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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행- 시티투어 1, 근대의 풍경

마음에 남은 풍경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나는 시티투어를 좋아한다.

내 경험으로는, 낯선 도시를 알아가기에 시티투어가 퍽 유용하더라.

여행을 가게 되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대강의 정보를 얻어놓고.

지도를 보면서 도시를 대충 파악한다.

그리고 현지에 가면 시티투어를 이용해 실제 도시를 둘러보고 해설사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곳의 지리적인, 문화적인 윤곽이 그려진다.


마침 목포에 시티투어가 운영되고 있었다.

비용은 달랑 5,000원.

아침에 시간 맞춰 가보니 문화해설사께서 기다리시고 버스도 좋은데,

손님은 나와 혼자 오신 신사분, 해서 두 명뿐.

미안하고 안타까웠지.

아주 알찬 시간이었다.



목포는 조선시대까지 조그만 어촌마을이었던가 보았다.

주변 섬들과 반도들이 거센 풍랑을 막아주는 천혜의 항구.

왜적으로부터 호남 지역을 방어하는 최전선으로,

조선시대에는 이순신 장군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고,

바다로 우뚝 솟은 절벽에는 진지가 있었다.

목포진-

원래는 바닷가에 우뚝 솟은 절벽이었을 것이다.



유달산 아래로는 갯벌이었는데,

일제가 그 갯벌을 메워 일본인들의 신도시를 만들었다.


(사진들은 오전의 시티투어를 마치고 오후에 다시 가서 찍은 것들이다.

그래서 오전의 화사한 밝은 햇빛이 아니라 바람 부는 흐린 하늘이다.)

요렇게 반듯반듯 사방으로 쭉쭉 뻗은 도로와,

그 사이를 메운 건물들.

약간 높은 곳에 근사하게 지은 일본 영사관이 있고.

타운은 바다의 항구까지 이어진다.

동양척식 회사, 우체국, 학교가 있었고.

그 아래로 일본인들의 회사와 집들과 상가들이 있었겠지.

영사관 옆, 거리를 내려다보는 언덕진 곳에 넓은 주택들이 모여 있던데.

그곳이 일제강점기 때 고급주택지였던 듯했다.


부두에 근접하면서는 공장, 창고, 회사들이 있었겠지.

호남 지방의 곡물, 해산물부터 온갖 인적, 물적 자원들이 일본으로 실려갔을 터.

또렷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들.

전면은 달라졌어도 뒤에는 그대로 100년 전 모습인 곳들이 많다.

구획된 지역의 바둑판 거리.


오래된 성당도 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일본인 지역은 돈이 되는 전국 곳곳에 있었겠고.

서울의 일본인 지역이 제일 크고 번성했었겠지만.

아시다시피 서울은 현재의 21세기 국제도시로 발전하면서 지난 세월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전국적으로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제강점기 시대 흔적들은 앞다투는 산업화에 파묻혔는데.

정치적으로 차별받아 경제적으로 뒤쳐진 목포에서 한 세기 전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1970~80년 때까지도 활발했던 지역으로,

관광지와 외부인들에게 알려진 맛집들은 대부분 이쪽에 있더라.


처음 도착했을 때 하늘은 어둡고 눈이 세차게 내리는데,

낡은 건물들은 비어있고 거리에 사람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주거는 하지 않는 동네인가? 했었는데.

문화해설사분께 여쭤보니 예전부터 살아온 분들이 그냥 살아간다고.

"집 내뿌리고 어딜 가겠어요?" 하시더라.

젊은 사람들은 주변에 새로 조성된 신도시로 나가고.

노인들만 살던 대로 살아가신단다.


집, 창고, 회사들이 즐비했겠더라.



일본 동네 그대로 옮겨놓은,

100년 전 그들의 행복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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