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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an 17. 2022

그림의 힘

끄적끄적

일본 메이지 시대 일본에는 서구에서 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19세기 후반 일본이 개국하고 적극적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외국어, 군사, 기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다수 초청도 했고.

무역을 하러, 물건을 팔러,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일본에 거주하는 서구인을 대상으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러 등등.

꽤 많은 서구인들이 기회를 찾아 자발적으로 무작정 낯선 땅 일본으로 바다를 건너왔더라.



우리는 보통 옛날에는 지금처럼 기술도 발달하지 못했고, 정보도 전달되기 어려웠으니 대륙을 넘나드는 거리 이동이 어려웠을 거라짐작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의외로 낯선 곳을, 의외의 인물들이 단지 호기심에 이끌려,

또는 엉뚱한 소문에 홀려서 먼 곳까지 이동하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예전에 동서교류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대탐험의 시대에 이어 동양의 보물을 얻겠다는 포부로 망망대해에 배를 띄우던 시절.

서구의 배가 난파하면 구조된 선원들 상당수가 현지에 정착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워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고향에서나 타향에서나 가난뱅이 신세라 멀고 먼 타향살이에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동남아시아 쪽에 예로부터 서구 계통 후손이 은근히 섞여 있다던가?


그러니까 150년 전의 일본에도 단지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정보로 혼자 일본까지 온 용자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 글이나 그림이나 학문으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는데.

'조르주 페르디낭 비고'라는 스물두 살 프랑스 청년은 당시 유럽에 소개되어 인기를 모았던 일본 전통 풍속화인 우키요에를 배우겠다고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온다.

그는 오랫동안 일본에 머물면서 메이지 시대의 풍속을 그림으로 그려내는데.

순간을 포착한 만화 같은 화가의 그림들은 당시 사회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예리하게 포착하고.

익살스럽게 표현하여 정확하게 전달해주는지.

사진이나 동영상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그림을 수단으로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지금의 사진이나 동영상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시대를 전달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 그림을 그리려면 예민한 관찰력이 선행되어야겠고.

남다른 관찰력으로 얻어진 정보를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와 뚜렷한 자신의 가치관으로 상황을 해석해,

비로소 무엇을 어떻게 그려낼지 판단이 설 것이다.

그러고 나 솜씨가 뒷받침되어야 하리라.



다음은 해당 출판사 블로그에서 인용한 비고의 그림 한 컷.

기차를 타고 가다가 정차한 순간을 포착했다.

화장실과 세면대 주변.

옷차림과 동작들 하나하나에 다 이야기가 담겨있네.



비고가 그린 그림들 중에는 환락가 풍경들도 있었다.

특히 재미있게 보았던 그림으로,

비즈니스 관계인 듯한 두 남자가 술집에서 방 하나를 차지하고 여성 접대부들과 흥이 올라 들썩들썩 춤추는 장면이 있었지.

방바닥에는 술병들이 굴러다니고 접대를 받는 중늙은이는 무아지경,

효이 효이~ 얼쑤

한창 흥에 겨워 떠드는 소리가 그림에서 쏟아지는 듯했었다.

넉살 좋고 익살스러운,

빙그레 웃음 짓는 화가의 표정과 재빠른 손놀림까지 상상되었지.



이번 겨울 내가 빠져있는  '틀린 그림 찾기'에서 이 글 제목에 올린 술 취한 아저씨 그림을 보고

문득 재기 넘치는 비고의 풍속화가 떠오르더라.

한껏 풀린 눈,

이마에 묶은 넥타이,

바짝 세운 발가락과 꼬인 손가락의 선을 보라!

술이 사람을 잡아먹었든 말든

기분 최고다!- 뭐 그런 순간인 듯합니다.


몇 개의 선으로 풍경에 더해 인물의 기분까지,

그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시는 화가님들,

존경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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