든 주민들이 반들반들 치우고 손보고 아끼면서 살아가는 동네.

이 마을에 내가 들어오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골목을 빠져나온다.



이후 표지판을 보고 오? 들어봤는데! 싶은,

정갈하고 견고한 느낌이 들던 죽림 성당에 들러 기도를 드렸고.


걷고 걸어 소양강까지 갔으며.

오리 떼가 있는 잔잔한 소양강.


다섯 시가 채 안됐는데 저물고 있는 둥근 해를 춘천역에서 만난다.

확실히 서울보다 동쪽이라 해가 좀 일찍 지는 듯.


기차역 한 귀퉁이에는 20년은 넘지 않았을까, 싶은 공중전화기와 공개수배 전단이 있었다.

환상의 하모니.


한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하루,

낯선 도시를 어슬렁어슬렁 한가로이 걷는 기분이 좋았다.



쉽지 않았던 2021년이었습니다.

모두들 마무리 잘하시고 개운치 않은 것들은 몽땅 털어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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